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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에서 찾은 자유와 평안

한국 용인 김혜빈

조회 1,241

8월의 한 안식일, 북유럽 라트비아에서 온 소식이 휴대폰으로 전해졌습니다. 내용을 보자마자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 지난여름 라트비아 리가에 단기선교를 갔을 때 만난 분이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자매님이 침례를 받기로 결심한 이유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 몸과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유월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침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자매님의 상황이 안타까웠던 만큼 침례 소식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자매님과 함께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라트비아에서 선교단원들과 며칠째 부지런히 말씀의 씨앗을 뿌리던 중, 성경을 보여줘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목소리만 높이다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자리를 떠버린 그를 안타까워하던 저희에게 한 젊은 여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단원 중 한 분이 말을 걸었을 때 “면접에 가는 중이라 시간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던 분이 약속대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게 자매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자신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며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자매님 덕에 가라앉았던 저희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더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 자매님을 예배소로 초대했습니다.

다음 날, 자매님은 같은 국적의 친구와 함께 예배소를 찾아 어머니 하나님과 유월절, 침례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찬찬히 살폈습니다. 자매님은 말씀이 이해된다면서도 침례받기를 주저하며 조심스레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중, 자매님의 기숙사 바로 옆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미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 몸은 무사했지만 비행기 소리나 큰 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겨, 살고 싶은 마음에 고국을 뒤로한 채 라트비아로 건너왔다고요.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가족도 있고, 일부는 다른 나라로 피신하거나 군대에 불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한 교단에서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기에 서로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새 언약 진리를 수긍하면서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침례를 받으면 그 끈이 끊어질 것 같아 망설여진다는 자매님에게서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염려가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자매님도, 자매님의 가족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구원받기를 바란다고 위로했습니다. 자매님은 고마워하면서 마음의 준비가 되면 꼭 침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 안식일, 자매님이 다시 예배소를 방문했습니다. 헤어지기 전 어떤 말씀을 전해줄지 고민하다, 사도 바울이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장 31절)라는 구절을 보여주었습니다. 침례를 받으면 가족과의 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구원의 표를 받음으로써 가족에게도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자매님은 결심이 서면 바로 달려와 침례를 받겠다고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자매님은 자신이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온 유일한 물건이라며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문장(紋章) 모양의 액세서리를 선교단 모두에게 선물했습니다. 소중한 물건을 내어줘도 괜찮냐는 물음에 감동적인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걸 나눠주면 제게는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물건이 없어지지만 여러분이 그만큼 제게 소중하니 꼭 주고 싶어요.”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아직 알려주고 싶은 말씀이 많은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슬픔을 애써 누르고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자매님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를, 한국에 돌아가서도 간절히 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귀국한 지 19일 뒤, 드디어 자매님이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다는 기별이 날아들었습니다. 자매님에게 침례 받은 소감을 물은 인터뷰 영상도 함께 도착했습니다. 자매님은 자유를 느꼈고 영혼이 깨끗하게 씻김을 받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항상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평안해졌다고요. 전쟁이라는 암울한 상황에 지치고 힘들었을 자매님의 심령을 위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진리를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제 저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저의 자매들이고 저도 여러분의 자매예요. 사랑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휴대폰 화면 너머로 자매님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자매님이 구원의 표를 받기까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정말 애가 탔는데 하늘 어머니께서는 창세전부터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요. 저희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노심초사하시며 이 영혼을 보살피신 하늘 어머니께서 계셨기에 자매님이 구원으로 나아오게 된 것이라 믿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자매님과 재회할 날을 상상하니 두근거립니다. 자매님이 믿음을 쌓아 복음의 큰 일꾼으로 성장하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자매님을 통해 가족들도 진리를 영접하여 그 연이 하늘에서도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