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던 15~17세기, 후발 주자였던 네덜란드는 유럽 상선의 80퍼센트가량을 보유하며 세계 해운업을 주도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따돌리고 선두 주자로 나선 비결 중 하나가 네덜란드 상선에 대한 높은 신뢰였다. 그 신뢰의 시작점에 빌럼 바렌츠 선장이 있었다.
1596년, 바렌츠 선장은 북극해를 넘어 아시아로 가는 최단거리 바닷길을 개척하기 위해 세 번째 항해에 나섰다. 바렌츠호는 경쟁국이 선점한 항로보다 빠르게 가겠다는 각오로 야심차게 출항했으나 얼마 못 가 빙하에 갇히고 말았다. 선원들은 갑판을 뜯어 빙하 위에 움막을 짓고 그 안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동물을 사냥해 허기를 달랬다.
약 1년이 지나 선원들은 두 대의 보트에 나눠 타고 빙하가 녹아 벌어진 틈으로 간신히 탈출했다. 구조를 기다리며 표류하는 동안 쇠약해진 바렌츠 선장이 사망했다. 선원들이 구조된 것은 빙하에서 빠져나온 지 50일이나 지난 뒤였다.
사람들은 선원들의 기적 같은 생환에 놀란 데 이어, 그들이 혹한과 기아, 질병이 위협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고객이 맡긴 물품을 손실 없이 돌려주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객의 물건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은 바렌츠 선장의 결단이었고 선장의 사망 후에도 변함없이 지켜졌다.
바렌츠호 선원들의 신의 있는 행동에 감동한 유럽의 무역업자들은 네덜란드 상선과의 계약을 앞다퉈 추진했다. 바렌츠 선장은 비록 북극 항로 개척에는 실패했지만 ‘네덜란드 상선=신뢰’라는 든든한 밑천을 남겼다. 네덜란드는 이 신뢰 자산을 토대로 해양 강대국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
미국의 어느 리더십 전문가는 신뢰의 구성 요소로 ①말과 행동의 일관성 ②솔직하고 이타적인 의도 ③재능·태도·기술·지식의 총합인 능력 ④목표를 이루는 성과를 꼽았다. 각 요소의 점수가 골고루 높을 때 신뢰도가 상승하고, 신뢰도가 높은 개인이나 조직일수록 성장 속도도 빠르다고 한다. 바렌츠호의 신뢰 점수는 이 기준으로 보더라도 최고 수준이다.
영육 간 나의 신뢰 점수는 어떨까. 네 가지 항목에 각각 점수를 매겨 보면 개선해야 할 부분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신뢰를 받을 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온전하지 않은데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어주셨다. 나아가 우리를 옳게 여기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할 적임자로 택하셨다. 내 영혼의 부족한 점을 충실히 채우며 하나님께서 믿고 맡기신 각자의 사명을 완수하자.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무한한 신뢰에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