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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누가 하는 것인가

한국 안양 정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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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고 귀가하는 길, 집으로 들어서는 도로변에 경찰차가 서 있고, 취객이 택시 기사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지켜보니 손님이 택시 안에서 토했는데 택시 기사가 손해 배상금을 10만 원이 넘게 요구해 손님이 억울하다며 경찰을 부른 것이었다. 나 역시 택시 기사가 금액을 너무 과하게 부른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의 설명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택시 기사는 늦은 밤 취객을 태울 경우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 출발 전 손님에게 “만일 차 안에서 토하면 시트 세척과 내부 청소를 해야 하고 그동안 영업도 못 하니 상태에 따라 손해 배상을 10만 원 이상 청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으니 가다가 속이 불편하면 꼭 차를 세워달라고 이야기해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당부가 무색하게 염려하던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확인 결과 택시 기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울시에는 위와 같은 사건으로 최고 20만 원까지 배상하도록 한 조례가 있었고, 실제 20만 원 넘는 금액을 물어주게 한 판례도 있었다. 어쨌든 택시 기사는 사전 설명을 충분히 했고 실제 그런 조례와 판례가 있기에 손님이 보상해 주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문제는 금액인데, 손님은 내 월급이 얼마고 하루 일당이 얼마인데 등 여러 말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나는 이만큼밖에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손님이 막무가내로 나오자 나중에는 택시 기사가 지쳐서 손님 뜻대로 합의하고 여운 있는 한마디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고의든 아니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 일에 대한 보상이나 합의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정해야지 피해를 입힌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상이나 합의보다 사과가 먼저 아닙니까? 그래야 그나마 피해 입은 사람이 피해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거예요.”

택시 기사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한 것이 올라와 몇 분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안 보려고 기를 쓰던 손님의 모습은 영적으로 딱 내 모습이었다. 우리는 하늘에서 큰 죄를 지어 하나님께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끼치고 이 땅에 쫓겨 내려온 죄인들이다. 교만하지 말라, 낮아지고 겸손하라, 형제자매 간에 사랑하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깨닫고 뉘우치게 하시기 위해 제정하신 은혜의 계명이다. 그런데 그 말씀들을 지켜 행하면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기보다 한두 가지 실천하고는 ‘이 정도면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야’ 하면서 떳떳해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하나님께 지은 죄의 대가는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치를 수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야 그나마 죄를 용서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먼저는 나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 죄로 인해 괴로우셨을 하나님은 생각지 않고, 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미뤄둔 성경의 가르침들을 다시금 돌아보아야겠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온전히 실천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