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사람이 길을 가던 중 한 사람이 땅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다. “와, 내가 오늘 운이 좋네. 이렇게 공돈이 생기다니!” 지갑을 발견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동행하던 사람이 “내가 이 길로 가자고 했으니 절반은 내 몫이야”라며 발끈했다.
그때 돌연 지갑 주인이 나타났다. “잡았다! 내 지갑을 훔쳐간 사람이 너로구나.” 지갑을 발견한 사람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지갑이 땅에 떨어져 있어서 주운 것뿐이에요. 그리고 저 혼자 가지려 했던 게 아니라 이 친구와 반씩 나누려고 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잡아떼며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주인을 찾아주자고 했으면 좋았잖아!”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이라 했던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너도나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접하곤 한다. 국가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국민은 정치인들을 탓하고,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탓하며, 직장 내에서는 ‘누구 때문에 회사 가기 싫다’, ‘아랫사람이 일을 똑바로 못 한다’며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적이 안 나오면 집이 가난해 과외를 못 받은 탓이다,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배우자를 잘못 만나 고생한다며 푸념을 내뱉곤 한다.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애꿎은 날씨 탓까지 한다.
그러나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위대한 음악가는 악기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도구 탓을 하기 이전에 자신의 내공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매사에 다른 사람 탓만 하면 갈등만 불거질 뿐이다. 서로를 탓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남 탓, 그 쉬운 선택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히는 일도 있다. 그런데 일이 잘되면 자신이 보이고 잘못되면 다른 사람이 보인다. 결과가 나쁘면 시선을 외부로 돌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백만 가지 이유를 찾는다.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 탓을 하는 심리적인 현상을 ‘투사(projection)’라 한다.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거나 큰 슬픔과 괴로움이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곤 한다.

남 탓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쉽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은 우선 편하고 보자는 심산이다. 사실,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남들에게 완벽하고 옳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이라 하자니 왠지 모를 억울함이 고개를 내밀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이럴 때 잘못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 마음의 짐을 간단하게 덜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성향은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일수록 강하다. 친구가 놀자고 해서 학원 못 갔다는 둥, 엄마가 준비물을 안 챙겨줘서 못 가지고 갔다는 둥, 동생 때문에 장난감이 부서졌다는 둥, 아이들은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습관적으로 남 탓을 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는 결국 자신의 미성숙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말이 나오려 할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철부지 아이가 할 법한 행동은 아닌지.
‘… 때문에’라는 말이 앗아가는 것들
미국의 어느 항공사가, 정당하게 티켓을 구입하고 비행기에 탑승한 고객을 강제로 끌어 내린 일로 세계적인 공분을 샀다. 오버부킹(항공권 초과 판매)으로 비행기에서 내려달라는 항공사의 요구에 승객이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항공사는 고객이 공격적이어서 끌어 내렸다며 고객을 탓했고, 비난이 거세어지자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항공사의 주가는 이미 폭락한 데다 고객의 신뢰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난 이후였다.
누군가를 탓하고 잘못을 돌려버리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발전이 없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고쳐야 할 점, 부족한 부분도 발견하지 못하며, 자신이 옳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
세상 탓, 환경 탓, 남 탓만 하며 허송세월 보내면 손해 보는 쪽은 자기 자신이다. 상황과 환경, 타인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고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자기 자신인데,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만 탓하고 자신은 변하지 않으려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荀子)는 ‘남을 탓하는 사람은 항상 곤경에 처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다. 일이 잘못된 것이 다른 사람 때문이라 생각하면 원망하게 되고, 원망은 분노를 낳게 된다.
가령, 수험생 자녀가 엄마에게 아침에 일찍 깨워달라고 부탁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엄마는 밤늦게 돌아온 아빠를 기다리다 늦게 잠들었고, 잠을 설치다 늦잠을 자고 말았다. 학교에 지각하게 된 자녀는 자신을 깨워주지 않은 엄마를 탓했고, 엄마는 늦게 귀가한 아빠 때문이라며 아빠를 탓했다. 아빠도 빠질 수 없는 회식이었다고 항변하며 스스로 일어나지 않은 자녀를 탓했다. 이처럼 서로를 탓하는 가정에서는 행복이 뿌리내릴 수 없다.
남 탓만 하고 자기 책임을 회피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이 남 탓이면 결국 자신의 인생은 없다.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허수아비일 뿐이다.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그렇다고 무조건 내 탓이라며 자책하라는 뜻은 아니다. 지나치게 자기 탓만 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기소침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자책과,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내 삶은 내 것이니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고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메시지와 같다.

다른 사람을 탓하느라 소비하는 에너지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삶을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는 데 사용하면 성장의 가능성은 열린다. 나들이를 갔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릴 경우, 하늘을 보며 원망하는 사람은 나들이를 망쳤다는 사실에 마음만 상할 뿐이지만 “내가 미처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못했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내 잘못이야” 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사람은 다음번에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우산을 챙기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 자녀와 잘 지내고 싶은데 자녀가 계속 엇나간다면 자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방법과 태도를 돌아보아야 관계 개선의 여지가 열린다.
인종차별을 딛고 흑인 최초로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아서 애시(Arthur Ashe)는 은퇴 후 코치, 방송해설자, 인권운동가 등으로 활동하다 심장수술 때 수혈을 잘못 받아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그렇게 무서운 질병에 걸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었을 때 ‘왜 나야?’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나의 고통에 대해서 ‘왜 나야?’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물어야 할 테니까요.”
내가 힘들고 불행하다 느껴질 때 그 모든 원인이 타인이나 상황, 환경 때문일까. ‘… 때문에’ 불행하다기보다는 그렇게 여기기 때문에 불행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발에 수없이 밟히는 잡초도 척박한 땅을 탓하지 않고 보도블록 틈새로 꽃을 피운다.
내 감정은 내가 느끼는 것이고, 삶 또한 내 것이다. “너 때문이야” 하며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킬 때, 한 손가락은 상대방을 가리키지만 다른 손가락들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의 저자 존 G. 밀러는 ‘왜, 언제, 누가’를 질문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왜 문단속 안 했어?” “누가 문 안 잠갔어?”하며 다른 사람을 추궁하기보다는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에 도둑이 들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설령 가족이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질책할 것이 아니라 감싸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위의 경우에서 “제가 깜빡하고 문을 안 잠근 것 같아요. 제 잘못이에요” , “내가 한 번 더 문단속을 해야 했는데, 내 잘못이야” 하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다면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더욱 발전적인 방향을 서로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가정에는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