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도 막지 못한 절기 축복

카메룬 두알라, 장게

조회 13,412

전기 기술자인 저는 벌목용 대형 기계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근무합니다. 가을절기를 앞두고 기계에 문제가 생겨 출장 갈 일이 생겼습니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는데 이틀 뒤는 기다리던 나팔절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출장을 미루고 싶었지만 수리가 시급한 데다 제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길을 나섰습니다.

출장 지역은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의 인근 도시인 오발라였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저녁에 집으로 올 수 있겠다고 짐작했지만 가는 도중에야 출장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갈 곳은 당일에 돌아오기 힘든, 오발라에서 더 들어가는 밀림 지역인 니가였습니다.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도 오발라에 도착하니 이미 정오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밀림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오토바이(카메룬의 대중교통)를 타고 오후 1시경 니가에 도착했지만 작업 장소까지 지대가 워낙 험해서 오토바이 기사조차 길을 헤맸습니다. 밀림을 뱅뱅 돌며 두 시간을 허비하고 나니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마음이 점점 급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시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일을 시작했는데도 작업을 마쳤을 때는 7시가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제 눈앞도 캄캄했습니다. 초행길이고 밀림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도 없으니 완전히 갇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애타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그 인적 드문 곳에 기적처럼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났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요.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밀림을 빠져나가는 도중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길은 맞은편에 사람이라도 오면 겨우 비켜서 지나가야 할 정도로 폭이 좁고 호젓한 데다 비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서 속도를 좀처럼 낼 수 없었습니다. 답답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밀림을 빠져나가는가 싶던 그때였습니다. 기사가 갑자기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앞을 보니 세상에, 불과 3~4미터 앞에 TV에서나 봤던, 밀림의 왕 사자가 엎드려 있는 겁니다.

사자는 떡하니 숲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비가 내린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나마 오토바이가 천천히 달렸기에 사자 앞에서 멈출 수 있었지 평소 속도였다면 그대로 사자 입으로 돌진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요. 사자와 대치할 때의 공포는, 아! 정말 경험해보지 않고는 짐작하기 힘들 것입니다. 뒤로 도망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섭기도 무섭지만 이러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오늘 중에 밀림을 벗어나야 내일 절기를 지킬 수 있는데 저로서는 사자를 처리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 급하니까 제발 비켜달라” 하고 사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자를 치고 그 입에서 양을 건져내던 다윗과 같은 용기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정말 무섭고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40분을 사자와 대치했습니다. 마음은 타들어가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사자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설마 나한테 오려고 하나?’

머리털이 쭈뼛 섰습니다. 살면서 이때처럼 긴장하기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사자가 천천히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요. 얼른 사자가 막고 있던 자리를 지나면서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니 사자가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도로 엎드렸습니다. 마치 제가 절기 지키러 갈 수 있도록 잠깐 자리를 비켜줬다는 듯.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사자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나 봅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자체가 꿈만 같습니다.

이후의 일정은 이렇습니다. 니가에서 오발라로, 오발라에서 수도인 야운데로 왔을 때는 새벽 1시였습니다. 야운데에서 두알라까지 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 집에 도착하니 새벽 6시 25분이었습니다. 집을 떠난 지 25시간 만이었습니다.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곧장 교회로 향했습니다. 나팔절 오전 예배를 위해 교회 문을 들어서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시온에 두 발을 디딘 자체가 기적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습니다.

평생에 한 번 경험해볼까 말까 한 일을 통해 제 자신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더불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드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다니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시인해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 살아남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성경 인물들이 얼마나 믿음이 큰지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2020년 가을절기를 맞이하며 저 역시 이들과 같은 굳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간구드립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의 형제자매를 구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용맹하게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축복의 길은, 그 무엇도 막지 못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