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에서 두루미는 자신에게 납작한 접시에 담은 음식을 내줬던 여우를 초대해 호리병에 음식을 내어준다. 여우는 두루미가 당한 것처럼 음식을 보며 입맛만 다신다.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자는 교훈이 담긴 이 이야기는 당한 만큼 돌려준다는 통쾌한 복수극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내가 당한 만큼 남에게 되갚으면 속 시원할 것 같지만 분노와 적대감은 자신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화가 날 때 맥박이 빨라지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은 부정적인 감정이 뇌를 자극해 생기는 스트레스 반응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줘 심장박동이 빨라지면 우리 몸은 긴급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장과 뇌로 흐르는 혈류를 확대시킨다. 근육은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면역 시스템 작동이 억제된다. 이 때문에 심장 질환이나 다른 질병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혈기를 낮추고 상대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으면 신체는 안정 상태로 돌아온다. 긍정적인 생각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줄이고 신체를 이완하도록 돕는다. 면역 시스템이 원상복구 되고 혈압이 정상화되며 두통과 불안감이 사라진다. 편안한 마음가짐 덕에 집중력이 높아지고 에너지가 생긴다.
이처럼 타인을 용서하면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이에게 복수의 편지를 쓴 사람보다 용서의 편지를 쓴 사람에게서 자기 비난이 감소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용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의 따뜻함, 도덕성 등을 더 높게 평가했다. 용서가 자아의 회복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결론이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만큼 되갚아 준다고 해서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일을 곱씹으며 상대를 원망하거나 상대의 잘못을 파헤치면 스스로 감정의 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미움에 사로잡혀 잃어버린 나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상황과 상대를 올바로 바라보는 길이다. 상대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마음에 쌓인 고통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을 힘들게 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스데반은 순교하기 직전, 자신을 돌로 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억울한 죽음 앞에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용서하는 모습은, 당신을 대적한 자들을 즉각 형벌하지 않으시고 십자가 고통 중에도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았다. 스데반 역시 그리스도께서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하신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기에 타인을 용서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닦달하여 주인의 진노를 샀다는 비유를 들려주시며 예수님은, 형제가 설령 내게 죄를 범하더라도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라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대속의 크나큰 은혜를 입고 천국의 찬란한 영광까지 약속받았다. 하나님께 더한 상처를 드렸던 나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면 내게 그보다 작은 상처를 입힌 이를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상대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기억하자. 우리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