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창조의 역사를 보면 무(無)의 세계였던 지구가 하나님의 손길로 하나하나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낮과 밤이 구분되고, 하늘과 땅과 바다가 나뉘었습니다. 하늘에는 새들이, 땅에는 각종 짐승과 식물이, 바다에는 물고기가 자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텅 비어 있던 세상을 각양각색의 피조물로 채워 넣으셨습니다.
성령 시대, 새 언약 복음이 전파될 때의 초창기 환경도 마치 무의 세계와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 같은 곳에서 시작된 복음은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인도로 급속히 전파되어 지금 전 세계 곳곳에 시온이 건설되었습니다. 아직 개척되지 못한 곳도 조만간 시온이 다 건설되리라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라도 유(有)의 세계로 다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장 1~2절
창조 당시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었던 지구에 산과 바다가 조성되고, 온갖 동식물이 번성하고, 그것들을 다스릴 사람이 편만하게 된 것은 전부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창 1장 3~31절).
그러한 권능의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해 영적으로 텅 비어 있는 지역이라도,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 가서 진리를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역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초기 하나님의 교회를 떠올리면 오늘의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미국에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만 해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반기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당시 동행한 장년 집사님과 단둘이 미국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장 20절) 하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르침을 받을 백성들을 미국에 예비해 두셨을 테니 믿고 나아가자고 외치며 선교를 시작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놀랍게 이뤄주셔서 현재 미국 전역에 시온이 세워졌습니다. 믿음 있는 일꾼도 정말 많습니다. 빈 곳에서 시작해도 언제나 많은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 이 오리라” 마 24장 14절
2천 년 전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말씀은 공허했던 지구를 채우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오늘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천국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최남단 도시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북극과 가까운 알래스카에도 시온이 건설되었습니다.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도, 아마존 밀림 지역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찾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전 가본 적도 없는 지역까지 시온이 속속 세워지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써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성장이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이룬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졌듯,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은 메마른 사막이라도 샘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며, 생명이 없는 세계라도 생명이 탄생합니다. 어디든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은 무의 상태가 유의 상태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광야 시대의 역사에서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 16장 1~3절
2월 15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온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아득히 넓고 비어 있는 들입니다. 음식도, 물도, 식당이나 숙박 시설도,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강이 흐르고 강변에 큰 나무라도 있다면 목을 축이고 그늘에서 쉬어 갈 수 있으련만, 그런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은 공간이 광야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만 해도 60만 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합산하면 대략 300만이 넘는 인구가 대이동 중인데 출애굽 한 달 만에 미리 가져온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갈 길은 멀고 생존에 필수적인 양식은 없으니 긴장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압박감이 입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좋은 경로를 내버려두시고 그들을 척박한 광야로 인도하셨을까요? 황량한 광야를 풍족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백성들이 경험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텅 비어 있던 광야에 그때부터 만나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단 하루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출 16장 13~35절). 목이 마를 때는 반석을 쳐 샘이 솟게도 하셨습니다. 고기가 없을 때에는 동풍을 일으켜 메추라기 떼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 중에 목말라 죽거나 굶어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엎드러져 멸망한 사람은 두려워하고 원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보이지 않을 때 사람에게 공포감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식과 물을 구할 수 없어 두려워하기만 했지,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능력도 봤고, 홍해를 육지같이 만드셔서 무사히 건너게 하신 능력도 봤던 그들이 출애굽 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생활이 어려워지자 “차라리 애굽에서 하나님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았습니다. 무의 상태에서도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그 순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미래가 없다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장차 갈 영원한 영의 고향이 있습니다. 조금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라도 유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을 갖고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가운데 믿음의 광야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사사 시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려고 미디안 군대와 맞서 싸울 군대를 선별하셨습니다. 사사 기드온을 필두로 모인 이스라엘 군대는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13만 5천 명이라는 미디안 대군을 상대하기에는 수적으로 매우 열세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3만 2천 명이 많으니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워 떠는 사람을 가장 먼저 제외시키셨습니다. 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단코 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믿음이 깃들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가지는 순간, 그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기에 자신보다 강한 상대, 자신보다 유리한 환경에 놓인 사람을 마주하면 위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는 비록 약해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절대 약하시지 않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하던 2만 2천 명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1만 명이 남았지만,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군사의 수를 더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대로 그들을 시냇가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물 마시는 자세를 시험한 결과, 무릎을 꿇지 않고 손으로 물을 떠 마신 300명이 남았습니다.
현대전과 같이 대량 살상 무기도 없고, 칼이나 활이 고작이던 시대에 군인의 수는 승리의 절대적 요건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그들에게 무기도 쥐여주지 않으시고, 한 손에는 항아리와 그 속의 횃불을, 다른 손에는 나팔을 들려 적진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작전이었습니다. 300명은 적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작전을 수행할 군사들로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밤 사경쯤 되어 기드온의 군대가 적진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미디안 군대의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에 맞춰 항아리를 전부 부수고, 항아리에 감춘 횃불을 높이 치켜들며 미디안 진영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항아리 깨지는 소리, 나팔 소리, 큰 함성이 들렸습니다. 잠자고 있던 미디안 병사들은 적군이 자기 진영으로침범해 들어온 줄 착각하고, 어둠 속에서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상대를 공격했습니다. 결국 13만 5천 명 대부분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었고, 기드온의 용사들은 횃불과 나팔만 가지고 적들을 섬멸하는 놀라운 전과를 얻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담대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려 세상에 평화와 기쁨을 주고, 인생의 올바른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인류에게 천국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일이 복음 전파입니다. 이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자들을 선별하십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일을 진행하니, 하나님께서 적과 싸우지 않아도 승리하도록 역사를 이끌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좋은 여건이 아니더라도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조성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할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지구에 산과 바다와 들을 만드시고, 각종 수목과 꽃이 나게 하시고, 하늘에는 새들로, 바다에는 물고기로, 육지에는 온갖 짐승들로 채우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보면, 항상 비어 있는 곳에서 시작하시지만 나중에는 그곳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가십니다. 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환경에 처한다 해도, 공허한 세계를 아름답고 풍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빈 곳을 비어 있는 대로 두지 않으시고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 6장 9~13절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5천 명이나 되는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리를 가까운 마을로 보내 음식을 사 먹게 하는 것이어떻겠습니까?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빈 들입니다” 하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럴 것 없이 너희가 가진 양식을 나눠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양식이라고는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적은 양으로 어떻게 5천 명을 먹일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며 반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좌절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적은 양식만 바라봤을 때,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빈 들에 양식이 풍 성해지는 결말을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양식에 축사하고 나눠 주시니 보리떡 다섯 개가 단순히 다섯 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눠 가지면 가질수록 50개가 되고, 500개가 되고, 5천 개 이상이 되었습니다. 남은 양식을 회수해 보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누구를 통해 이뤄졌습니까? 사람의 능력을 기준으로 모든 상황을판단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이라 해도 풍성히 채워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이 이끄시는 복음이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빈 곳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복음을 진행하면 가는 곳곳마다 시온이 세워지고 또 시온이 하나님의 성도들로 가득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느 지역은 복음이 잘 전해지고 어느 지역은 소식을 빠뜨리는 일 없이 하나님께서 모든 지역을 복음을 듣는 이들로 가득가득 채워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편 1절
다윗은 자신의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자신의 삶에 부족함이 없다고 찬양했습니다. 공허한 세계가 하나님만 계시면 풍성하게 변화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주변 여건만 생각하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이 먹고도 남은 양식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찬 것과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조건만 보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지 먼저 생각합시다.
마가의 다락방같이 좁은 곳에서 시작해도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됩니다. 아직 교회가 없는 지역이라면 오히려 기뻐하며 복음을 전해 봅시다. ‘이곳에는 나 혼자밖에 없는데, 과연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도, 담대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곳에 불가능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아무것도 없던 지구에 온갖 것을 채워 넣으셨듯 우리에게도 그러한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마 28장 20절, 사 41장 10절).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듣는 이들의 마음 문을 다 열어주시고 한순간에 시온을 가득히 채워주십니다. 영적으로 혼돈하고 공허한 이 세상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히 채워질 것입니다(사 11장 9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가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시온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