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무게, 대기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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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려나, 무릎이 쑤시네.”

무릎이 아프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어김없이 비가 온다.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면 기분이 우울해진다거나 온몸이 쑤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니다.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 ‘나 오늘 저기압이야’라고 말한다면 지금 그 사람의 몸은 기상 변화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을 누르는 기압이 줄어들면 관절 내 압력이 높아진다. 높아진 압력이 무릎을 자극해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또한, 기압이 낮아지면 구름이 많아지고 하늘이 어두워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햇빛을 덜 받게 된다. 그러면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 ‘세로토닌’은 감소하고,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이 증가한다. 그래서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날씨에 따른 급격한 신체 변화를 ‘기상병’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기압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의 기분과 몸 상태까지 좌우하는 대기압은 과연 무엇일까?

대기압은 쉽게 말해 공기의 압력으로, 대기에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여 지표면을 누르는 힘이다. 우리가 직관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대기압을 보여주기 위해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토리첼리는 물보다 13.6배 무거운 수은을 이용했다. 길이가 1미터인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넣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유리관을 수은이 담긴 수조에 거꾸로 세웠다. 이때 내려오려는 수은의 무게와 바깥 수조에서 유리관 위로 수은을 밀어 올리는 대기의 힘, 두 가지가 작용한다. 그 결과, 수은은 76센티미터 높이에서 멈추었고 유리관의 윗부분에는 진공 상태가 만들어졌다. 유리관 속 수은의 높이가 더는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힘이 평형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외부에서 작용하는 기압은 수은을 유리관 안으로 76센티미터 만큼 밀어 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압이 높아지면 수은 기둥은 더 높아지고, 기압이 낮아지면 수은 기둥은 낮아진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기압을 측정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은 기압계다. 수은보다 가벼운 물을 이용하면 약 10.3미터의 물기둥이 만들어진다.

우리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는 물리적 현상으로만 여기기 쉽지만 서두에 이미 제시하였듯이 기압은 우리 몸 상태와 더불어 생활 여러 면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음료수를 마실 때 자주 사용하는 빨대도 기압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빨대로 음료수를 빨아들이면, 빨대 내부의 압력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외부 기압이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에 음료수를 빨대 내부로 밀어 넣게 된다. 그렇다면 긴 빨대를 이용해서 무한정 빨아올릴 수도 있을까? 공기가 누르는 힘으로 빨아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10미터 이상은 불가능하다. 같은 원리로 움직이는 진공 펌프도 최대 10.3미터 이상 물을 끌어 올릴 수 없다. 그 이상은 압축 펌프를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가 기압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비행기 안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 귀가 먹먹하거나 아픈 경우가 있다. 몸 안의 압력은 일정한 데 반해 밖의 기압은 낮아져 고막이 팽팽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침을 삼키거나 하품을 하면 ‘펑’ 하고 귀가 뚫리는 느낌과 함께 귀가 먹먹한 현상을 없앨 수 있다. 이는 귀와 목구멍을 연결하는 유스타키오관을 통해 공기가 이동하면서 몸 내부의 기압과 외부의 기압이 같아지는 것이다.

1기압은 1제곱센티미터의 면적에 대략 1킬로그램의 물체가 누르는 힘과 같다. 손바닥의 면적을 대략 50제곱센티미터라 할 때 손바닥으로 떠받치는 공기의 무게만도 무려 50킬로그램이다. 우리는 매일 10미터 물기둥을 어깨에 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공기가 누르는 힘만큼 우리 몸 안에서도 바깥쪽으로 내미는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의 무게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압이 1기압보다 높아지면 우리도 압력을 느끼게 된다.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을 느끼게 되는데 수심이 10미터 낮아질 때마다 수압이 평균 1기압씩 증가하게 된다. 수심 10킬로미터 해구에 사는 심해 생물들은 무려 1천 기압의 압력을 견디고 있다. 사람이 보호장비 없이 내려간다면 수압에 눌려 납작해질 깊이다. 하지만 심해 생물들은 엄청난 압력에도 유유히 바닷속을 헤엄친다. 심해 생물들은 몸속 빈 공간에 공기 대신 물이나 기름을 채워 외부 압력과 평형을 이룰 수 있는 내부 압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심해에 속이 빈 단단한 쇠공을 넣으면 찌그러져도 액체가 가득 찬 알루미늄 깡통은 찌그러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장비를 이용하면 사람도 바닷속 30미터 정도까지는 여행할 수 있다. 공기통 등 장비를 착용하고 즐기는 스쿠버다이빙이 그 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몸에서 하나둘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스쿠버다이버들은 수심 30미터 정도에서 판단력, 기억력이 점차 흐려지고 응급사태에 대처하지 못하는 ‘질소 마취’를 경험하고는 한다. 물속 깊이 들어갈수록 압력이 높아지고 사람의 혈액 속에 더 많은 공기가 녹아 들어가는데 체내에 녹아들어 간 질소가 마취 효과를 내는 것이다. 30미터 이내의 수심으로 올라오면 곧 증상이 사라진다.

그러나 물 밖으로 갑자기 올라오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이른바 ‘잠수병’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 위로 급하게 올라오면 기압이 낮아지고 혈액 속에 녹아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거품을 만든다. 이 거품에 의해 모세혈관이 터지게 되는데 뇌혈관이나 중요 혈관을 건드리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바닷속과는 반대로, 고지대에 오르면 기압이 내려가면서 산소가 희박해진다. 갑작스럽게 체내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피로와 두통, 구토 등이 일어나고,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며 호흡곤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을 통틀어 ‘고산병’이라고 한다.

더 높이 올라간 우주는 어떨까? 우주 공간과 같은, 기압이 0인 진공 상태에 노출되면 몸 안에서 밖으로 미는 힘만 존재해 몸이 팽창되어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곧바로 몸이 펑 하고 터지는 것은 아니다. 1965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 연구 시설의 저압실 안에서 테스트 중이던 우주복이 터지는 사고로 사람이 진공 상태에 노출된 적이 있다. 그는 15초 만에 의식을 잃었지만, 주위의 응급처치로 의식을 회복했다. 사고 후 작성된 보고서에는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이 입속의 수분이 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몸을 감싸는 피부 덕분에 잠깐의 진공은 견딜 수 있었지만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체가 진공에 노출되면 먼저 산소결핍으로 정신을 잃는다. 압력이 사라지면서 끓는점이 내려가 체액과 혈액이 급속하게 증발하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피부나 근육조직이 부풀어 오른다. 증발로 주변 온도가 빠르게 내려가면서 몸이 얼어붙기까지 한다. 불과 1분여 만의 일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우주인은 외부 작업 시 불편하고 투박해 보이는 ‘선외 우주복’을 착용한다. 우주복 내부는 0.3기압 정도로 일반적인 1기압의 대기보다 낮으므로 우주 유영 하루 전에는 우주선의 기압을 낮춰 몸이 낮은 기압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행성인 화성은 우주 공간과 비슷한 0.01기압의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희박한 대기를 가진다. 반대로 금성은 90기압에 이르는, 뜨거운 이산화탄소 대기가 있는 곳으로, 1제곱미터당 900톤이 넘는 무게가 짓누르는 곳이다. 그에 반해 지구에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1기압의 공기가 머무른다. 공기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큰 불편함 없이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더없이 적절한 공기의 양과 그 무게를 견디도록 만들어진 생명체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줄까?

“…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 욥 28장 23~25절

참고
『과학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과학질문사전』 (과학교사모임 著)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 (김태일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