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범주에서 벗어나거나 일반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가리켜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저급한 행동이나 생각은 ‘차원이 낮다’, 수준이 높은 행동이나 생각에는 ‘차원이 높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차원이라는 뜻은 사물을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입장, 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상이나 학문의 수준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차원이라는 말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인문학적인 뜻의 차원 외에 2차원 평면이나 3차원 공간을 말할 때 쓰는 수리물리학적인 의미의 차원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차원을 인식하는 면에 있어서 우리는 ‘차원이 낮다’고 할 수 있다. 2차원 세계에서는 3차원 세계를 바로 알 수 없듯 우리가 바라보는 3차원 세계에서는 더 높은 고차원의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주는 몇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차원과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이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은 다양한 차원을 등장시켜 우주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의 차원
차원이란 수리물리학에서 공간 내에 있는 점 등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좌표축의 개수를 말한다. 우리가 수학 시간에 단계적으로 배운 수직선과 좌표평면, 좌표공간이 바로 차원을 수학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길이, 면적, 부피와 같은 물리량으로 설명된다.
점으로 표현되는 0차원은 길이, 면적, 부피가 모두 없다. 그러므로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좌표축이 존재하지 않는다. 1차원은 하나의 축만 존재하며 길이는 있으나 면적과 부피는 없다. 직선 위의 위치는 하나의 좌표로만 표시한다. 2차원은 평면으로, 길이와 면적은 있지만 부피는 없다. 평면상에서의 위치는 직교하는 가로축과 세로축 2개의 좌푯값으로 나타낸다. 공간인 3차원은 길이, 면적, 부피를 모두 가지며, 가로축과 세로축에 수직인 또 다른 축까지 총 3개의 좌푯값으로 위치를 표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것이 4차원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다. 4차원 시공간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이라는 물리량을 하나의 차원으로 포함한다. 과거에는 시간이 어디에서나 똑같이 흐른다고 생각했으므로 과학자들은 3차원 공간에 시간의 좌표축을 포함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에 근접할 만큼 빠른 속도를 가진 물체나 블랙홀처럼 중력이 매우 큰 공간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며,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시간의 축은 상대성이론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가진 좌푯값이 될 수 있었으며,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고차원의 세계
수학자 에드윈 애벗의 소설 『플랫랜드』는 차원 문제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2차원 세계인 플랫랜드에 사는 스퀘어 씨가 1차원의 라인랜드와 3차원의 스페이스랜드 그리고 차원의 개념이 없는 포인트랜드를 방문해 그 세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각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그 세계의 법칙으로만 모든 것을 이해한다. 예를 들어, 라인랜드1차원에 간 스퀘어 씨가 그곳 사람들에게 더 높은 차원의 플랫랜드2차원가 존재함을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앞’과 ‘뒤’는 이해해도 ‘좌’와 ‘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라인랜드 사람들은 스퀘어 씨의 말을 믿지 못한다. 스페이스랜드3차원에 간 스퀘어 씨도 ‘아래’와 ‘위’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고는 스페이스랜드를 환상의 세계로 느끼기도 한다.
위 소설의 이야기와 같이 낮은 차원에서는 높은 차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길이만 있는 1차원에서 2차원 면적과 3차원 공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2차원에 사는 생명체가 있다면 분명 ‘높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넘나드는 3차원 생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공간과 그 너머 4차원의 시공간에 대한 의문점 또한 완전히 풀렸다고 말하기는 이르다.1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고차원의 세계를 과학적 이론과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블랙홀을 통과하여 고차원에 들어간 아버지가 집 안 서재에서 과거의 어린 딸을 만나는 장면인데,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를 매우 안타깝게 보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딸은 아버지를 볼 수 없다. 그런 딸은 아버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3차원의 공간에 갇혀 있어 고차원에 있는 아버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1.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보통 3차원 공간이라 표현하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으로 말하기도 한다.
4차원에서의 시간 여행 여부가 한때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자주 다루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4차원 시공간에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과거로 여행한다고 했을 때, 과거의 A와 지금의 A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할 수 있을까? 똑같은 물체가 동일한 차원의 시공간에 있다는 것은 물리법칙에 어긋난다.2
2. 만약 같은 시공간에 동일한 물체가 존재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우주의 총 질량과 에너지의 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부터 시작해서 모든 물리법칙이 무너진다.
고차원의 우주를 그려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2차원 평면에 3차원 입체를 표현하는 방법이 무척 독특하다. 피카소의 작품에 그려진 사람들은 앞모습과 옆모습, 뒷모습과 앞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한 입체의 각 면을 한 평면에 담아 캔버스에 4차원 공간을 구현한 것이다. 평면에 표현할 수 없는 입체적인 모습과 함께 보이지 않는 아픔과 처절함까지 담고 있는 듯하다. 피카소는 차원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20세기 최고의 예술가가 되었다.
인간의 감각은 오직 3차원까지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3차원 공간에 갇혀 있는 우리는 0차원, 1차원, 2차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더 높은 차원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3차원의 생각으로 고차원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의 모든 이해 수준과 물리적 법칙들이 3차원 공간만을 만족시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은하의 회전 속도와 우주의 가속 팽창으로 그 존재를 추론해낸 미지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제외하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우주는 불과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3차원의 물리적 법칙으로는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현상들을 규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차원의 개념을 들고나왔다. 피카소의 시각으로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리학의 최대 과제인 중력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장이론3을 완성시키려 등장한 끈 이론4이나 막 이론5은 시공간이 무려 10차원에서 11차원에 이르는 고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기본입자들을 끈의 진동이나 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3. 통일장이론: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기본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하나로 통합하여 설명하려는 이론. 전자기력과 강력, 약력은 미시 세계에서 통일되었으나 거시 세계에서만 존재를 드러내는 중력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 ‘끈 이론’과 ‘막 이론’이다.
4. 끈 이론: 자연계의 최소 단위가 점 입자가 아닌 ‘진동하는 끈’이라는 물리 이론. 입자의 성질과 자연의 기본적인 힘이 끈의 모양과 진동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초끈 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5. 막 이론: 다섯 가지 초끈 이론이 수학적으로 11차원에서 단일한 이론체계로 통합될 수 있음을 밝힌 이론으로, 물질의 본질을 막으로 설명하며 M-이론이라고도 불린다.
우리의 감각으로 우주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인지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들도 어쩌면 차원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광활한 우주도 우리에게는 그저 3차원의 세계로 인식되지만, 저 깊은 우주 속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현상들이 넘쳐날 것이다.
우리는 3차원 공간에 구속된 존재다. 그 너머의 세계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다. 어떻게 하면 그 세계를 바로 볼 수 있으며, 어느 누가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장 2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장 33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 3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