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로마올림픽의 주인공은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 아베베 비킬라였다. 그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거머쥐면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맨발’로 해냈다.
당시 비킬라는 부상한 동료를 대신해 뒤늦게 출전한 터라 맞춤 운동화가 없었다. 불편한 신발보다 맨발을 택한 그는 ‘맨발의 아베베’로 일약 스타가 됐다. 푹신한 밑창이나 기능성 쿠션도 없는 맨발만으로 어떻게 아스팔트와 돌길이 대부분인 마라톤 코스를 소화할 수 있었을까?
정교하고 굳건한 발
신체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며 거의 종일 우리 시야 밖에 머무르는 발. 그나마도 양말과 신발에 꽁꽁 싸여 본모습을 마주하기조차 쉽지 않지만 실은 손만큼이나 섬세한 구조를 가진 기관이다.
사람의 몸은 206개의 뼈로 이뤄져 있는데 한쪽 발에는 그중 10퍼센트에 해당하는 26개의 뼈가 있다. 이 뼈들은 30개의 관절과 맞닿아 부드럽고도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이 뼈 27개, 관절 25개로 이루어져 있음을 감안하면 발이 얼마나 정교한 기관인지 알 수 있다. 더구나 발에는 손만큼이나 많은 말초신경이 있어 연습을 거치면 발이 손의 역할을 웬만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뛰어나다. 특히 발바닥에는 고도의 신경과 감각수용체가 밀집돼 발이 땅을 디딜 때 반사적으로 뇌에 감각피드백을 전달, 움직임을 조정하게 한다.
발에서 가장 큰 뼈는 발꿈치뼈다. 발꿈치뼈는 걸을 때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지면에 닿는 부분으로, 체중을 지탱해 균형을 잡는 중심 역할을 한다. 발가락뼈는 걸을 때 체중의 60퍼센트를 감당하는 엄지발가락에 2개, 나머지 발가락에는 3개씩 있다. 덕분에 발가락은 보행 시 체중을 옮기는 지렛대 역할을 유연하게 수행하며, 바닥을 밀어 몸을 전진하게 한다.
뼈들은 반창고처럼 생긴 107개의 인대로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다. 인대는 가만히 서 있을 때 최대 100킬로그램의 하중까지 견뎌낼 만큼 튼튼해 발의 모양을 유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힘줄[腱, 건]은 뼈와 근육을 이어 근육의 수축력을 뼈에 전달한다. 장딴지 근육으로부터 발꿈치로 이어지는 아킬레스건은 우리 몸에 있는 힘줄 중 단연 으뜸이다. 여타 영장류의 것보다도 훨씬 길고 강하며, 달릴 때 탄력 있는 스프링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완충 작용은 물론 신체의 도약을 돕는다.
걷거나 뛸 때 발에는 보통 몸무게의 3배에서 7배에 달하는 압력이 가해지며, 인간은 일평생 지구 세 바퀴 반인 16만 킬로미터 이상을 걷고 발을 3억 번 가량 굽혔다 편다. 발목부터 발가락 끝까지 촘촘히 연결된 약 20개의 근육은 매일 1천 톤 가까이 누적되는 압력을 견디고 쉼 없는 움직임에도 끄떡없는 내구성을 자랑한다.
발에 고루 분포하는 수백 개의 혈관은 피와 산소, 영양분을 발끝까지 전달한다.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발의 피부와 체온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수많은 혈관이 자리하고 있는 발은 몸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마치 펌프처럼 피를 심장으로 되돌려 보내는 역할을 해 ‘제2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가장 완벽한 건축물, 발의 아치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직립보행이다. 220여 종의 영장류 중 사람만이 유일하게 직립보행을 한다. 인류는 두 발로 걸음으로써 두 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도구를 비롯한 다양한 문물을 발전시켰다.
직립보행을 하려면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체중을 지탱하는 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은 신체 면적에서 불과 2퍼센트를 차지하면서도 나머지 98퍼센트의 체중을 지탱하며, 달리면서 받는 충격을 거의 모두 소화할 정도로 훌륭한 완충기 구실을 한다. 아베베 비킬라가 맨발로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발이 그 자체로 걷기와 달리기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비결은 바로 발바닥의 ‘아치’다. 아치는 창이나 문, 다리의 위쪽을 활 모양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는 건축 구조로 보통 상부의 하중을 안정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쓰인다. 사람의 발을 옆에서 보면 발바닥 가운데에서 오목하게 패인 아치형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발의 아치는 발등을 가로지르는 방향과, 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을 향하는 세로 방향으로 교차해 있다.
이 아치들은 발이 땅에 닿을 때 펴지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발에 가해진 힘의 일부를 몸에 돌려준다. 또한 발이 반복적인 충격과 압력에도 구부러지거나 망가지지 않게 한다. 이때 아치 꼭대기의 쐐기돌 역할을 하는 발목뼈가 힘의 균형을 잡아준다.
아치 아래에는 족저근막이 자리하고 있다. 족저근막은 영장류 중 사람에게만 있는, 발뒤꿈치부터 앞발바닥까지 퍼진 두꺼운 띠 모양의 섬유 조직이다. 발의 앞뒤를 잇는 고무줄처럼 작용해, 아치가 펴진 뒤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만든다. 또 걸을 때 뒤꿈치에 전달되는 하중을 덜어주고 충격을 흡수해 관절을 보호하며, 발을 들어 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만약 아치의 모양이 달라지면 발 곳곳에 통증이나 이상이 생긴다. 아치가 없어 발바닥이 평평한 평발은 장거리 보행 시 발이 쉽게 피로해지고 뒤꿈치가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발목을 자주 삐게 된다. 반대로 아치가 너무 높은 경우에도 충격이 발에 고루 흡수되지 않고 압력이 발바닥 앞쪽에 과도하게 쏠려 발가락 통증과 굳은살을 유발한다. 심하면 통증이 무릎에까지 미치기도 한다. 이런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절묘한 각을 이루고 있는 발의 아치를, 혹자는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 칭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찍이 발을 가리켜 “공학의 걸작이자 예술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발은 가장 천하고 못난 지체로 여겨졌다. 발이 건강을 위해 꼭 챙겨야 할 우리 몸의 기반으로 대우받게 된 것은 의학이 발전한 최근의 일이다.
축구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시원한 골도, 사뿐히 내려앉는 꽃잎처럼 아름다운 무용수의 몸짓도 모두 발끝에서 시작한다. 굳이 이렇게 전문적인 활동을 꼽지 않더라도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서 하루를 여는 출발선에도 늘 발이 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걸작’을 디디고 살아간다. 일평생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수고하며 일상을 든든히 받쳐주는 받침을 디디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