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때 중국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독립군 양성 학교입니다.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약 20년간 삼천오백여 명의 독립군을 배출한, 항일무장투쟁의 요람이지요.
1910년 12월, 혹한의 날씨 속에 우당 이회영(1867~1932)을 비롯한 여섯 형제는 식솔을 이끌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우당 집안으로 말하자면 대대로 정승·판서·참판을 지낸 명문가이자, 한반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대부호였습니다. 당시 권세 있는 집안의 상당수가 일제로부터 작위와 돈을 받고 친일파가 됐지만, 여섯 형제는 일제에 생명을 구걸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전 재산을 팔았습니다. 현재 화폐 가치로 약 600억 원의 돈으로 중국 서간도 지방에 가서 한 일이 바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독립운동을 택한 여섯 형제는 낯선 땅에서 텃세와 기근을 견디며 목숨까지 위태로운 생활을 해야 했지만,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조국의 독립에 힘썼습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인 것이다.” 이회영(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고문 끝에 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