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배-다산 정약용 이야기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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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찌하여 스스로 포기하려 드는 것이냐.”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 중에서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 그는 22세에 급제하여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으나 그를 아끼던 정조가 죽은 뒤 무려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관료에게 긴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형극의 세월이지만 그는 오히려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유배 생활 중 책과 씨름한 그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한곳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던지 엉덩이가 곪기도 하고,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려 ‘과골삼천(踝骨三穿)’이라는 고사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통증 때문에 벽에 선반을 만들어 서서 글을 썼더니 오른쪽 팔꿈치에 굳은살이 박여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목민심서, 다산문답, 경세유표 등 그가 남긴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이 대부분 유배 중에 저술한 것이며, 그렇게 유배지에서 쏟은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한 자세는 가히 최고의 실학자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자칫 원망과 탄식으로 마감할 수 있었던 시간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의 발자취는 후대에까지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