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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작용, 저절로 깨끗해지는 자연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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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샛강이 졸졸 흐르고 수양버들과 난초, 갈대숲이 이룬 풍경이 아름다웠던 섬, 난지도.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산업화의 길목에서 난지도는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지로 지정돼 십수 년간 9천 톤이 넘는 쓰레기로 뒤덮이고 말았다.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와 먼지로 심각한 공해가 발생하고 생태계는 무너졌다. 이에 시는 1993년 쓰레기 매립을 중단한 뒤 난지도의 환경 복구에 돌입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산처럼 쌓인 폐기물에서 나오는 유해가스와 침출수를 처리하고 안정화해 생태공원을 조성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이처럼 오염된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은 무척 까다롭고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든다. 하지만 인체의 자가치유능력처럼, 자연에는 다양한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작용으로 스스로 깨끗함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 긴 세월 동안 지구가 끊임없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건강한 환경을 지속해 온 비결이다.

흐르고 섞이며 정화되는 물

물은 산꼭대기의 발원지에서부터 흘러 하천을 지나 바다로 간다. 이 과정에서 동물의 배설물이나 폐수 등으로 조금씩 오염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오염은 스스로 정화한다. 자정작용을 통해서다. 대표적인 것이 ‘희석’과 ‘확산’으로, 오염물질이 많은 양의 물과 섞이거나 널리 퍼지면서 농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이밖에도 수심이 얕거나 폭이 좁은 구간에서 빠른 물살에 의해 부유물이 잘게 부서지는 분쇄, 유속이 느린 구간에서 오염물질이 세균이나 미생물과 함께 서서히 바닥에 가라앉는 침전, 태양광에 의한 살균 등 다양한 물리적 작용으로 수질이 정화된다.

한편 물의 흐름은 대기와의 접촉 빈도를 높여 물에 산소를 공급한다. 산소가 꾸준히 공급되면 호기성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지는데, 미생물은 동물의 사체 등 유기물을 분해해 수질을 정화한다. 물은 낮은 곳을 향해 사시사철 멈추지 않고 흐르는 덕에 여러모로 부패할 틈이 없는 셈이다.

지구상 물의 97퍼센트를 저장하고 있는 바다가 비교적 깨끗이 유지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바닷물은 표면에 부는 바람이나 수온과 염분에 따른 밀도 차이,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돌고 돈다. 이때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와 다양한 염류도 함께 순환해 해양 생태계가 건강히 유지된다. 이따금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이 바닷물을 뒤섞어 적조 현상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여기에 육지와 맞닿은 갯벌의 역할도 크다. 갯벌 가장자리에 자라는 식물들은 하천에서 유입되는 각종 유기물을 퇴적시키고, 수많은 미생물이 이를 분해해 수질을 개선한다. 또 갯벌에 사는 조개들만 해도 매일 5~10리터의 바닷물을 걸러낸다. 총면적이 약 2500제곱킬로미터인 우리나라 갯벌의 정화능력은 전국 하수종말처리장을 합친 것보다 1.5배 높은데, 전 세계적으로 이런 갯벌이 총 127,921제곱킬로미터에 걸쳐 분포한다.

민물에서도 각종 생물이 수질의 자연정화를 돕는다. 갈대, 꽃창포부레옥잠수생식물이 그 주인공이다. 육상식물의 뿌리는 물을 흡수하느라 바쁘지만, 수생식물은 다양한 기관으로 수분을 섭취할 수 있기에 뿌리로 인이나 질소 등 무기질까지 빨아들여 성장에 사용한다. 이는 물의 부영양화1를 막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또 수생식물은 광합성으로 물의 용존산소량을 높이고 플랑크톤 등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물속의 유기물이 제때 분해되도록 돕는다. 그래서 수생 생태계가 발전한 습지는 수질 정화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부영양화(富榮養化): 물속에 질소와 인 등 영양분이 증가하는 현상. 질소와 인이 많아지면 식물플랑크톤이 과다 번식하여 적조 또는 녹조 현상이 일어난다.

토양 정화를 돕는 생물들

토양은 여러 생물의 삶의 터전이다. 그런 만큼 토양에는 미네랄 등 무기질을 함유한 광물질뿐 아니라 동물의 유해나 배설물, 썩은 풀과 낙엽 등 생명 활동의 부산물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 토양은 유기물과 오염물질을 양분 삼아 살아가는 미생물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식지다. 흙 입자 사이사이에 저장된 물과 산소는 미생물의 활동을 더욱 촉진한다.

진균, 세균 등 단세포 생물을 두루 일컫는 ‘미생물’은 자정작용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인공 화합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에너지 공급원으로 삼아 분해하고 자연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철이나 망간 등 광물의 화학적 에너지나 금속 성분도 신진대사에 이용하는데, 덕분에 오염지역에서 우라늄이나 비소 등 중금속의 확산을 막기도 한다. 이처럼 자정작용에 있어 가히 ‘만능’이라 할 수 있는 미생물은 통상 흙 1그램에 1천만에서 1억 마리, 많게는 10억 마리까지 존재한다.

토양이 깨끗함을 되찾는 데는 땅을 고향 삼아 살아가는 동식물의 공도 크다. 대표적인 토양생물로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지렁이는 땅속을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유기물을 먹어 잘게 분해한다. 이 과정에서 흙을 부드럽고 기름지게 하며 자칫 오염원이 될 수 있는 유기물을 다른 동식물이 섭취할 수 있는 안정된 물질로 만든다.

식물들은 독성물질을 흡수하거나 뿌리 주변에 미생물이 서식하게 만들어 토양의 자연정화에 힘을 보탠다. 특히 몇몇 식물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포 속 막으로 둘러싸인 ‘액포’에 독소를 저장해 둔다. 그중에서도 정화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해바라기는 우라늄, 납, 비소 등 중금속뿐만 아니라 방사성 물질인 스트론튬, 세슘도 빨아들여 줄기와 뿌리에 저장한다. 이밖에도 폐광 지역의 호랑버들이 카드뮴과 아연을 잎에 저장해 토양을 정화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으며, 필리핀에서는 다른 식물보다 독성 중금속을 천 배 가까이 많이 빨아들이는 ‘리노레아 닉코리페라(Rinorea Niccolifera)’라는 식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천연 필터로 정화되는 대기

대기는 화산, 산불, 모래 폭풍, 꽃가루 등 다양한 원인으로 오염된다. 운송이나 연료 연소, 산업 공정 등 인간의 활동도 대기를 오염시킨다. 바람은 각종 오염물질을 실어 나르기도 하지만, 이를 널리 퍼뜨려 희석시킴으로써 대기를 정화하는 역할도 한다. 바람을 타고 흩어진 황사가 산성화된 토양을 중화해 지력을 높이고, 바다에 녹아들어 플랑크톤에 무기염류를 공급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오늘날 황사는 중금속 등 인간이 만든 유해물질까지 실어 나르는 탓에 골칫덩이 취급을 받지만 본디 또 다른 생태계를 살리는 거대한 순환의 일부였던 셈이다.

빗물은 황사와 꽃가루 등 공기 중의 미세한 물질을 포착해 대기를 정화한다. 특히 건조한 봄철에 내리는 비는 산불을 예방해 이로 인한 대기오염을 방지하기도 한다. 나뭇잎에 흡착돼 있던 먼지들도 비가 내리면 땅으로 씻겨 내려간다.

식물은 온몸을 이용해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자연의 ‘필터’다. 식물이 대기 중의 오염물질을 없애는 큰 원리는 증산작용과 광합성이다. 증산작용은 식물 안의 수분이 수증기로 공기 중에 배출되는 현상이다. 식물이 수분을 내뿜으면서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 올리면 뿌리 부근의 압력이 대기압보다 낮아진다. 이로 인해 공기 중 오염물질이 토양에 달라붙어 토양 속 미생물에 의해 제거되는 것이다.

또 식물은 잎으로 오염물질을 흡수해 물질대사에 이용, 정화해 내보내며 광합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1989년 미 항공우주국(NASA)은 실험을 통해 식물이 넓이 1제곱미터 이하의 밀폐된 공간에서 포름알데히드, 벤젠 등 발암물질을 하루 동안 최대 70퍼센트까지 제거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지구 표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도 대기 정화에 기여한다. 바닷물은 마치 스펀지처럼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심해에 저장한다. 어패류, 염생식물 등 바닷가에 사는 생물들은 광합성으로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유엔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해양생태계가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속도는 육상생태계보다 최대 50배 빠르다. 서해안기후환경연구소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이 매년 승용차 2만 5천여 대가 내뿜는 정도의 온실가스를 상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연은 언제나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해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찌꺼기는 정화를 거쳐 재생산하며 자급자족해 왔다.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오염으로 그 균형이 깨지면서 기후가 변하고 전에 없던 재난이 빈번해졌다. 사람들은 이를 바로잡고자 초대형 공기청정기와 같은 각종 정화시설을 만들며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연의 자정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놀랍도록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청소 도구’를 곳곳에 갖추고 있는 자연. 인간의 첨단 기술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촘촘한 체계는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일까?

참고
김준, 『김준의 갯벌 이야기』, 이후, 2009.
정해상, 『미생물의 세계』, 일진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