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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전날, 몸이 좋지 않아 입원했다. 연휴가 아니었다면 어린 딸 걱정에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남편이 쉬어서 걱정을 접었다. 남편도 집안일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하늘이 준 휴가라 생각했다.
내 기대는 입원한 지 하루도 안 돼 무참히 깨졌다. 밤에는 혈압과 맥박, 열을 재고 링거 주사를 교체하느라 간호사들이 수시로 병실에 들락거려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낮에는 같은 병실 아주머니가 하루 종일 TV를 틀어놓는 바람에 조용한 휴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퇴원하고 새로 입원한 아주머니는 하루 종일 큰소리로 통화를 해댔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의도치 않게 듣게 된 통화 내용이 심각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휴가의 꿈은 깨져버렸고 무엇보다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자기 전에 양치를 잘해야 할 텐데. 너무 늦게 자면 안 되는데. 목욕시킬 때 눈에 거품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에 뒤척이는데, 마침 링거 주사를 빼주러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다시 주사를 맞기까지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외출 허락을 받았다. 얼른 샤워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갔다.
딸아이를 본다는 기쁨에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남편이 압력밥솥에 추를 달지 않은 채 밥을 하고 있었다. 김이 천장으로 솟구쳐 집 안은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어? 엄마 어떻게 왔어?” 하고 나를 쳐다보는 딸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압력밥솥에 추를 끼우고 딸의 머리를 묶어주었다.
“엄마가 하경이 너무 보고 싶어서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해서 잠깐 나왔어. 하경이 목욕만 시키고 엄마는 다시 병원에 가야 해.”
아이를 몇 분 동안 쳐다보고 껴안고를 반복하다 서둘러 집안을 치웠다. 분명 입원하기 전에 청소를 싹 해놓고 갔건만 언제 이렇게 엉망을 만들어놨는지⋯ 다행히 남편이 지은 밥은 고슬고슬 맛있게 되었다. 딸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목욕까지 시킨 후 아쉬운 작별인사를 수십 번이나 하고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나는 하루만 딸을 보지 않아도 이렇게 보고 싶어서 한걸음에 달려가는데 하늘 부모님께서는 그 오랜 시간을 어찌 참고 기다리셨을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엉망이 된 집은, 하늘 어머니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금방 더러워지고 엉망이 될 것이 뻔한 내 영혼을 떠오르게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쉼 없이 기도하시고 일하시는 하늘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에 절로 감사가 나왔다. 이제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가 아닌, 든든함과 믿음을 드리는 자녀가 되리라 다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