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자란 저에게 놀이터는 주변에 활짝 펼쳐진 논밭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 것은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지요.
농번기에는 호미와 곡괭이를 들고 온 밭을 누비거나 농작물에 약을 치는 부모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수확 철이 되면 콩과 고추를 따거나 고구마를 캐는 등 한 해 동안 부모님이 정성스레 가꾼 농작물을 거두는 일을 도왔습니다. 힘들기보다는 엄마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일터로 나가실 때면 항상 일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논밭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볕 좋은 가을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을 찾았습니다. 농사일이 낯선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함께 농작물 수확을 거들었습니다. 고추 따는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은 곧잘 따라했습니다. 다행히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과 즐겁게 일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단감나무와 밤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감과 밤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이 매우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엄마, 저건 언제 심은 거예요?”
“네가 예전에 ‘우리 집에는 왜 내가 좋아하는 단감이랑 밤나무가 없느냐’고 했잖아. 그래서 심었다.”
저는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인데 엄마는 흘려듣지 않았나 봅니다.
“다 익으면 전화할게. 우리 딸 다 가져가.”
엄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정에서 돌아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밤들이 다 익었으니 빨리 와서 따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온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밤나무 주위에는 입을 쩍 벌린 밤송이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이 직접 까 볼 수 있도록 엄마가 일부러 밤송이를 까지 않고 한곳에 모아 둔 것입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신나게 밤송이 속에 숨어 있는 알밤을 모았습니다. 직접 밤송이를 까서 열매를 얻으니 색다른 기분이었습니다.
엄마가 한 아름 안겨준 밤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 문득 하늘 어머니께서 허락하시는 열매의 축복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모든 복음 사업을 다 이루실 수 있지만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녀들이 결실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영적 추수는 우리 몫으로 남겨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예비하신 알곡을 거두어들이는 영적 추수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겠습니다. 자녀들이 알곡을 결실하여 훗날 하나님께로부터 큰 하늘 상급을 받는 것, 이것이 어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