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빛

한국 양산 주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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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은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다. 열네 가구가 전부인 마을에는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걸어서 사십 분, 중학교는 자전거를 타도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고등학교는 도저히 집에서 다닐 수 없어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서 쌀과 반찬, 용돈을 받아와 일주일을 보냈다.

집에 가는 토요일은 서둘러야 했다. 그나마 동네 가까이 가는 몇 안 되는 버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막차를 타야 하는데 엄청난 담력이 필요했다. 버스에서 내려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삼십여 분 동안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경을 쓴다고 써도 어쩔 수 없이 막차에 올라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하지만 막상 산길에 접어들면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무덤들, 새까만 개울가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이름 모를 밤새들을 비롯해 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는 다 큰 여고생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어디선가 귀신이든 도깨비든 늑대든 당장이라도 나타나 덮칠 것 같은 분위기에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고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이마와 등에 땀이 뱄다.

온몸이 경직되어 다리가 뻣뻣해진 중에도 내 발자국 소리마저 무서워 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산길을 절반쯤 갔을까, 저 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어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엄마였다.

엄마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면서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외치며 빛이 비추는 곳으로 냅다 뛰어갔다. 조금 전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이 <엄마 찾아 삼만 리>의 해피엔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엄마, 나 무서워서 혼났어. 귀신 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아이고, 이런. 우리 딸, 큰일 날 뻔했네.”

엄마는 내가 진짜 무서운 것들을 만나 싸우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안타까워했고, 내 몸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하고는 어두운 산길을 혼자 걸어온 것을 연신 기특해 하셨다.

엄마의 등장 이후로 덜덜 떨렸던 산행은 신나는 밤길 산책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집을 떠나 지내는 동안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당시 나와 똑같이 산길을 걸어 마중 나온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무섭지 않게 해주시는 또 한 분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 자녀들을 안전하게 하늘 본향 집으로 인도하시는 하늘 어머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세상에서 두려워 떨던 내 영혼이 하늘 어머니를 만나 두려움을 떨쳐내고 평안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도 어머니와 동행하며 하늘 본향 돌아가는 길을 즐거이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