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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이기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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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거나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피한다. 동남아시아 등 사계절 내내 여름이나 다름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햇빛을 가려주는 옷을 입거나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을 설계해 더위를 견딘다. 한국의 경우 폭염에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리는 7~8월이면 각종 냉방 기구의 가동으로 전기 이용량이 폭증해 일시적인 정전을 초래하기도 한다.

반면 동물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도 별다른 장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잘 살아간다. 흰개미는 뛰어난 건축 기술로 섭씨 1~4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 들판에 바람이 잘 통하고 쾌적한 집을 짓는다. 그런가 하면 태어날 때부터 몸 자체에 냉방은 물론 방열과 수분 조절 기능까지 장착하고 있는 동물들도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감탄을 자아내는, 더위에 특화된 그들만의 능력이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물 한 방울 얻기 힘든 메마른 땅에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어대는 거친 모래바람. 이 척박한 사막1에도 작은 설치류에서부터 대형 포유류, 파충류,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간다.

1. 사막(沙漠): 식물이 자라기 힘든 지역으로, 보통 한 해에 평균 강수량이 250밀리미터 이하인 지역을 일컫는다. 열대 사막, 중위도 사막, 한랭지 사막으로 나뉜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열대 사막을 사막으로 기술한다.

더위에 맞서는 이들의 특별한 능력은 털에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털은 공기의 흐름을 막아 체온을 유지한다. 그러나 보통보다 듬성듬성 나 있다면2 단열(斷熱)에서 방열(放熱)로 그 기능이 바뀐다. 사하라은개미 역시 온몸이 털로 덮여 있다. 털 때문에 이 개미의 몸은 우주복을 입은 것처럼 은색으로 번쩍번쩍 빛난다. 이 털은 독특하게도 단면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가시광선적외선 영역의 태양 빛을 반사할 뿐 아니라 이미 흡수한 열을 중간 정도의 적외선 파장으로 방출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소방관이 입는 방열복 역할을 하는 것이다. 뜨거운 지면으로부터 몸통을 최대한 떨어뜨릴 수 있는 긴 다리도 뜨거운 사하라 사막 곳곳을 빠르게 이동하는 데 한몫한다.

2. 피부 표면적 세제곱미터당 털이 30만 개 이하일 때.

사막여우
캥거루쥐
Marshal Hedin/Wikimedia Commons/CC BY-SA 2.0/trimming

사막여우는 작고 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는 동물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다른 여우들에 비해 훨씬 커다란 귀다. 얇고 큰 귀에는 아주 많은 모세혈관이 있어 몸속의 열을 바깥으로 내보내기 수월하다. 큰 발을 가져서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도 잘 걸을 수 있고, 발바닥에도 털이 있어 뜨거운 모래 위에서도 화상을 입지 않는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이 캥거루와 닮아서 이름 지어진 캥거루쥐는 낮 동안 땅굴에서 열기를 피하다가 밤에 굴 밖으로 나와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캥거루쥐의 신장(腎臟)은 독특해서, 포유류 중 가장 농축된 소변을 만들어낸다. 하루에 배출하는 소변의 양이 단 몇 방울일 정도다. 덕분에 캥거루쥐는 씨앗 정도의 먹이만으로도 몸에 필요한 수분을 확보할 수 있다.

쟁기발두꺼비는 한 해의 대부분을 굴속에서 지낸다. 습기가 많거나 그늘진 곳에 사는 두꺼비가 어떻게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에서 살 수 있을까? 물론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 쟁기발두꺼비는 그 이름처럼 쟁기 모양의 발로 땅을 파 시원하고 축축한 굴에 있다가 비가 내리면 밖으로 나와 빗물로 생긴 물웅덩이에서 짝짓기를 한다. 수정된 알은 이틀 만에 부화해 2~4주 만에 두꺼비로 자란다. 이들은 단 몇 주 동안만 땅에서 지내다 굴에 들어가 비를 기다린다. 쟁기발두꺼비가 굴속에서 다시 빗소리를 듣기까지는 11개월 정도 걸린다.

사막의 배, 낙타의 비결

사막 동물들의 생존법을 모두 모은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낙타 몸의 각 부위는 뜨거운 사막에서 살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낙타는 사막에 사는 동물 중 몸집이 꽤 큰 편이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지만,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300킬로미터 이상을 갈 수 있다. 이에 ‘사막의 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한여름 사막의 모래 온도는 60~70도까지 치솟지만, 낙타는 긴 다리를 가진 덕분에 몸통에 전해지는 열기가 지면보다 10도가량 낮다. 온몸을 빽빽이 덮은 털은 햇빛을 반사하며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한다. 머리의 넓적한 뼈는 눈 둘레를 덮어 햇빛을 가리고, 길고 풍성한 눈썹과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는 콧구멍은 모래바람을 막아준다. 낙타의 상징인 혹에는 지방이 들어 있어서 양분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를 분해해 에너지와 물을 만들 수 있다.

낙타는 수분 비축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외부와의 온도 차를 줄여 피부나 호흡으로 증발하는 수분량을 낮추기 위해 체온도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이 때문에 낙타의 체온은 41도와 34도를 넘나들며 하루 동안 큰 폭으로 변하는데, 사람이라면 고열과 저체온증으로 생명이 위험해지는 온도다. 게다가 낙타의 적혈구는 달걀 모양으로 길쭉하게 생겨 물을 많이 흡수할 수 있고,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신 뒤에 생기는 높은 삼투압에도 파열되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낙타는 10분 안에 100리터, 하루에 200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는데 흡수한 물을 핏속뿐 아니라 몸 조직 구석구석에 저장해 두고 조금도 낭비하지 않는다. 소변은 요소를 최대한 농축해서, 대변은 수분을 최소화해서 눈다. 바싹 마른 낙타의 대변은 땔감으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다. 낙타는 몸의 모든 체계가 사막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열대우림·사바나에서 살아남기

한 해 평균 강수량이 매우 적은 사막과 달리 1년 내내 많은 비가 내리는 열대우림과, 우기·건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열대초원 사바나. 이 지역들도 한낮에는 기온이 40도를 넘기기 일쑤다. 그럼에도 열대우림에는 알려진 동물 중 40퍼센트가 살고, 사바나에도 수많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우러져 서식해 ‘동물의 왕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더위를 견딜까?

코끼리는 육상에서 가장 무겁고 큰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피부를 통해 몸에서 발생하는 열을 충분히 내보낼 수 있지만, 코끼리는 몸을 둘러싼 피부 면적에 비해 몸집이 압도적으로 커 열을 방출하는 게 큰 과제다. 코끼리가 큰 귀를 펄럭거리는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코끼리의 넓은 귀에는 얇은 혈관이 거미줄처럼 발달해 뜨거운 피가 지나며 시시각각 열을 방사한다. 체온이 높을수록 귀로 보내는 혈액량이 늘어나고, 귀를 부채처럼 자주 펄럭거린다. 몸에 성글게 돋아난 털도 열을 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코투칸
얼룩말

더운 지역에 사는 새들도 열을 식히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몸집이 코끼리만큼 크지는 않지만, 스스로 비행하므로 대사량이 많은 데다 체온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깃털로 덮여 열을 내보내기 쉽지 않고, 입을 열어 헐떡이면 호흡과 함께 수분도 많이 빠져나간다. 이런 새가 몸의 열을 식히는 수단은 놀랍게도 부리다. 부리는 새의 몸에서 드물게 깃털로 덮이지 않은 부위이고, 계속 자라기 때문에 혈관이 밀집해 있어 체온을 식히기에 적합하다. 게다가 표면이 키틴질로 싸인 덕분에 수분이 날아가지 않아 방열판으로 제격이다. 열대우림의 상징, 토코투칸은 몸속 열의 60퍼센트까지 거대한 부리를 통해 방출한다. 코끼리가 귀로 열을 내보낸다면, 새에겐 부리가 있는 셈이다.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피부색이 다르듯 얼룩말도 서식지에 따라 줄무늬가 달라진다. 최근 그 이유가 온도 차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등장했다. 사바나 얼룩말 중 기온이 높은 지대에 사는 얼룩말일수록 줄무늬가 크고 색이 짙으며 흰 털과 확연히 구분되는데, 검은 부분이 태양열을 더 잘 흡수해 흰 부분과의 온도 차가 생긴다. 연구진의 측정 결과 검은 부분과 흰 부분의 표면 온도는 각각 37도, 31도로 6도나 차이가 났으며 그로 인해 얼룩말의 몸 위에서 공기의 흐름이 생겨 바람이 생성될 정도라고 한다. 얼룩말의 무늬가 자체 선풍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시원하고 달콤한 ‘여름잠’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치명적인 더위를 피하고자 여름잠을 자는 동물들이 있다. 마다가스카르섬에 서식하는 난쟁이여우원숭이마우스여우원숭이는, 곰이 겨울잠을 자기 전에 살을 찌우듯 건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체중의 40퍼센트까지 살을 찌운다. 다만 배가 아니라 꼬리에 지방을 축적하기 때문에 마치 꼬리에 소시지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사막 달팽이도 뜨거운 건기 동안 잠을 자다가 비가 오는 우기에 깨어나 활동한다. 그 외에 노란 모자를 쓴 고슴도치처럼 생긴 로랜드줄무늬텐렉, 악어, 개구리, 도롱뇽 등도 여름잠을 잔다. 일부 곤충도 여름잠을 자는데, 대표적으로 무당벌레가 있다. 여름에 무당벌레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풀뿌리에 숨어 내내 잠을 자기 때문이다.

여름잠을 자는 동물은 바다에도 있다. 까나리는 수온이 17도 이상이 되면 모랫바닥으로 파고 들어가 얼굴만 살짝 내놓고 4∼5개월 동안 긴 여름잠을 잔다. 해삼도 수온이 올라가는 여름철이면 수심이 깊은 바다로 이동하거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여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달콤한 잠에 빠진다.

지금도 수많은 동물이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더위를 이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들로부터 더위와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을 배운다.

최근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 주목받고 있다. 흰개미 집을 본떠 냉방 기구 없이도 365일 실내 온도 24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센터’가 청색기술 활용의 대표적인 예다. 첨단 과학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현명한 기술은 자연에 있었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욥 12장 7~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