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접해서 살자

조회 11,050

성경 가운데 하나님께 사랑받고 구원받은 믿음의 선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들처럼 말씀에 접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대상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에어컨을 가까이한 사람에게는 시원한 바람이 전달되고 히터를 가까이한 사람에게는 뜨거운 바람이 전달되듯,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자의적인 생각에 편중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힘을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시온 가족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세상의 모든 곤고한 심령들에게 성령의 단비를 풍족히 부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에서 가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참예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말씀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라 하셨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장 17~19절

가감하지 말고 말씀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가르침입니다. 말씀 가운데 생명이 있고 구원과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과 접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금전이나 명예, 권세나 세상의 일락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살펴볼 때, 그런 것들을 가까이한 사람들은 모두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서도 세상 일락을 가까이한 탕자는 아버지 집을 버리고 고향을 등진 채 먼 나라로 떠나 거기서 온갖 고초를 다 겪습니다. 갖은 고초를 겪고 나니 비로소 자기가 왜 그런 처지가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불행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고향을 멀리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눅 15장 11~24절 참고).

고향 집이 가까워질수록 탕자에게는 행복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탕자가 고향 집의 아버지께 돌아옴으로써 아버지의 사랑도 느끼고 기쁨과 행복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접한 선진들의 삶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 가운데 노아의 생애를 통해, 말씀에 밀착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로서 모든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살펴보겠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창 6장 14~19절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노아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하나님을 가까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지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한 사람은 오직 노아뿐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악한 행위로 인해 멸망에 이르렀으나,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했던 노아는 말씀에 의지해서 살았던 고로 구원의 방주를 설계할 기회를 허락받게 되었고 그 방주를 통해 자신뿐 아니라 자기 가족들과 생축들을 구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도 다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소수는 노아처럼 말씀에 접한 삶을 살았습니다. 기골이 장대한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돌아온 열두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이 “그들은 사람 같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큼은 “그들은 우리 밥이라”고 외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민 13장 25절~14장 9절

여호수아와 갈렙은 항상 하나님 가까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강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반면,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하나님의 향취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러니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도 절대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신다 하셨으면 그 말씀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데 중간에서 생기는 장애물 때문에 자포자기하여 이제껏 믿어왔던 모든 신앙이 일시에 소멸되는 사건이 광야생활 가운데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한 연고로 인해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 14장 26~30절

말씀을 절대시하는 사람이 가는 천국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의 여정은 오늘날 천국을 향하는 우리 믿음의 여정을 모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거울 삼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은 절대시하고 중시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말씀을 절대시하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말씀에 더 가까이 밀착해봅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진한 하나님의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향취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탕자처럼 하나님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살아보십시오. 성경 말씀을 읽기만 하면 저절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속에 새겨 넣고 실천해 보십시오. 말씀과 접해서 살아갈 때 말씀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을 깨달아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장 22~25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장 14~26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요 죽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옮기게 될 때 말씀에 접해서 살아갈 수 있고 우리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도,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아브라함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써 의롭다 칭함을 받고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바로 말씀에 접한 삶이 되겠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삶

작은 것이라도 행함과 실천 속에서 말씀에 접할 때 말씀대로의 은혜로운 결과가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행함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하고 신성시해야 할, 전도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장 2~8절

우리가 이 말씀에 접해서 살려고 한다면 말씀대로 실천해야겠습니다. 말로만 전도하고, 생각과 결심으로만 전도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말씀에 접해서 사는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도 맞고 여러 가지 불이익도 당했지만 말씀 전파하는 일을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씀에 접해서 살았기 때문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마다 많은 열매가 맺혔고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의의 면류관이 그를 위해 예비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에 접한 삶 속에서 날마다 힘있게 말씀을 전파하면 그로 인해 성령의 힘을 덧입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로운 결과를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6장 10~20절

우리는 말씀으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인류에게 장차 다가올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그런 메시지를 듣지 못한 세상 만민에게 알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1억 8천만 명의 영혼 구원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일을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겠거니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게 될 때 세계 구원의 역사가 속히 이루어질 것이며, 개개인이 행하지 않는다면 온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목표는 단지 구호에 그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언의 소리를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허락됩니다. 말씀에 더욱 접해서 베드로같이 믿음으로 전하고 요나같이 믿음으로 외치게 되면 하루에 3천 명도, 12만여 명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행 2장 38~41절, 욘 3장 1~10절, 4장 11절 참고). 시온의 가족들 모두 베드로 같은 선지자가 되시고 요나 같은 선지자가 되셔서, 말씀에 접한 은혜로운 믿음의 삶 속에서 세계 만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