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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에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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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부르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성경에서 말은 씨로 비유되어 있는데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말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닌 듯싶습니다(벧전 1장 23~25절, 갈 6장 7~9절).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은 하늘 자녀들입니다. 시온의 가족들은 말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항상 축복의 말, 감사의 말, 또 격려와 응원의 말과 배려의 말을 주고받았으면 합니다. 시온은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창화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은혜의 장소입니다(사 51장 3절). 시온의 모든 가족들이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국 갈 사람들의 언행과 새노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노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새노래 가사를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말, 누구를 질시하거나 투기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영광 돌리는 말, 감사하는 말, 형제자매 간 아름다운 연합과 사랑을 이루고 자신의 지난 잘못을 회개하는 아름다운 말들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백성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데 그들은 새노래를 부르는 자들입니다(계 14장 1~5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특기할 것이 그들은 늘 새노래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노래 가사처럼 아름다운 말들만 우리가 사용하게 된다면 그것이 천국을 부르는 말이요 축복을 부르는 말이요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의 결과를 부르는 말이 틀림없습니다.

새노래에는 천국 소망이 담겨 있고 사랑과 화합, 연합을 간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요 그들이 갈 곳이 영원한 천국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장 3절

옛사람을 벗고 우리 영혼이 하늘 사람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을 성경은 거듭난다고 표현합니다. 과거의 나는 화도 잘 내고 남에게 부정적인 언행을 베풀기도 하는 사람이었다면, 두 번째 태어나는 나는 하나님 말씀으로 정화되고 고침을 받아, 원망하는 말도, 무례한 말도, 남을 시기하는 말도 다 없이하고 오직 격려하고 배려하고 응원하고 또 용기 주고 힘을 내게 해서 함께 영원한 천국까지 당도하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천국에 갈 수 있는 삶이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리라 확신이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장 20~22절

‘라가’는 히브리인들의 욕설입니다. 시온에서는 그 누구에게라도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부분도 등한히 여길 부분이 없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셨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일러주셨습니다. 말씀을 허투루 듣지 말고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천국 사람다운 모습으로 변화해 봅시다.

하늘 가족들은 말도 행실도 마음가짐도 세인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축복에 이르는 말,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말, 구원에 이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말들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배운 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늘 실천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는 말들이 시온에서 항상 기본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표현입니다.

선하고 은혜로운 말, 감사하는 말을 하라

살다 보면 때로는 화나고 속상한 일도 있고,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일들이 있겠으나,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이 항상 사용해야 하는 말이 무엇인지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확인해 봅시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장 7~18절

하늘 어머니께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전할 때는 물론이고 누구를 대하더라도 항상 거듭난 사람으로서 선한 마음으로 선한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좇으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면, 정말 우리에게 천국 같은 환경이 반드시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쁠 때는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때도 절대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는데 나는 날마다 분노하고, 다투고, 가시 돋친 말을 하고, 남이 듣기 좋든 싫든 내 기분만 우선시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항상 어기는 어리석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거 육신에 치우쳐서 살아갈 때 가졌던, 원망 불평 잘하고 남 흉보기를 잘하고, 시기 질투하고, 교만하고, 자기 자랑했던 성정들은 다 버려야 합니다. 갑자기 변화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열 번 하던 것을 다섯 번으로 줄이고, 다섯 번을 두 번으로, 두 번 하던 것을 하나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4장 22절~5장 4절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하셨으니 다 버립시다. 절대 원망하는 말, 불평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되겠고, 주위 사람들이 좀 불편한 얘기를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그들을 잘 대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거듭될수록 하늘에는 복이 쌓여갑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나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화를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 세세토록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존중하고 지켜가야 할 율례요 규례요 법도입니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족예식을 행하실 때 베드로가 “주여, 제 발은 절대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하자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행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언제나 축복을 부르는 말을 하고, 또 그런 말에 익숙하도록 노력합시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옛사람은 다 버리고 새사람으로 변화 입는 시온의 형제자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

성경 속 축복을 부르는 말들과 저주를 부르는 말들이 어떤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보고, 시온의 형제자매들과 축복을 부르는 말을 늘 주고받도록 합시다.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도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장 33~46절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행실이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며, 형제자매를 보살피고 돌보고 응원하고 격려하고 위로한 일들이 전부 하나님께 한 일과 동일하다고 판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새 언약에는 유월절, 안식일 같은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 언약의 도는 품성의 변화로 귀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녀들을 사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살을 내놓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사망 가운데서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죄인을 위해서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나도 형제자매를 위해 이러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정신을 되새겨야 합니다. 말씀에 착념해서 경건에 이르는 말을 연습하면, 우리 행실도 말도 마음가짐도 하나님을 닮아가고 정말 천사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주위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부르고 복음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천국 가는 길, 더욱 넘쳐나는 감사와 찬양

민수기에 보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열두 정탐꾼의 보고 속에는 긍정의 말과 부정의 말이 있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대해 “우리는 결코 정복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니 그 거민이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다 할지라도 저들은 다 우리의 밥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판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분명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나, 열 명의 정탐꾼들과 그에 동조해서 원망하고 통곡한 사람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하셨습니다(민 13~14장). 저들은 축복을 부르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믿음의 말은 언제나 축복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우리 영혼의 목자요 구원자로 생각하며 하는 말들은 항상 거기에 축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누차 강조하셨습니다(고전 10장 10절).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여러 가지 형편을 제공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 삶 속에 장애물도 있습니다. 나는 오른쪽으로 가면 좋겠는데 때로는 왼쪽 방향으로 가야 할 때도 있고, 이익이 많이 남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는데 때로는 손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 길을 이끌어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신 8장 16절).

믿음의 조상 중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우여곡절 많은 삶을 보냈습니다. 형제들의 손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리기도 하고, 보디발 장관 집에서 가정사를 돌보는 집사 일을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감옥에서 해몽을 잘한 덕분에 바로 왕에게 발탁되어 애굽 전체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함께하셨던 것이 아니라 그가 원치 않는 일을 당할 때도 함께하시고, 그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한 나라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크신 섭리 속에 모든 일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자기를 판 형들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며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창 45장 4~8절).

우리의 삶도 그런 과정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벧전 2장 9절)이라는 영광의 위치에 두시기까지 때로는 우리에게 힘든 일, 손해 보는 일도 만나게 하시고 평안한 일, 평안치 못한 일 등 수많은 일을 겪게 하시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 항상 같이 계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간다 할지라도 거기서도 함께하셔서 내게 빛이 되어주시고 지팡이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 23편 4절). 그러니 ‘나만 복을 못 받은 것이 아닌가’, ‘나만 왜 이럴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가 가는 이 길이 항상 그런 큰 그림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끌어가시는 천국 가는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어떤 삶이 내게 주어지더라도 그것은 천국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천국 가는 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원망, 불평이 필요하겠습니까? 기뻐해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 찬양을 올리며, 날마다 축복을 부르는 말이 넘쳐나는 은혜로운 시온이 되기를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