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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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는 ‘내가 자격이 될까’, ‘내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하고 자신의 능력을 먼저 점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위치에서 그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계산한다면 모두가 못한다는 얘기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는 ‘아멘’ 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가 하나하나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우리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바탕 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움직여 가시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여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백성들을 건져내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학문이나 지식이나 능력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대로, 하나님의 도구 역할을 한 것뿐입니다.

처음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었을 때 모세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장 10~12절

위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겨주시는 장면입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깜짝 놀라서 자기가 과연 이 일에 적임자인지 자신의 능력을 헤아려보고는 두려움에 머뭇거렸습니다. “제가 누구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 “저는 말에 능치 못해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족한 믿음을 질책하시면서 친히 그와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명을 받은 모세는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과 질곡의 땅, 애굽에서 건져내었습니다.

모세의 심정은 오늘날 우리가 부르심을 입을 때의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자신의 나이나 경력, 능력이나 지식이 부족하다고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면 가서 전하면 되는데, 해보지도 않고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여 겁부터 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에 나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실 때도 모세에게 지팡이만 내밀라 하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홍해를 가르고 육지를 만들어 내겠습니까? 그러나 믿고 준행하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지팡이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지팡이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일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이고 복음 역사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고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말씀을 전하라 하시면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

기드온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세와 똑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시는 일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그 일을 감당하기에 자신은 너무나도 작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 삿 6장 12~18절

기드온도 모세와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무엇으로 이 백성들을 구원하리이까?” 자신이 가진 것은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어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답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후로 기드온은 몇 가지 이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건져내게 됩니다.

각자의 능력을 생각하고 상황과 생활 배경을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혹은 자신이 뭔가를 많이 알아서 많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저만큼 밀쳐내고 복음 사명을 수행한다면 그 또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많은 군사가 필요하겠습니까, 군사 지식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니면 군자금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한 가지로 우리가 온 우주에서 가장 큰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롬 15장 4절). 우리는 이런 장면들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마음에 새겨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기쁘게 따라야 하겠습니다.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택하신 하나님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려면 이 정도의 자격 요건은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람을 선발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놀랍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다윗을 택하실 때도 그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삼상 16장 1~13절

사무엘이 볼 때는 최소한 왕이 되려면 용모와 신장도 출중하고 남들을 압도할 만한 풍채나 연륜도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보셨습니다. 그 결과 이새의 아들 중에 제일 어린 다윗이 선발되었습니다. 외모보다도 중심에 가지고 있는 믿음이 아름다워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예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발 기준은 항상 이러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나 경력, 능력, 지식 또는 물질의 부요함이나 주변의 배경, 이런 것을 보고 타인을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아닌 듯 여기시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개개인의 자격 요건보다는 그들의 진실한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을 보셨습니다. 지식이나 능력, 재물, 배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었다면 많이 배웠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혹은 부유한 사람들만 불러 모으셨을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될까를 계산하지 않고, 부르심에 즉각 부응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장 18~22절

제자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곧바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삼 년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갖가지 영적 상황을 다 접하면서,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진정한 면모를 갖추어갔습니다.

고기 잡던 베드로가 대중 앞에서 설교할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랬던 그가 하루에 삼천 명을 회개시켜 구원받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구어 내었습니다(행 2장 38~41절). 그것은 베드로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에 쥐여 있는 지팡이가 쇠 지팡이든 나무 지팡이든 아니면 다른 재질로 된 지팡이든 재질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이든 모세가 들 수 있는 지팡이면 족했습니다. 삼손이 적들을 물리칠 때도 적들은 칼과 창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나귀 턱뼈 하나면 족했습니다. 삼손은 적들을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었기 때문에 무기로 쓸 만한 것만 있다면 어떤 형태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 사람이 어떤 도구이든 가리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야고보와 요한이 특별히 학식이나 소유가 많아서 그들을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께서 인류 인생 가운데서 불러주시고 택해주신 사람은 그만큼 큰 축복이 있으니 우리도 베드로처럼, 요한과 야고보처럼, 부르심에 곧바로 부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부르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정말 복 받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들도 사람이니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러주시고 사명을 맡겨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에 거기에는 근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부르심을 입을 때 아멘 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던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이 시대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세계를 구원하게 하기 위해서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주저하고, 맡겨주신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 일에 내가 적합할까?’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과 두려움은 엄연히 다릅니다. 할 수 있는데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면, 두려움은 일을 해보기도 전에 겁부터 내는 것입니다. 두려워 떠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맞지 않으니 집으로 돌려보내라 하셨습니다(삿 7장 2~3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하나님께 구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기 때문에 먼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행하면 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승리의 영광을 허락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계 17장 14절),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즐겨 행하는 시온의 가족들이 다 되어봅시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장 18~20절

우리가 무엇이 뛰어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능력으로 하려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이 역사를 이루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셨다면 국내든 해외든, 어떤 나라, 어떤 민족에게든 가서 복음을 힘써 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세에게도, 기드온에게도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면 부르심을 입지 않은 사람처럼 잠잠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주부는 이웃에게,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아름다운 중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내가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버립시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면 그 부르심에는 꼭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믿고서 열심히 복음을 전합시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로운 천국 소식을 얼마든지 전해주셔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입은 시온의 형제자매들 모두 하늘의 많은 축복과 상급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