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40년 광야 길은 순종의 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산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유월절로 재앙 가운데 구속함을 받고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 출애굽 할 때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했으나 구원의 은혜를 쉽게 잊고 수시로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원망과 불평을 일삼던 그들은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결국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장정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인도를 온전히 따랐던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역사는 믿음의 광야 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위한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100퍼센트 신뢰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거울삼아서, 순종과 감사로써 믿음의 광야 길을 걸어 영원한 하늘 가나안에 이르시는 시온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데르센 동화 가운데 완두콩 다섯 형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른 콩 밭, 어느 꼬투리 안에 완두콩 다섯 형제가 있었습니다. 완두콩들은 낮이면 햇빛을 받고, 밤이면 달빛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콩이 다 익어 껍질이 벌어질 날만 기다리던 다섯은 세상에 나가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서로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다가왔을 때 꼬투리가 딱 하고 벌어졌습니다. 다섯 개의 콩은 소년의 손에 잡혔습니다. 소년은 자기가 가진 새총에 완두콩을 넣고 하나하나 쏘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첫째가 날아가며 말했습니다. “야, 나는 이제 자유다. 넓은 들판으로 날아가 내 꿈을 펼칠 거야.” 둘째가 소년의 손에 잡혔습니다. 둘째도 “나는 저 따뜻한 해님의 나라로 갈 거야” 하며 힘있게 날아갔습니다. “나는 시원한 그늘에서 마음껏 낮잠을 즐길 거야.” 셋째, 넷째도 각자가 소원했던 곳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완두콩 차례가 되었습니다. 막내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어느 곳에 가든지 상관없으니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게 하소서.”
막내가 날아가 떨어진 곳은 부드러운 흙과 이끼가 살포시 깔린, 어느 가난한 집의 창틀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어린 소녀와 엄마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고 엄마는 딸을 병구완하기 위해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녀가 창가를 보니 작은 새싹 하나가 나 있었습니다. 엄마가 일터에 나가서 낮에는 종일 혼자서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던 소녀는 자기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파란 싹이 돋아난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이후로 날마다 커가는 완두콩 싹을 바라보는 것이 소녀와 엄마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완두콩을 친구 삼아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완두콩 넝쿨을 바라보면서, 소녀는 ‘나도 저 완두콩처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겠다’는 삶의 희망과 의욕을 가지게 되었고 병도 차츰 완쾌되어 갔습니다.
네 개의 완두콩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려 했지만 막내 완두콩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막내는 가난하고 어려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소녀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때 우리의 삶이 더욱 가치 있고 보람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나아가기를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으로 보내주셔서 우리의 모든 생활 모습과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용기와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막내 완두콩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내 의지나 내 욕심을 따라서 미래를 설계해가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 아프리카라면 아프리카로, 유럽이라면 유럽으로, 국내라면 국내에서,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믿음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올바르게 심어주는 시온 가족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이르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장 2~4절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곳에서, 자기 뜻과 의지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살아온 결과, 사람 가운데서 구속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넓은 들판으로 가겠다’, ‘해님의 나라로 가겠다’,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겠다’고 한 완두콩 형제들처럼 우리도 각자 원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가졌노라 하면서도 내 생각과 방식을 고집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다 보면 인생의 시간만 허비하고 오히려 하나님 뜻을 역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막내 완두콩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해주시길 힘써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 유익된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고 계십니다. 끝까지 그 인도를 따라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시온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를 수 있는 성도들이 되라는 의미에서 순종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 3장 14~18절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 4장 8~11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보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가려는 생각, 이것이 순종치 않는 본에 빠지기 쉬운 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뜻을 기준 삼아 주위의 형편을 따져보게 되니까 늘 불만이 가득하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자기 고집대로 어떤 일을 하려고 들 때 마음에는 강퍅함이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 4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순종을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자들은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지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들만이 안식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역사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고집스럽게 내 육신의 삶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아버지 어머니의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한다면 강퍅한 마음은 절로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려 한다면 불순종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가기를 구했던 다섯째 완두콩을 가장 보람된 곳에 보내주셔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되게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처럼, ‘저는 어느 곳이든 좋습니다. 척박한 나라도 좋고 먼 나라도 좋고 대한민국도 좋으니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게 해주시고, 또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봅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내가 와 있다고 생각한다면 불만을 품을 일도 없습니다. 주위의 여건이 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주신 것은 그것을 하나씩 개선해나가라는 의미라 믿고 하나님의 일에 매진할 때 열 달란트뿐 아니라 백 달란트, 천 달란트, 더 나아가 만 달란트라도 남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삶으로 타인을 윤택하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완두콩 다섯 형제의 얘기를 읽다 보면 자신의 삶으로 타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복음 열매는 우리 욕심껏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때 그 결과물로서 허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 세상에 나아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장 18~20절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장 15절
세계 각처로 다닌다고만 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기를 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아직도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 전부가 되겠습니다. 그 대상은 국내에도 많이 있고 해외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요 원하시는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사 14장 24절
하나님의 생각은 반드시 되는 일이요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자기 지식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고 예측하려니 뭔가 안될 것 같고 이루지 못할까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은 반드시 될 일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누구를 통해서든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생각과 내 주장, 이런 것이 완고한 마음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가 그 일을 즐겨 순종하고 진행할 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을 갖고 따라오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나 자신의 신앙이 과연 올바르게 자라가고 있는지 확인해봅시다. 예전에는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는데 어느덧 ‘나도 알 만큼 안다’는 생각이 도리어 우리의 신앙을 좀먹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주시길 바라는 믿음을 갖고서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은혜롭게 이루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믿음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그 뜻대로 살아가는 최고의 신앙이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겠습니다.
“…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장 1~8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왔던 시간은 이미 지난 시간으로 족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생각과 행실을 하나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맞춰가시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이 세상의 것도 오래되면 부패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래된 것 중에도 부패된 것이 있고 발효된 것이 있습니다. 부패와 발효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하나는 버려야 할 것이고, 하나는 숙성될수록 가치가 더 높아집니다.
믿음의 연륜이 쌓일수록 자신의 믿음이 부패되어가는지 발효되고 있는지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새로 시작하는 시온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진행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원하는 곳만 고집하다 보면 완고한 정신이 들어가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따르지 못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막내 완두콩처럼 오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보내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하나님께서 빨리 구원의 밧줄을 던지라고 말씀해주시는 이들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영혼들을 버려두지 맙시다. 우리 주위에는 한 번 스쳐 지나가버리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발걸음을 인도해주실 것이니,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을 무심히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저들을 원하셔서 이 시간 나를 이곳에 보내셨음을 생각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더욱더 마음을 기울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