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계획하신 하나님

한국 제주 연보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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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영접하고 바로 다음 해에 엄마와 여동생도 하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만큼은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생전 기도원을 운영하셨던 할머니와 개척교회 목사였던 큰아빠의 영향이 컸던지 아빠는 불같이 화를 내셨고 진리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빠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나마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더 이상 말리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아빠가 달라졌습니다. 감염 대응 초반,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교회가 정부 방침에 따라 침착하게 예배와 모임을 운영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하루는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교회 이야기가 나와 말씀을 전했더니 2시간이나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아직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은 이해가 안 가지만 안식일유월절도 맞는 말 같다는 아빠의 반응에 하나님께서 마음 문을 열어주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얼마 뒤 부모님이 제주도에 가게를 열었습니다. 성수기라 가게 일을 도울 사람이 필요해 ‘직장이야 다시 구하면 되고, 내가 아니면 누가 돕겠어’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애초에 돕기로 계획했던 기간은 3개월이었지만, 가게 주방을 맡아주던 작은아빠가 몸이 안 좋아지면서 기간이 늘어났습니다.

얼떨결에 눌러앉은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정들었던 교회 식구들 얼굴도 아른거리고 가게 일에 매여 옴짝달싹 못할 때면 정말 속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주교회 식구들이 자주 방문해 저를 챙겨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위로는 그사이 아빠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주도로 내려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아빠가 갑자기 제게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간 속에 묵혀둔 진심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빠, 나는 진짜 다 괜찮은데 한 가지 불안한 게 있어. 아빠랑 같이 천국에 못 간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나. 아빠가 하나님의 축복을 꼭 받았으면 좋겠어.”

그러자 아빠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침례 받자.”

수천 번 상상하고 수만 번 기도해 왔던 장면이었습니다. 침례 예식이 끝난 후 당회장님께 “침례 주셔서 감사합니다. 딸 때문에 왔지만 한번 열심히 믿어볼게요” 하는 아빠를 보며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귀갓길에 아빠는 “양복 한 벌 택배로 보내라고 해야겠다. 예배 보러 갈 때 입어야지”라고도 말했습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습니다. 참 간절했던 10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리라 생각하며 아빠가 새 생명의 축복 받는 순간을 그토록 원하고 기다렸는데 딱 10년 만에 허락되었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상황들도 돌이켜 보니 모두 아빠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하늘 가족을 어서 찾아 영원히 함께하는 그날도 머잖아 다가오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