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전 과정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로 연합군 사령관이자 훗날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꼽는다. 그는 50개국이 넘는 참전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국가 간 첨예한 갈등을 중재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1944년 6월 6일, 미국·영국군을 주력으로 한 캐나다,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노르웨이 등의 연합군 약 16만 명이 노르망디 해안에 전격 상륙해 독일군의 주요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지리멸렬하던 세계대전의 판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게 된 결정타였다.
상륙작전 성공의 여세를 몰아 독일 본토까지 진격해 전쟁을 끝내겠다는 연합군의 계획은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의 격렬한 저항에 가로막혔다. 지지부진한 전투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자 아이젠하워는 전세를 반전시키고 승기를 확실히 잡을 지휘관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조지 S. 패튼 장군이었다. 당시 패튼은 물의를 빚고 보직 해임된 처지여서 어떤 작전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저돌적이고 불같은 성격으로 돌출 행동이 잦은 패튼에게 교착상태를 돌파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전장에 복귀한 패튼은 병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연설로 사기를 높이는가 하면, 최고의 기동력을 갖추는 훈련을 맹렬히 진행했다. 그는 최전방에서 일선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공격, 공격, 의심스러우면 다시 공격”이라고 부르짖었다. 패튼 부대는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로 질주했다. 그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보급 부대가 연료와 탄약을 미처 공급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이젠하워가 패튼의 진격 속도에 맞춰 비행기 보급이라는 묘안을 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패튼의 혁혁한 전공 덕에 연합군은 참혹한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 수순을 밟았다. 전체를 아우르는 계획적인 리더 아이젠하워와 거침없이 전진하는 실천적 리더 패튼. 둘의 공조 결과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 배경은 물론 성격, 취향 등이 저마다 다른 성도들이 복음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여기에는 나와 정반대 성향과 기질을 지닌 동료들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발 빠름이 과격해 보이거나 누군가의 신중함이 우유부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럴 때 이 사실 하나만큼은 기억하자. 모두가 각자의 능력과 성향대로 주어진 직무에 헌신하고 있음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형제가 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는 자매가 있기에 새 언약 복음이 갖가지 장애물을 넘어 신속히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청록과 빨강, 노랑과 남색, 연두와 보라 같은 보색의 대비는 강렬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주어진 믿음의 시간, 나와 다른 형제자매와 아름다운 어울림을 선보이며 영의 세계를 뒤흔들 힘찬 복음의 승전고를 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