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회사, 군 부대, 스포츠 팀, 공공기관 등 어느 공동체에서든 좋은 일 혹은 나쁜 일이 생기면 으레 거론되는 단어가 있다.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부족해 실패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난관을 극복했다’는 식이다.
리더십 관련 도서는 서점가에서 항상 판매 상위권을 차지한다.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에는 CEO부터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규모를 떠나 한 조직을 통솔하는 지도자에게 있어 당연히 필요한 능력으로 손꼽힌다.
정말 리더십만 있다면 조직을 무조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좋은 리더십, 나쁜 리더십
왕이 명령을 내리면 신하와 백성들은 머리를 조아려 받들고, 주인이 지시하면 노예들은 무조건 복종하고….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확실히 구분되던 봉건제도 아래에서는 리더십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권력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강제로 복종시킬 수 있었고, 법을 통한 처벌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다르다.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은 명령이나 강압이 아닌 자기 의지로 일하고, 자신의 신념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 때문에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Leader)들에게는 각기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구성원들을 통솔하며 임무를 완수할 능력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그 능력이 바로 리더십이다.
리더십(Leadership)의 사전적 의미는 ‘무리를 다스리거나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다. 탁월한 리더십은 구성원들을 독려해 목표와 임무를 완수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성공을 일궈낸 리더에게는 부와 명예가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리더십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조직을 침체에 빠트리는 잘못된 리더십도 있다. 리더십을 단지 ‘강력한 카리스마로 구성원들을 휘어잡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고야 마는 능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리더’ 하면 의사를 결정하고 구성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입장으로만 생각해 다른 이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일을 추진하는가 하면, 구성원들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개인의 독선과 아집을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의 77퍼센트가 ‘상사와의 불화로 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고집스러운 상사 때문에 출근하기 싫다”, “상사와 말이 통하지 않아 일하기가 어렵다”는 이들의 대답은 리더십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리더십으로든 성과만 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함께하는 구성원들이 상처받고 의욕을 잃었다면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에 지나지 않는다. 개개인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마당에 구성원들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버린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리더십만큼 중요한 팔로어십
리더십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리더십만 갖고 일을 할 수는 없다. 대다수 공동체에는 리더보다 팔로어(Follower) 즉 리더를 따르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리더에게 리더십이 필요하듯 팔로어에게도 그에 알맞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바로 ‘팔로어십(Followership)’이다. ‘따른다’는 뜻의 팔로어(Follower)는 ‘돕다, 후원하다, 공헌하다’를 의미하는 독일 고어 ‘Follazionhan’에서 유래한다. 즉 팔로어십은 ‘리더를 도와 맡겨진 일에 공헌하는 능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따르는 사람의 정신’ 혹은 ‘기꺼이 따르는 힘’을 가리킨다.

리더십이 공동체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듯 팔로어십 역시 성공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조직의 성공에 리더는 20퍼센트, 팔로어는 80퍼센트 정도 기여한다’는 리더십 학자 켈리(Robert E. Kelley) 교수의 주장처럼 팔로어의 역할과 비중은 매우 크다. 리더가 훌륭한 리더십으로 팔로어를 이끌려 해도 팔로어가 따르기를 거부하거나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면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고, 수많은 팔로어들이 모두 리더처럼 판단하고 결정하려고만 한다면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그 공동체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
자기 생각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요즘, 실제로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거나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려는 팔로어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리더와 반목하거나 팔로어들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책임자인 리더와 한마디 상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거나, 선을 넘어 타인의 일에까지 함부로 간섭하려는 사람이 넘쳐나는 반면, 뒤에서 묵묵히 지시를 따르며 실무를 도맡아 진행할 사람은 부족하다는 하소연도 심심찮게 들린다.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은 환영받을 만하지만 다들 자기 주장만 한다면 그 조직은 어떻게 될까?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공동체란 나 ‘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곳임을 잊지 않고 자신의 입장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혹여 본인의 의견과 다른 일이 주어지더라도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더 멀리, 넓게 바라보며 기꺼이 따르는 힘이 필요하다.
좋은 팔로어가 좋은 리더로
리더와 팔로어는 각각 역할이 다를지라도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다. 리더가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팔로어의 도움과 공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팔로어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겸손’과 ‘경청’이다. 리더라고 해서 무조건 자기 생각대로 지시하고 명령만 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팔로어와 불화를 겪는 리더들 중에는 팔로어의 의견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지시와 명령만 내리다가 관계가 틀어져버린 이들이 많다.
고압적인 자세로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리더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구성원들의 눈높이에 맞게 자신을 낮추고 소통하며 조화롭게 일할 때 결과도 좋고 리더와 구성원들 모두 성취감을 맛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수많은 리더십 이론 가운데 ‘섬기는 리더십’, ‘따뜻한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처럼 열린 마음과 배려의 자세로 구성원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주목받는 오늘날 세태는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리더의 말투만 살짝 바뀌어도 팔로어와의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많다. “이것 빨리 해”보다 “이것 좀 빨리 해주겠나”가, “실수하면 큰일 날 줄 알아”보다 “이번 건은 특히 중요하니 여느 때보다 신경 써주게”가 듣기에 훨씬 좋다. 리더가 앞뒤 상황은 다 잘라먹고 무조건 지시만 하기보다 일의 취지와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준다면 팔로어도 억지스러운 마음과 기계적인 태도가 아닌 적극적이고 집중력 있는 자세로 업무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겸손과 경청의 자세가 중요하기는 팔로어도 마찬가지다. 리더의 경험과 지식, 판단을 신뢰하며 기꺼이 따르겠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리더도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고, 팔로어 스스로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할 수 있다. 리더에게 단점이 있다 해도 부족한 부분을 파헤치거나 탓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보완해주려 노력한다면 서로의 신뢰는 더욱 돈독해지고 불협화음은 줄어든다.
그러자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투덜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리더나 동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리더나 동료가 무언가 의견을 제시할 때 습관처럼 이의를 제기하거나 적절한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이들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름대로 잘해보기 위한 노력일지는 몰라도 이들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하고 공동체 전체를 슬럼프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리더가 좋은 계획을 제시해도 ‘내가 알아서 잘할 텐데 왜 자꾸 잔소리만 하나’ 하며 마음과 귀를 닫아버리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대기 십상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Why(왜)’보다 ‘How(어떻게)’ 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일을 왜 하필 나한테 시키나’, ‘왜 꼭 이 방법으로 해야 하나’ 같은 부정적인 시각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적당할까’ 하는 자세로 일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고대 철학자의 말처럼 팔로어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훌륭한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 역시 처음부터 리더였던 것은 아니다. 대개 낮은 위치에서 시작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능력을 인정받아 리더의 위치에 오른다. 훌륭한 팔로어십이 탁월한 리더십의 밑거름이 되고, 믿음직한 팔로어가 훗날 다른 팔로어의 마음을 헤아리며 현명하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뛰어난 리더로 성장한다. 팔로어십과 리더십은 각각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표본, 예수 그리스도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리더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는 팔로어였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장 32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 1장 4~5절
예수님은 예정하신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감당하기 벅찬 고통까지 기꺼이 감당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실 만큼 자신에게 직면한 고통이 엄청나다는 것을 아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며 팔로어로서의 본분을 다하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는 리더로 우뚝 서셨다.
엘로힘 하나님을 믿으며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는 엘로히스트는 엘로힘 하나님의 팔로어인 동시에 뭇 영혼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복음의 리더들이다. 그러한 엘로히스트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본보여주신 ‘순종’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장 5~11절
성경 기록 속에 이름이 빛나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 역시 훌륭한 팔로어이자 리더였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훗날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며 철저히 하나님의 팔로어로 살았던 바울과 베드로 같은 사도들은 복음의 리더로서 하루에 3천 명, 5천 명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축복을 누렸다.
이 시대 구원받을 성도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 따라가는 자’들이다(계 14장 1~4절). 하나님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영적 팔로어십은 뭇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훌륭한 리더십으로 발현된다. 때로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교훈을 ‘마침내 축복을 주시기 위한’(신 8장 16절) 하나님의 뜻이라 굳게 믿고 마음과 힘을 다해 따르려 노력하는 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세계 복음을 완성하는 리더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