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태초부터 종말을 고하시고 영원을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생각은 인생의 생각보다 지극히 높습니다(사 55장 9절).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결코 ‘안 됩니다(NO)’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한 번의 불순종으로 영원한 천국의 축복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부는 인류를 영원한 행복과 구원 가운데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모든 말씀을 항상 ‘예(YES)’ 하며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일을 우리의 교훈으로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시대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성령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지향점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장 18~22절
사도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나를 따라오너라” 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예’ 하고 응했습니다. 생업의 도구였던 배도, 그물도 중요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인생으로서 해야 할 가장 값진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을 따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으나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영광은 얼마나 크고 영원하겠습니까?
믿음의 길을 걷는 동안 우리 역시 각자가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무게에 때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안 됩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모든 역사를 살펴보아도 하나님 말씀에 ‘안 됩니다’라고 거절해서 복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잠시 잠깐은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행복이 넘치는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언제나 ‘예’ 하고 달려가는 시온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6장 9~22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만들라고 명하신 방주는 당시의 선박 기술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배였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배를 짓는 것도 큰일이려니와 사자, 늑대, 뱀 등 각종 짐승을 방주 안으로 들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예’ 하고 다 준행했습니다. 우리 미래의 유익을 내다보시고 분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하늘의 창이 열리고 땅에서는 깊음의 샘들이 터지는 가운데 40일 동안 비가 내려 온 땅이 물로 뒤덮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지어진 방주는 닻이나 키, 돛 등 배를 운항하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도 없었지만 무사히 아라랏산에 다다랐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아멘’ 하고 따른 믿음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구원의 방주인 시온에 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필요한 여러 조건들이 시온에 아직 미비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안 됩니다’ 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된다 하셨으면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장 1~4절
아브라함은 평생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나아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말씀을 좇아서 갔습니다. 아브라함, 노아, 베드로 등 하나님께 축복받은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 뜻 안에서 ‘예’ 하는 믿음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성부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예’ 하는 사람이 복을 받았고, 성자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 하는 사람이 복을 받았습니다. 성령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과 신부께서 자녀들에게 복된 미래를 허락하시기 위해 명하신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준행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기드온의 역사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해내시고자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집안도 보잘것없고 별반 영향력도 없는 자신에게 크나큰 분부를 내리시니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이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했습니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삿 7장 1~3절
적군의 수와 비교해 이스라엘 군대는 너무나 적은데도 하나님께서는 군사의 수가 많으니 두려워 떠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강력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창칼과 활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군사의 수가 많은 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은 일만 명도 많다고 하시며 그 가운데 삼백 명만 선발하게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삼백 명이 아무리 용사들이라 해도 수백 배가 넘는 적들과 싸우기에는 중과부적입니다. 만일 기드온이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번번이 안 된다고 답했다면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어떤 결과를 맞이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군사의 수를 삼만 이천 명에서 일만 명으로 줄이실 때도, 일만 명에서 다시 삼백 명으로 줄이실 때도 기드온의 대답은 오직 ‘예’였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도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에 그는 삼백 명의 군사로 십삼만 오천 명의 적을 물리치고 미디안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복음 역사도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울의 적은 티끌과도 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루지 못하시겠습니까? 온 세계에 복음이 전해진다는 약속을 번복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삼백 명의 군사로 적진에 나아간 기드온처럼, 오늘날 우리도 그 같은 믿음을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분부에 언제나 ‘예’로 답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장 1~9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겠습니까? 어떤 무기를 가져온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힘 있는 약속은 없습니다. 거대한 여리고성 앞에서 여호수아인들 어찌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움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더 컸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고 나아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매일 한 바퀴씩 성을 돌고 칠 일째 일곱 바퀴를 돈 뒤 백성이 다 크게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외치자 여리고성은 종잇장보다도 연약한 성이 되어 저절로 무너졌습니다(수 6장 1~21절).
이는 비단 여호수아 시대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은 오늘날 여호수아의 사명을 받은 시온의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것이라 하셨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 앞에서 이끄시고, 뒤에서 밀어주시고, 옆에서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여리고성이 아니라 온 우주를 통괄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허락해주신 이면에는 이러한 믿음의 정신이 뒤따릅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 요 12장 48~50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명령, 즉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영생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아멘’으로 대답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베드로, 요한 등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 앞에 ‘안 됩니다’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신 가르침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어려움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두렵고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곧 믿음이 어떠한지 알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장 1~3절
가나안이 멀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걸은 것이 아닙니다. 걸어가면 열흘도 채 걸리지 않는 그 길을 40년 동안 걷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라고 하는지 ‘안 됩니다’ 하는지 그들의 믿음을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물이라 하셨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의 광야를 걷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 앞에 멈춰 서는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어려움을 뛰어넘는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보고 계십니다. 노아가 만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수아와 기드온이 만난,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복음을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며,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영의 아버지 어머니가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항상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성경 예언 속 여인의 남은 자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 28장 1~6절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류가 복 받는 비결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떤 일을 해도 곳곳에 복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다른 방법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풍성한 영적 수확을 얻게 되는데, 자기 생각을 집어넣으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막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순종이란 하나님 앞에 절대 ‘안 됩니다’라고 답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혹여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면 이제 회개하고 구원의 역사에 동참합시다. 우리는 작은 지구 안의 문제 앞에서도 고민하고 쩔쩔매지만,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작과 끝을 아시고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시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항상 하나님 자녀로서 본분을 다하고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고 따라가며 언제나 복 받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시온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천국 본향에 돌아가는 날까지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히 채우며 하나님의 뜻을 만민에게 전파하는 가운데 모두가 하늘 영광의 잔치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