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겪은 믿음의 성장통

한국 서울,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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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의 일입니다.

그 무렵 세운 새해 목표 중 하나가 해외선교였지만 솔직히 이룰 자신은 없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식구만 해외선교를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목표를 이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필리핀 단기선교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필리핀에서 현실의 벽을 실감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11월의 필리핀 날씨는 30분만 걸어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무더운 날씨도 곤혹스러웠지만 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빠듯한 일정이었습니다. 저희 팀은 3개월 동안 필리핀 루손섬 중부 누에바에시하주에 있는 도시 카바나투안을 포함해 세 지역을 옮겨 다니며 말씀을 전했는데,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다 보니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체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점점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식구들의 소소한 장난에도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그렇게 3주를 지내다 팀장님의 당부를 듣고 아차 했습니다.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는 것도 선교 활동의 일부입니다. 현지 식구들은 우리를 어머니의 사신으로 생각하고, 우리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희는 선교지와 인접한 교회의 식구들과 함께 팀을 꾸려 활동하던 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필리핀에 온 첫날부터 전도에만 신경을 썼지 식구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전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랑은 고사하고 늘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하늘 어머니께 너무 죄송스러워 눈물이 절로 났습니다.

저는 여태 제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것은 별 어려움이 없었을 때나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달라진 상황 앞에서 본성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른 나의 모습을 대면하고 보니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필리핀에 오게 하신 뜻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채우라고요.

그날 이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물러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로 인해 실망했을 식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궂은일에 앞장서고 식구들을 웃으며 대했습니다. 달라진 제 모습에 식구들은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기쁘기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도가 어찌나 즐거운지 하루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갔습니다. 하늘 어머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한 명에게라도 더 말씀을 전하려고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귀한 하늘 가족을 만났습니다. 바로 타마라 자매님입니다. 진리를 영접한 다음 날부터 매일 시온에 나와 말씀 공부는 물론 청소, 주방 봉사까지 솔선하는 자매님은 예비된 일꾼이었습니다.

식구들과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나누며 울고 웃는 사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교 지역이 다양했던 만큼 만남도 헤어짐도 많았지만 헤어짐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됐습니다. 덕분에 사랑하는 시온의 가족들과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하고 싶은 소망이 가득해졌습니다.

필리핀에서의 시간은 하늘 어머니의 사랑 속에, 여리던 저의 믿음이 단단하게 여무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제 믿음의 그릇이 커지게 했던 성장통마저 감사합니다.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는 새벽이슬 청년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