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자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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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네댓쯤 달린 참나무 가지가 허공에서 ‘툭’ 하고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호젓한 오솔길에 도토리를 매단 나뭇가지들이 수북하다. 칼로 벤 듯 매끈하게 잘린 가지 끝을 보니 분명 누군가 일부러 해놓은 짓이 틀림없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햇볕은 따갑고 녹음은 더욱 짙푸른 8월, 채 영글지도 못한 새파란 풋도토리를 누가 이렇게 헤쳐 놓은 것일까?

도토리거위벌레

범인은 바로 ‘도토리거위벌레’다. 떨어진 도토리들을 잘 살펴보면 선명한 검은 반점이 하나씩 찍혀있다. 도토리거위벌레가 긴 주둥이로 뚫어 알을 낳은 구멍이다. 덜 익은 열매라 야생 동물들이 꺼리는 데다 애벌레가 먹기에는 부드러워 제 알을 낳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어미 도토리거위벌레는 설익은 도토리의 단단한 껍질을 뚫기 위해 주둥이를 도토리에 박고 뱅글뱅글 돈다. 그러고는 도토리 안에 한 개의 알을 낳고 열매에서 한 뼘 남짓 떨어진 곳의 가지를 자르기 시작한다. 겨우 1센티미터쯤 되는 어미는 그렇게 산란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식을 위해 일한다. 깨어날 애벌레가 땅속에서 동면할 수 있도록 먹이까지 구해 바닥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몇 개의 잎을 매단 나뭇가지가 사뿐히 땅에 안착하고 나면, 일주일쯤 지나 애벌레가 부화할 것이다. 어미 한 마리가 20~3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지구 온난화로 해마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야생 동물의 먹이를 축내는 이들을 해충이라 부르며 다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어미의 애처로운 모정만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곤충들의 자식 사랑은 이뿐만이 아니다. 어미 곤충들은 산란 시기가 되면 온갖 지혜를 동원해 가장 안전한 곳을 고르고 골라 알을 낳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지킨다.

왕바다리

‘벌’ 하면 다들 육각형의 방이 빼곡한 집에 군집한 벌 떼를 연상한다. 그러나 무리가 겨울을 나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가을이 깊어지면 모두 흩어져 여왕벌만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 혼자 집을 짓고 알을 낳아 대가족을 만든다. 토종 말벌인 왕바다리 가족의 한여름 풍경은 수많은 일벌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대가족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미의 수고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겨울을 지낸 왕바다리 여왕벌은 ‘여왕’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도 스스로 나무껍질을 깨물어 침과 섞어서 몇 칸짜리 작은 집을 만든다. 수고로운 집짓기가 끝나면 방마다 알을 하나씩 낳고 수시로 알들을 점검한다. 더울 때는 물을 한 모금 물어와 방마다 한 방울씩 덜어놓고, 비가 온 뒤에는 물기를 일일이 빨아들여 집 밖으로 뱉어낸다. 이것도 모자라 벌집이 너무 더워지지 않도록 날갯짓을 해서 공기를 순환시키기도 한다.

알이 부화하면 어미는 더 바빠진다. 어미는 꿀을 먹고 살지만, 애벌레들은 단백질을 공급해 주어야 하므로 동물성 먹이를 잡아 와야 한다. 먹성 좋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하나하나 씹어 일일이 먹이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 개미 떼의 습격으로 집 안이 초토화됐다. 여린 애벌레들이 저항하지만 소용없다. 실컷 포식한 개미들이 돌아가고, 그제야 집으로 돌아와 사태를 파악한 어미는 망연자실이다. 공격당한 애벌레들 상당수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미는 포기하지 않고 안전한 장소를 골라 다시 시작한다. 먼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무럭무럭 자라 성충이 되면 어미를 도와 집을 짓고 애벌레들을 돌본다. 대가족을 이룬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어미는 자신의 품을 떠나는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초연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나나니’라는 독특한 이름의 벌은 단독생활을 하며 사냥을 한다. 이 고독한 사냥꾼이 사냥을 하는 이유도 자식을 위해서다.

어미 나나니는 해가 뜨자마자 부지런히 땅굴을 판다. 반나절 만에 겨우 굴이 완성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입구를 돌로 막아 위장한 다음, 사냥을 떠난다. 애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 어미는 얼른 마취 침을 쏘아 마비시킨 후, 이리저리 구르고 부딪히며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먹이를 힘겹게 옮긴다. 오동통한 애벌레가 무거워 날지도 못하고, 쉬어가다가는 개미 떼가 달려들 것이 불 보듯 뻔하니 한숨 돌리지도 못한다. 어미가 이 같은 고생을 마다치 않는 이유는 애벌레 위에 알을 낳아, 곧 부화할 새끼들에게 살아 있는 신선한 먹이를 먹이기 위해서다.

한편, 무슨 꿍꿍이인지 기생파리 한 마리가 어미 나나니의 뒤를 스토커처럼 쫓으며 눈치를 살핀다. 어미 나나니가 애벌레를 굴에 넣으려고 정신없이 일하는 몇 초 사이, 기생파리는 자신의 알을 몰래 굴속에 넣고 사라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끼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어미 나나니의 소망도 잠시, 땅속에서는 기생파리의 애벌레가 먼저 깨어나 어미 나나니가 마련한 먹이는 물론, 나나니의 알까지 모조리 먹어 치울 것이다. 또 다른 새끼를 위해 굴을 파고 사냥에 나서는 어미 나나니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습하고 컴컴한 곳을 좋아하는 ‘집게벌레’는 집 안에서 심심치 않게 출몰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꽁무니에 집게를 가진 괴상한 외양과는 달리 모성애가 강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곤충 대부분이 부화한 이후에는 더는 새끼를 돌보지 않는 것에 반해 집게벌레는 알에서부터 새끼가 자라 독립할 때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어미 집게벌레는 50~100여 개의 알을 낳아 하나하나 깨끗이 닦아 차곡차곡 쌓은 뒤, 알이 깨어날 때까지 그 곁을 지킨다. 어미는 알이 부화하기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해 햇볕이 들면 그늘로, 비가 오면 물에 젖지 않는 곳으로 옮기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알을 노리는 다른 곤충이 나타나면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애벌레가 알에서 나오면 먹이를 잡아 먹이며 새끼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한다.

긴다리쇠똥구리
물장군

쇠똥 경단을 굴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긴다리쇠똥구리’는 이름에 걸맞게 삽처럼 생긴 머리와 유난히 긴 다리, 다지기 좋은 넓적한 앞발을 가졌다. 이런 긴다리쇠똥구리가 쉴 새 없이 거대한 쇠똥 경단을 빚는 이유도 그곳에 알을 낳기 위해서다. 때로는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 자기 몸보다 큰 똥을 둥그렇게 말기도 하는데, 힘에 부치는지 쇠똥에 붙은 채로 떼구루루 구르기 십상이다. 겨우 원하는 장소에 도착한 어미는 땅을 파서 쇠똥 경단에 알을 낳아 보물을 숨기듯 조심스레 묻고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꼭 끌어안은 채 기다린다.

습지에는 암컷보다 더 극진한 부성애를 보이는 수컷 곤충들이 있다. 손가락보다 더 큰 데다 개구리도 뚝딱 사냥하는 물장군은 물 밖에 나온 수초에 알을 낳는다. 암컷이 산란을 마치면 수컷 홀로 육아에 전념한다. 아비 물장군은 부화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는데, 혹여 알이 마를까 봐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알을 돌본다. 보름 정도면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는데, 그 뒤에도 스스로 사냥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알들을 등에 업고 다니는 곤충도 있다. 등에 알을 지고 다녀 ‘알지게’라고도 불리는 ‘물자라’는 특이하게도 암컷이 수컷의 등에 알을 낳는다. 수컷은 알들이 부화하기까지 10여 일간 등에 100개가량의 알을 붙이고 다니며, 알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수면 위아래를 들락날락한다. 자칫하면 천적의 눈에 띄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아비 물자라는 개의치 않고 알들을 돌본다.

곤충들만의 작은 세계 속에도 자식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들이 있다. 알에서 깨어날 새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미도 있고, 목숨을 담보로 자식을 돌보는 아비도 있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불태우는 곤충들의 모습이 한낱 미물이라 치부하기에는 자못 숭고하기까지 하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척 경이롭다. 곤충의 극진한 자식 사랑이 왠지 모르게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