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안전장치, 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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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중력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뿐 아니라 모든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힘껏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도 하늘에 닿기는커녕 잠시도 공중에 떠 있지 못하고 도로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언제나 중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항상 중력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무에도, 의자에도, 공기에도 중력은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783년,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비행한 것을 시작으로 100여 년 뒤, 라이트 형제에 의해 최초의 동력 비행기가 개발됐다. 100년의 세월이 더 지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현대 문명은 초음속, 초대형 여객기를 만들어 냈다. 땅에서 발을 뗀 인류는 더 나아가 지구의 중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우주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 염원은 로켓을 고안하기에 이르렀고 유인우주선과 국제우주정거장을 탄생시켰다.

중력이란 무엇인가

중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중력은 물체를 지구의 중심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중력을 알기 위해서는 만유인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만유인력은 우주의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으로, 세상의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 만유인력은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질량이 클수록,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힘이 커진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착안했다던 사과나무를 살펴보자. 사과는 지구를 끌어당기고 지구도 사과를 끌어당긴다.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과 사과가 지구를 당기는 힘은 서로 작용반작용의 관계를 이루므로 두 힘의 크기는 같다. 하지만 지구의 질량에 비해 사과의 질량이 매우 작기 때문에 사과는 지구 쪽으로 떨어진다.

지구와 사과 사이뿐만 아니라, 지구와 달, 태양과 지구, 은하와 은하 사이에도 만유인력은 작용한다. 뉴턴은 지구 중력을 우주로 확장해 만유인력의 개념을 고안해 냈다. 중력은 영어로 ‘그래비티(gravity)’이고, 만유인력은 ‘유니버설 그래비테이션(universal gravitation)’이다. 우주의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의미를 살려 만유인력이라고 번역된 것일 뿐, 중력과 만유인력은 결국 같은 개념이다.

우리는 쉽게 중력의 크기를 ‘무게’라고 부른다. 흔히 질량과 무게를 혼동하기 쉬운데, 질량은 변하지 않는 양이지만 무게는 물체에 걸리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6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달에 가면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된다. 달에는 지구의 6분의 1만큼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와는 너무 다른 무중력의 우주

사람들은 흔히 우주에는 중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여러 천체들이 있고 어디에나 중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무중력 상태란, 중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천체로부터 거리가 멀어져 중력이 매우 약해졌거나 여러 힘이 상쇄되어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서는 물체를 공중에 놓아도 떨어지지 않고 둥둥 떠다닌다.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이 공중에 떠 있고 조금만 힘을 줘도 빙그르르 돌기 십상이다. 액체는 표면 장력에 의해 둥근 모양으로 방울방울 떠다니기 때문에 빨대 없이는 물을 마실 수도 없다. 또, 대류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 촛불도 금방 꺼지고 불을 사용하여 물이나 기름을 끓이기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먹는 라면이나 튀김도 우주에서는 만들 수 없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신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우주인들의 키는 지구에서보다 평균 3퍼센트 정도 커진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첫 우주비행을 위해 지상에서 잰 우주인들의 키에 맞게 우주복을 제작했다. 그러나 우주 생활이 계속될수록 우주복은 우주인들의 활동을 제약할 정도로 꽉 조여왔다. 척추에 가해지던 중력이 사라지면서 신장이 커진 것이다.

게다가 내장이 위로 올라붙어 허리가 가늘어지고 중력을 이길 필요가 없어 힘을 덜 쓰게 되면서 근육이 약해진다. 뼈의 칼슘 성분이 빠져나와 골다공증의 위험도 발생하는데, 우주에서의 한 달 동안 뼈 전체의 약 1퍼센트의 칼슘이 소실된다고 한다.

우주에서 활동하는 우주인들의 얼굴은 매우 둥글게 변하는데 이를 ‘문 페이스(moon face)’라고 한다. 한국우주인배출사업의 과학임무 중 하나가 ‘우주인 얼굴 형상 변화 연구’이기도 했는데, 중력이 사라지면서 혈액이 균등하게 분포되어 위쪽으로 혈액이 이동해 얼굴이 붓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리는 혈액이 빠져나가 얇아진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적혈구 생산도 감소한다. 그 결과, 혈액이 묽어져 혈액의 산소공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위아래의 구분도 사라지며 방향감각을 상실해 우주 멀미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에 대비해 우주에 나가는 이들은 지상에서 철저한 적응 훈련을 받지만 지구로 귀환한 뒤에도 잘 걷지 못하는 등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중력의 소중함

우주 공간을 실감 나게 그려낸 영화 ‘그래비티’는 중력으로부터의 해방감 대신 중력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우주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그들이 타고 온 우주왕복선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온 우주 쓰레기1에 파괴된다. 몸을 잡아줄 중력도 없고 호흡할 공기도 없는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주인공은 무중력과의 사투를 벌이며 중력이 있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 우주 쓰레기: 우주 공간을 떠도는 인공 물질로, 수명이 다하거나 고장 난 인공위성부터 우주 공간에서 작업 중에 놓친 공구와 자잘한 페인트 조각까지 다양하다. 이 우주 쓰레기들은 일정한 궤도를 따라 지구 주변을 도는데 초속 7킬로미터가 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작은 파편 하나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지구에서는 물체에 힘이 가해져도 금방 멈춘다. 물체가 공기 분자에 부딪히고 중력에 의해 지면에 맞닿아 있어 마찰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주에서는 몸의 방향을 바꾸어 이동하고 멈추는, 실로 단순한 일들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우주 공간은 지구와는 달리 중력을 느낄 수 없는 무중력의 세계인 동시에 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진공에 가깝다. 이 때문에 우주에서는 물체가 힘을 받아 운동하기 시작하면 영원히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두컴컴한 우주를 향해 한번 튕겨져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주 유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 전체를 보았을 때 중력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달이 지구 중력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태양계 행성들도 태양의 중력에 붙잡혀 궤도를 돌고 있다. 중력이 모든 천체를 제자리에 붙잡아 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중력이 사라진다면 지구 주위를 돌던 달이 지구를 떠나고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있던 대기도 모두 소실되어 버린다. 태양에 가까운 행성부터 태양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머나먼 우주로 튕겨져 나가게 되고 은하들도 궤도를 벗어난다. 우주 전체를 잡아주던 중력이 사라짐에 따라 우주는 빠르게 팽창하다 결국 산산이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중력이 사라진 세상은 인류가 꿈꾸던 자유의 공간이 아닌, 생존할 수 없는 극히 위험한 공간이다. 중력은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초속 30킬로미터로 우주를 항해하는, 지구라는 우주선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우리가 우주로 날아가 버리지 않고 이 땅에서 우리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중력 덕분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중력에 매이지 않은 완전한 자유를 꿈꾸며,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지구에서 무한의 우주 세계를 그려본다.

참고
『과학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과학질문사전』 (과학교사모임 著)
고호관, ‘중력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운명은?’, 과학동아 (2013년 3월호)
오가희, ‘지구의 중력에 감사하라!’, 과학동아 (2013년 11월호)
김형자, ‘물리학자들은 왜 중력에 목숨을 거나’, 주간조선 (2013.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