생명의 보고, 바다

1985 읽음

2012년 3월 26일, ‘타이타닉’, ‘아바타’를 제작한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마리아나 해구 탐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구 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는 최대 수심이 약 11킬로미터로 에베레스트 산(해발 8848미터)의 높이보다 더 깊은 바다 골짜기다. 우주까지 인류의 발자취를 남기는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에 우리와 너무나도 친숙한 바다를 탐사하는 일이 왜 주목받는 것일까? 심해저는 높은 수압, 차가운 수온, 빛이 한 점도 들지 않는 환경 탓에 인류의 손길이 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캐머런 감독은 해저 12킬로미터 수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된 잠수정 ‘딥시 챌린저Deepsea Challenger’를 타고 6시간의 탐사를 마치고 돌아와, 지난 1960년 자크 피카르와 돈 월시의 탐사 이후 세 번째로 지구 최심부에 도달한 사람이 됐다. 지금까지 이 깊은 바다에 다녀온 사람은 단 3명뿐이며, 해저 지형에 대한 정보가 달 앞면의 지형보다 더 늦게 밝혀졌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더 놀라게 한다. 우주만큼이나 무한한 신비를 간직한 공간, 바로 바다다.

광활한 생명의 터전

해양학자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탐험한 바다는 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구는 약 71퍼센트가 바다로 덮여 있으며 그 면적은 무려 3억 61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지구 상의 모든 물을 합치면 13억 6900만 세제곱킬로미터 정도인데, 이 중 97.3퍼센트가 바닷물에 해당한다. 전체 바닷물의 무게는 135경 톤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바다는 넓이만 넓은 것이 아니라 깊이도 굉장하다. 바다의 평균 깊이는 3800미터로 육지의 평균 높이 840미터보다 훨씬 깊다. 만약 육지를 바닷속에 풍덩 빠뜨리면 지구 표면 전체가 바닷물에 꼬르륵 잠겨 버리고도 수심 2440미터의 깊이 아래로 가라앉게 될 만큼 바다는 넓고 깊은 공간이다. 지구는 물의 행성, 바다의 행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광활한 바닷속에는 수없이 많은 생물이 살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지구의 생물 다양성은 바다에서 비롯되었다. 바다 생물의 대표격인 어류는 약 3만 종이 넘는데 이는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며 포유류와 비교하면 그 종류의 수가 6배 이상에 달한다. 그뿐 아니라 바다가 품고 있는 생물은 실로 다양하다. 새우와 같은 갑각류, 조개류, 산호 등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플랑크톤부터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까지, 광활한 바닷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이 산다. 심해저에는 아직도 신종 바다 생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으며, 해양생물학자들은 바닷속에 사는 생명체의 95퍼센트는 아직 이름조차 없는 미지의 대상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의 온도 조절 장치

바다는 다양한 생물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육지에 있는 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지구에게 바다는 거대한 온도 조절 장치와도 같다. 육지는 영하 90도에서 영상 70도까지 온도의 변화가 매우 극심하다.

반면, 바다는 영하 2도에서 영상 30도의 폭으로 온도 변화가 훨씬 적다. 바다는 비열1이 큰 물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물질에 비해 온도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을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은 같은 부피의 공기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의 3000배나 된다. 그러므로 바다는 대지에 비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고, 열에너지를 바닷물에 저장할 수도 있다. 바다는 해류라는 거대한 순환계를 통해 적도 지방의 열을 지구 각 지역에 골고루 분배한다.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해류에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에너지를 싣고 움직이는 것이다. 바다가 물의 큰 비열을 통해 열을 이동시키므로 지구의 기후는 안정해질 수 있다.

1. 비열: 단위 질량의 물질 온도를 1℃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양이 적어 바다의 면적이 작았다고 가정을 해보자. 바다는 하나로 이어지지도 않고 해류가 왕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구 안 열에너지의 수송은 현재처럼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혹독한 기후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보면 바다는 단순히 출렁이는 푸른 물이 아니라 지구 상에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하는, 생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무기물이 가득한 바다

바닷물을 맛보면 민물과는 다르게 짜고 쓰다. 바닷물은 소금을 비롯해 수많은 무기물이 녹아 있는 아주 복잡한 액체이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만 해도 5경 톤이 넘는다고 하니, 바다를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무기물 창고라고 부를 만하다. 바다 생물들은 인류가 미처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바닷속 무기물을 오래전부터 효율적으로 이용해 왔다. 해삼과 우렁쉥이의 혈액에서 바나듐2 이 발견되기 전까지 인류는 바닷물에 바나듐이 포함되어 있는지조차 몰랐다. 바닷가재와 홍합에서는 코발트3 가 발견되었고, 연체동물은 니켈4을 이용하는 것이 밝혀졌다. 바다 생물들은 이름도 생소한 무기질을 인류보다 앞서 바닷물에서 추출해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인류는 바닷물의 다소의 무기질을 추출하는 데 제한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 고작이다. 인류의 기술은 바다 생물들에 비하면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라 하겠다.

  • 2. 바나듐: 원자 번호 23번의 단단하나 연성이 있는 회백색 금속. 바나듐이 첨가된 강철은 고속 공구, 제트 엔진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일부 동식물에도 바나듐이 들어있으나 그 역할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 3. 코발트: 원자 번호 27번의 단단하고 강자성을 띤 은백색 원소. 자석이나 강도 높은 합금 제조에 사용된다.
  • 4. 니켈: 원자 번호 28번의 철족에 속하는 전이금속원소. 스테인리스강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합금, 동전, 전지 등에도 사용된다.

바다는 모든 더러운 것을 받아 정화시킨다

바다는 육지로부터 나오는 온갖 것들을 받아들이고도 썩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바다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고인 상태보다 물속에 산소가 더 많이 녹아들게 된다. 그러면 바다의 오염물질들이 산소에 의해 산화되거나, 미생물들을 비롯한 바다의 생물들이 산소를 이용해서 오염물질들을 분해한다. 또, 정화장치인 해안습지가 바다의 상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해안습지의 빼곡한 입자들은 물을 통과시키며 불순물을 걸러내는 일종의 필터와 같아서 바다를 정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안습지에 사는 미생물들이 해안습지에 걸러진 유기물을 먹어치운다. 해안습지 1제곱킬로미터 안에 있는 미생물의 오염물질 분해능력은 하수처리장 1개의 처리능력과 맞먹을 정도다. 아마존의 밀림이 ‘지구의 허파’라면, 습지는 ‘지구의 콩팥’이라 할 만하다.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화석연료의 사용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급격히 증가시켰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도를 높인다. 바다는 온실효과의 주범으로 생각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찬 바닷물에 녹아 심층수에 저장되거나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에 의해 소비되기도 한다.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만들어 대기 중 산소의 약 70퍼센트를 생산한다. 이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밀림이 생산하는 산소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으로 바닷속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낮아지고, 산소 농도는 높아진다. 지난 1800년경부터 지금까지 약 200년 동안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2240억 톤에 달한다. 그중 절반에 이르는 1180억 톤이 바닷물에 스며들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를 억제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처럼 바다는 다양한 생물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존재다. 또한, 지구는 짭짤한 바닷물로부터 깨끗한 물만 걸러 육지로 공급하는 기발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바닷물은 태양에너지를 받아 연간 42만 5천 세제곱킬로미터가 증발하는데 증발된 수증기는 구름이 되어 대지에 비로 내린다. 우리가 사용하는 민물은 바다에서 비롯되었다. 바다는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물과 산소를 끊임없이 만들어 공급해준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물의 바다를 가진 유일한 행성이며,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곳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행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972년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 찍은 가장 유명한 지구 사진, ‘블루 마블’은 표면을 감싸 안은 바다 덕분에 지구가 푸른 구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바다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인류가 거머쥔 어마어마한 행운이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의 체액과 바닷물의 화학 조성이 비슷하다는 점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 찍은 지구 사진, 블루 마블.
사진 출처: NASA / Wikimedia commons

안정된 환경을 가진 바다는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자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꺼이 지구 생명의 보고가 되어 주었다. 바다는 차가운 고철 덩어리 난파선도 기꺼이 부둥켜안고 바다 생명체들의 보금자리로 탈바꿈시킨다. 모든 것을 품어 안으며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어머니 같은 바다는 인류에게 무한한 혜택을 베풀며 기꺼이 가슴 한편을 내어준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선척이 거기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 시 104편 24~26절

참고자료
『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 著)
『대단한 바다여행』 (윤경철 著)
『지구를 부탁해』 (박동곤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