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모이기만 하면 가위바위보로 편을 갈라서 했던 놀이가 주먹 야구다. 고무공이나 테니스공을 주먹으로 치고 맨손으로 잡는 야구 놀이인데, 주먹만 한 공만 있으면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골목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주먹이 얼얼할 때까지 공을 때리며 놀던 우리의 공통 소원은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를 갖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야구 선수들처럼 폼 나게 방망이로 공을 때리고, 글러브로 멋지게 공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는 매우 비쌌고, 우리 집은 그런 사치품(?)을 살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아빠가 빠따(배트) 하나 깎아줄까?”
야구방망이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내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 어쩌면 막내아들을 달래려는 농담이었을지도 모를 그 말을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매일같이 퇴근하는 아버지를 조르고 보챘다. 아버지가 목재 가공 회사에서 일했기에 하루아침에 방망이가 뚝딱 만들어질 줄 알았다. 바람과 달리 몇 달이 가도록 감감무소식이던 아버지는, 부푼 기대감이 사그라들 즈음에야 마침내 손수 깎은 야구방망이를 의기양양하게 들고 오셨다.
시중에 판매되는 것처럼 매끈하지는 않지만 길고 둥근 원통 모양에다 손잡이는 잘록한 ‘아빠표’ 방망이는 기대 이상으로 근사했다. 문제는, 통나무로 만들어서 초등학생이 들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빼빼 마르고 허약했던 내가 겨우 방망이를 들어서 휘두르면 몸도 같이 휘청거렸다.
정작 친구들과 놀 때는 사용할 수 없는데도 나는 꼭 방망이를 들고 가서 허공에 두어 번 휘둘러 보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왠지 엄하고 무섭게 느껴졌던 아버지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준비한 선물이라 마냥 좋았던 것 같다. 방망이를 들고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게 된 나이에는 더 이상 친구들과 야구 놀이를 하지 않았기에 끝내 관상용으로 남고 말았지만 방망이는 언제까지고 내게 큰 자랑이었다. 사랑이 깃든 특별한 선물이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야구방망이를 기억 속에서 떠올리면 우둘투둘한 손잡이 부분의 촉감과 함께 오랫동안 가시지 않던 생나무 냄새가 기분 좋게 떠오른다.
하루 종일 톱밥 가루가 날리는 현장에서 일하다 잠깐 쉬는 시간에 목재를 꺼내 다듬었을 아버지는, 이제 아들들이 가정을 꾸리고 다 떠난 집에서 가끔 나무 조각으로 두루미 같은 장식품이나 원목 도마, 냄비 받침 같은 것을 만드신다. 이따금씩 아들 내외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건네시는 선물에는 여전히 사랑과 정성이 가득하다.
명절과 생신 때 의례적으로 선물을 준비하거나 성의 없이 용돈만 드렸던 것이 죄송스럽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여쭈면 항상 “집에 다 있다, 괜히 돈 쓰지 마라” 하며 극구 말리시는 아버지. 줄 줄만 알고 받을 줄은 모르는 아버지께 나는 무엇을 선물해 드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