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으면 주변에 길을 묻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길도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가 길을 잃었을 때 ‘나는 누구일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100년 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며 복잡한 상념에 잠기곤 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덧없이 흘려보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류는 길을 잃은 존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우리마저 길을 잃고 방황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영적으로 나아갈 길을 정확히 찾고,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인생길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성경이 제시하는 방향대로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길을 잃은 사람이 가장 바라는 일이 무엇일까요? 제대로 된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는 행인들에게 물어가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도 길을 찾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소크라테스에게, 때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동서고금의 많은 지혜자들에게 인생의 길을 묻습니다. 인생이 어디에서 왔고 장차 어디로 가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등을 알려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답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잃은 인류에게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알고자 했던 정답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답이 무엇이었는지 성경 안에서 발견해 봅시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 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 40장 9~11절
어느 길이 우리가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냐는 질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길을 잃고 헤매는 인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부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성자 시대에는 예수님을, 성령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너희 하나님을 보라”고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무리 재물을 많이 모은 사람도 그 영광은 이내 시들어버리는 들꽃 같고 결국은 안개와 같이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 영원한 세계를 예비하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사 40장 6~8절, 약 4장 14절).
믿음의 조상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인물입니다(행 13장 22절). 그러한 다윗도 길을 잃은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강조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편 1~6절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올바른 삶인지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다윗은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영혼을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어주셨고, 어둠 속에서도 안전하게 걸음을 옮기도록 지팡이가 되어주셨습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시 25편 12절, 34편 9절).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므로 내가 아무 부족함이 없게 되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훈입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어 불안해합니다.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삶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두 눈을 감은 채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앞으로만 내달리는 것이 대다수의 인생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마음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경과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먼저 찾으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어주십니다(요 14장 6절). 길을 헤매느라 시간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지 않으려면,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찾고 그 뜻을 따르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원한 천국을 향해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길을 물어봅시다.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과연 어떤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지 성경 말씀을 보겠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장 13~14절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당시 누구보다 큰 권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 없고, 마음에 원하는 바는 다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과 지식이 뛰어난 자들, 유력한 자들을 전부 만나본 그가 내놓은 인생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삶의 끝자락에 가서야, 하나님을 찾지 못한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계속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전도서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행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본분임을 후대에 전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또 어떤 답을 주고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겔 34장 15절
인류가 길을 잃고 헤맨 이유는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목자가 없어서였습니다(겔 34장 5~6절). 에스겔 선지자 또한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이사야, 다윗, 솔로몬⋯ 믿음의 선진 중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어김없이 하나님을 찾으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인류가 잃어버린그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 이웃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심령으로 우리에게 길을 물어온다면 우리는 어떤 답을 제시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길을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또한 그들을 하나님께로 직접 인도해 주는 안내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 사명을 가리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마 28장 19~20절). 세상 모든 족속이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니, 그들에게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라는 말씀입니다.
성자 시대에도 길을 잃고서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도들은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장 25~31절
바울과 실라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옥중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때 큰 지진이 나서 감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차꼬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감옥을 지키고 있던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길을 묻는 그에게 바울은 지체 없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가장 정확하고 간명한 답을 주었습니다.
성부 시대나 성자 시대나 성령 시대나 인류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한 모습으로 각자가 주어진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저변에는 누군가 자신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만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전도하게 하신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유리방황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길을 묻고 싶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으니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성부 시대와 성자 시대에 그러했듯이, 오늘날 성령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우리에게 길을 물어올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된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삶의 길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주어지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막연히 소비할 뿐입니다.” 이렇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과거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길을 가르쳐줍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장 17절
성령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인생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성부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성자 시대에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 바른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령과 신부로 임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온전한 믿음으로 따르는 것이 인류가 걸어야 할 정로가 되겠습니다. 성경은 이 말씀으로 66권의 마지막 결론을 내리고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우리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길을 물어오는 자가 있으면 지체 없이 “성령과 신부에게 나아오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고 자신 있게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50년을 살아도, 100년을 살아도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의 길을 제대로 찾아오는 사람은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좁은 문’이 알고 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마 7장 13~14절). 우리의 역할은 이 좁은 문을 제대로 알려주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좁은 문으로 인도하는 행위입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새 언약 유월절의 길, 안식일의 길을 알려주고, 3차의 7개 절기와 침례의 길도 알려줍시다. 하나님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올바르게 가르칩시다. 또한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위대한 희생과 사랑도 다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찾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우리에게 주신 이 길을 더욱 힘차게 달려갑시다. 구원의 길을 묻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새 언약 절기를 지키는 시온으로 안내해 줍시다. 이것이 성령 시대에 길을 가르치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서 많은 영혼을 회개시켜 영원한 천국, 영생의 길에 함께 나아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