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낙과 천국의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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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삶의 지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세상의 세속적인 즐거움에 취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천국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갈림길에 언제든 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듯,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가는 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마 16장 24절). 또 하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이 땅에서는 크든 작든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됩니다(딤후 3장 12절). 죄악의 낙과 천국의 낙, 과연 어떤 것에 신앙의 가치를 두고서 믿음의 길을 지향해야 할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의 길에 수반되는 고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볼 때 행복하고 화려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어려운 일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한 가지 일을 하려 해도 못 하게 방해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방해한다 해서 기도를 멈췄던 것이 아니라 누구든 왕 이외의 대상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겠다는 왕의 칙령이 내린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단 6장). 이런 사람이 천국의 낙을 더 생각한 사람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죄악의 낙에 연연했다면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이 두려워 기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행적도 기억해 봅시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는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는 왕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끔찍한 결과조차 고스란히 받아들였습니다(단 3장). 죄악의 낙보다 천국에서 누릴 영광과 축복을 더 크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다니엘은 이 땅의 죄악의 낙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즐거움과 영광을 더 크고 가치 있게 여겼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십자가와 같은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된 미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선택을 한 그들에게 훨씬 더 은혜롭고 아름다운 삶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속에서 부자의 삶은 일생 동안 물질과 세속의 기쁨과 영화만을 꿈꾸면서 이루어졌지만 나사로의 삶은 낮고 천한 위치에서 참으로 궁색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죽은 후에 부자는 지옥으로 갔고, 고난받던 나사로는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죄악의 낙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천국의 낙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계십니다(눅 16장 19~31절).

에서와 야곱, 선택의 차이

야곱과 에서 이야기를 통해서도 이 세상의 죄악의 낙과 천국의 낙에 대한 이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창 25장 27~33절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습니다. 배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야곱에게 맹세까지 해가며 넘겨줘 버렸습니다. 팥죽 한 그릇을 먹는 짧은 시간 속에 허기를 달래고 잠시의 포만감과 즐거움은 누렸다 해도 그로 인해 모든 축복은 고스란히 야곱에게 넘어갔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당연시했을 뿐, 자기 운명을 걸 만큼 가치 있게 여기지 못했습니다. 반면 야곱은 ‘어떻게 하면 복을 더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 은혜를 덧입을 수 있을까’ 하며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천국의 낙을 더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은 죄악의 낙을 더 기뻐했고, 한 사람은 천국의 낙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서처럼 이 세상 죄악의 낙에 취할 것이 아니라 천국의 낙을 더 기뻐하는 야곱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죄악의 낙에 미혹된 이들의 말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의 경우도 살펴보겠습니다.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마 26장 14~16절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가룟 유다는 은 삼십을 받고서 예수님을 판 인물입니다. 재물이라는 일순간의 달콤한 죄악의 낙은 누렸을지 몰라도 실상 그조차도 마음껏 누리지 못했습니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장 3~5절

가룟 유다는 일순간의 죄악의 낙에 혹해 천국에서 얻을 즐거움은 모두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은 삼십에 팔았을 때 가룟 유다의 영적 세계는 이미 지옥이었고 황폐해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 대제사장들에게 그 돈을 돌려주고 자신은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광경을 성경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행 1장 15~19절).

창세기 19장에도 죄악의 낙을 추구하다가 멸망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 19장 12~17절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당시, 롯의 가족을 제외하고 성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육신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죄악의 낙을 추구하다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까지 스스럼없이 저지르던 그들은 하늘로서 내린 유황 불 비로 인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창 19장 1~26절).

지나간 성경 역사는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롬 15장 4절). 잠시 잠깐의 낙, 죄악의 낙에 취해서 천국의 낙을 쉽게 포기한 예가 에서, 가룟 유다, 소돔 고모라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던가 다들 후회막심이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이 땅의 죄악의 낙에 취해서 살아가지 말고 천국을 향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천국의 낙을 선택한 삶

우리가 열심히 안식일,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는 것 또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경에 아무리 나와 있다 해도, 하나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천국의 낙보다 죄악의 낙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에 미련을 두고 세상 사람들의 인정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에서와 같은 삶, 가룟 유다와 같은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죄악의 낙에 눈이 멀어서 천국의 낙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잠시 잠깐의 죄악의 낙보다 하나님과 더불어 누릴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영광을 생각한다면 어려운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어 영원한 천국의 낙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 좋은 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장 24~26절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왕위를 계승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말씀은 천국의 가치를 더 크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과연 무엇을 위해서 살아갈 것인지, 인생의 좌표를 바르게 설정해서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나아갑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장 12~18절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낙을 위해서 죄악의 낙을 버리는 사람들의 믿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것도 다 얻고, 하늘의 것도 다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늘의 것을 얻으려면 이 땅의 것은 다소 포기해야 하고, 이 땅의 것을 많이 얻으려면 하늘의 것을 그만큼 버려야 합니다.

고난 자체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천국의 영광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다소의 어려움과 아픔은 감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간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절대 범하지 말라고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잠시 있을 죄악의 낙을 좇아 육신대로 살기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 4장 17~24절

하나님께서는 허망한 죄악의 낙을 추구하던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셔서 천국의 낙을 위해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품성과 바른 믿음의 자세를 갖추어, 이 땅의 것은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하늘 축복만은 절대 양보하지 말고 야곱처럼 끝까지 힘써 그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이 땅의 죄악의 낙에 가치를 둘 것인지, 영원한 천국에 가치를 둘 것인지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을 점검해 보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열심히 달음질합시다. 예수님께서도 앞에 있는 즐거움, 곧 천국의 낙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장 1~2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갖 조롱과 수난을 당하시면서도,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천국으로 돌아올 길이 열리기 때문에 인류의 속죄와 죄 사함을 위해, 장차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영광과 즐거움을 위해 당신 자신을 고난과 핍박 속에 던지시고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이 길이 아버지 걸어가신 길이요 어머니 걷고 계신 길이요,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천국이니 세상으로 눈을 돌리지 말고 하늘나라로 시선을 돌리고 방향을 잡아 천국 사람으로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다니엘 같은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같은 사람, 사도 바울, 베드로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았던 그들은 이 땅의 영광보다 천국의 영광을 더 생각하고 천국의 낙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한 목표와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마 28장 18~20절). 이 일은 세상이 다 우러러 받들어주는 세상 영광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그 영광이 빛난다는 말씀처럼(단 12장 1~3절), 그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많은 상급과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 땅의 즐거움을 접어두고 그 길을 선택합니다. 죄악된 세상의 낙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길이 힘겹고 형벌같이 느껴지겠지만 하늘의 영광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쉬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겪는 일은 모두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잠시 이 땅의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하늘의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살아갑시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삶의 길을 따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저울에 달아 보실 때 죄악의 낙은 1퍼센트도 나타나지 않는 순전한 믿음으로 흠도 점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시온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죄악의 낙과 천국의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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