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전하는 한 가지 방법

한국 남양주 최희원

조회 7,590

단기선교지가 인도 뭄바이로 정해졌을 때, 제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이었습니다. 힌디어를 익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습니다. 꼭 해야 할까 하는 마음에 몇몇 분에게 그냥 영어를 쓰면 어떨지 물어보았는데 “힌디어를 모르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하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책상머리에 앉아 마주하게 된 힌디어는 꼬불꼬불, 그림인지 글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힌디어는 남성 명사, 여성 명사, 단·복수 구별 등 배우기 까다로운 문법적 요소가 상당합니다. 게다가 자음이 14개인 한국어와 달리 힌디어 자음은 한국어에 없는 소리까지 더해져 35개나 됩니다. 가령 한국말 ‘ㄷ(디귿)’과 유사한 발음의 힌디어 자음은 4개인데, 소리가 아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말만 듣고는 정확한 힌디어 자음을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역시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간단한 말만 익힌 채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마음에는 부담의 무게가 훨씬 크게 더해졌습니다.

뭄바이 공항에 도착해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새벽 3시가 가까웠습니다. 파김치가 되어 공항을 나서는데 단기선교 팀원 중 한 명이 밖을 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지금 식구들 엄청 많아요!”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이 새벽에 현지 식구들이 함께 나와 있다니요. 수속이 늦어져서 식구들은 예상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더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위 러브 유!”

“웰컴 투 인디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분명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첫 만남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리 없으니까요. 정성껏 만든 플래카드와 응원의 문구가 담긴 엽서를 받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아네 깨 리에 던여와드(와주셔서 감사해요).”

“네? 던여와드⋯요?”

선교단 한 명 한 명과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건네는 현지 식구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알아들은 단어를 반복하며 웃어 보였지만 과연 맞는 말인지도 알 수가 없었고요. 괜히 영어로 몇 마디 말을 붙였다가 갑작스러운 정적과 흔들리는 식구의 눈동자를 보며 이거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오기 전에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걸. 비행기에서 자지 말고 힌디어 교재 좀 펴볼걸⋯.’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혹시 현지에서 지내다 보면 힌디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전도에 나선 식구들 중에 영어를 쓰는 분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힌디어 실력은 영어로 메우며 성경 말씀을 전할 수 있었고요.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별 탈 없겠구나 싶어 내심 안심했습니다. 제 생각은 안식일에 산산이 깨졌습니다. 예배가 힌디어로 진행돼 기도나 설교 내용을 알아듣기는커녕 성경을 아예 펼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사이사이에 현지 식구들이 힌디어로 말을 걸어와도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삐따 마따 던여와드(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와 “뻐르메슈워르 압꼬 아쉬스 떼(복 많이 받으세요)”뿐이었습니다.

왜 힌디어를 배워야 한다고 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언어는 생각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어머니 축복 말씀, 선교를 준비하면서 얻은 깨달음, 식구들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지도 못한 채 있다니, 식구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걸까?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이곳까지 온 건데.’

이런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이제라도 힌디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보자고 다짐하며 가방에 넣어둔 힌디어 교재를 펼쳤습니다. 보다가 모르는 것은 인도에 장기 체류 중인 한국 식구에게 물어가며 공부했습니다. 예상 외로 할 수 있는 말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이즈 함 앗차 펄 쁠바 꺼랭(우리 오늘 좋은 열매 맺어요)!””

“하마레 사트 스워르그 까 라져 매 자엥(우리 같이 천국 가요)!”

식구들은 떠듬거리며 건네는 한마디를 정말 좋아해주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물론이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내고 ‘정말 잘한다’며 엄지를 세워 보였습니다. 마침내 저는 너무나 하고 싶던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따 뻐르메슈워르 압 쎄 버훗 쁘램 꺼르때 해(하늘 어머니께서는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십니다).”

말하는 저도 듣는 식구들도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서툰 언어 실력이었지만 마음을 전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언어 때문에 진땀을 빼고 보니 단기선교 일정에 함께한 인도 식구들의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도는 공용어만 무려 15개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뭄바이 식구들은 기본적으로 힌디어를 쓰면서 영어나 구자라트어, 타밀어, 마라티어, 벵골어, 텔루구어 등을 구사합니다. 전도를 나가면 듣는 상대에 따라 언어를 바꿔가며 공부를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인도에 오래 살다 보면 저절로 다른 언어도 익혀지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힌디어를 공부해보고서야 저절로 되는 일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식구들 모두가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해보다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더불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해지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식구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꽃길을 걸으며 즐겁고 빠르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단기선교단이 부족한 언어 실력에도 값진 결실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하나님 도우심과 식구들의 수고 덕분일 겁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녀의 구원을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복음의 비밀을 전하셨습니다. 하늘 어머니께서는 한국을 방문한 해외성도들 한 명 한 명에게 그 나라 말로 축복을 빌어주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십니다. 한 영혼 살리겠다는 애발스러움으로 누구에게든지 구원의 소식을 전하려 소수 민족의 언어까지 배운 인도 식구들은 하나님의 본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동방 땅끝 대한민국에 오신 하나님의 음성을 단번에 듣고, 그 말씀에 담긴 깊은 의미까지 느낄 수 있는 축복을 제게 허락해주셨습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전 세계에 흩어진 하늘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합니다. 물론 언어 실력만 키워서는 안 되겠지요. 성경을 상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세계 민족들이 우리가 전하는 말을 듣고 진리 안으로 나오는 것은 유창한 언어가 아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때문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