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 에디슨은 어린 시절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였다. 하루는 에디슨이 없어져 집안이 야단이 났다. 부모가 한참을 찾다가 헛간 짚더미 위에서 에디슨을 발견했다. 웅크려 거위 알을 품다 잠들어 버린 것이다. 에디슨의 바람과는 다르게 거위 알은 하나도 부화하지 못했다. 왜 거위 알은 부화하지 못한 것일까?
새끼가 자랄 보금자리, 둥지
알을 품어 깨어나게 하는 것은 새들의 번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둥지를 만드는 일은 알을 품기 위한 첫 과정이다. 사람도 비와 바람을 피할 집이 필요하듯이 새들도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고 곧 알에서 깨어날 새끼를 키울 둥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새들은 무엇보다 둥지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부모 새는 까다로운 엄선 과정을 거친 장소에 좋은 재료와 자신의 털까지 뽑아 둥지를 만든다.
새들이 만드는 둥지의 모양과 위치는 매우 다양하다. 이소성 조류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어미를 알아보고 졸졸 따라다닌다. 새끼가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바로 둥지를 떠나므로 물가의 모래, 자갈이나 바위틈에 집을 짓는다. 반면, 유소성 조류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벌거숭이로 태어난다. 어미의 보호가 없으면 살 수 없기에 장기간 둥지에 머무르며 어미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래서 비둘기, 부엉이, 제비 등의 유소성 조류는 이소성 조류와 달리, 나무 위와 같은 안전한 장소에 튼튼한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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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성 조류인 딱따구리는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든다. 나무를 쪼아 둥지를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진 딱따구리는 둥지를 지을 때 나무의 종류, 방향, 높이와 두께까지 살뜰히 챙긴다. 맹금류 같은 천적의 공격과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5층 이상의 높이에 둥지를 만들고 둥지 입구는 나뭇가지로 위장한다. 둥지를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딱따구리가 지은 둥지는 나무를 파서 둥지를 만들 수 없는 다른 새들의 집이 되기도 한다. 참새 정도의 작은 크기의 우리나라 텃새, 동고비도 딱따구리의 집을 재건축하여 둥지를 만든다. 작고 힘없는 동고비는 다른 새들의 번식 시기보다 이른 겨울 끝자락에, 버려진 딱따구리 둥지를 찾아 입구를 좁혀 다른 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다.
맘에 드는 둥지를 발견한 동고비 부부는 가장 먼저 둥지를 청소한다. 딱따구리가 톱밥을 바닥에 깔아 두었기 때문이다. 이어 진흙을 콩알만 한 크기로 둥글게 뭉쳐 나르기 시작한다. 1~2분 간격으로 하루 평균 80번 정도 쉴 새 없이 진흙을 다지고 나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원주인인 딱따구리나 둥지를 노리는 다른 새가 와서 집을 부수기 일쑤지만 동고비는 포기하지 않고 태어날 새끼들을 위해 또다시 진흙을 나른다.
동고비 수컷은 경계를 서고 암컷만 둥지를 짓는다. 둥지가 완성되고 알을 낳을 때쯤이면 흙투성이에 불룩한 배를 가진 암컷의 부리는 닳아 뭉뚝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진흙 한 덩이를 벽에 발라 곱게 펴기까지는 200번 넘게 다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꼬리를 가진 긴꼬리딱새는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둥지를 짓는다. 나무줄기를 엮어 알을 품기 좋도록 틀을 짜고 둥지 바깥에는 이끼를 붙여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만든다. 긴꼬리딱새의 둥지에는 아주 특별한 재료가 포함되는데 바로 거미줄이다. 거미줄은 끈기가 있어 둥지를 튼튼하게 하고 나뭇가지에 이끼를 단단히 밀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긴꼬리딱새는 주로 숲이 울창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습한 곳에 둥지를 튼다. 하지만 둥지의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엮여 있어 배수가 잘되고 바깥쪽에 있는 이끼가 안쪽의 남은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둥지는 금방 보송보송해진다. 비가 오면 부모 새가 둥지에 웅크리고 앉아 지붕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부모 새의 따뜻한 품, 포란
둥지가 마련되면 어미 새는 알을 낳기 시작한다. 산란 후 부모 새와 새끼의 첫 접촉은 알 품기, ‘포란(抱卵)’이다. 포란은 부모 새가 알을 따뜻하게 하는 과정으로 알을 낳은 직후부터 새끼가 알에서 깨어날 때까지 평균 2~3주 정도 된다. 부모 새가 번갈아 가며 품는 종도 있고 한쪽이 전적으로 품는 종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둥지가 거의 비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을 품기 전에 부모 새의 가슴 털이 동그랗게 빠지면서 ‘포란반’이 발달한다. 포란반은 깃털이 빠져 두꺼운 피부가 드러난 부분으로 많은 핏줄이 있다. 포란반 덕분에 부모 새는 알에 살을 맞대어 더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다. 딱따구리는 자신의 가슴 털을 뭉텅뭉텅 뽑아내 포란반을 만든다. 깃털을 버리고 드러난 맨살로 더 따뜻하게 품어주기 위해서다. 포란반에는 다음 겨울 털갈이할 때가 돼서야 다시 털이 자란다. 알을 품는 시기에 가장 예민해지는 새들은 먹이 활동까지 줄인 채 곧 깨어날 알을 품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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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부모 새가 함께 새끼를 돌보지만 황제펭귄은 유달리 지극한 부성애를 보여준다. 황제펭귄은 영하 60도에 가까운 혹한 속에서 수컷이 알을 품는다. 암컷이 알을 낳아 살짝 내려놓자마자 수컷은 발 사이로 알을 굴린 뒤 조심히 발등에 올려놓고 하복부의 피부로 알을 덮는다. 발꿈치에 힘을 실어 알이 올려진 부분이 얼음에 닿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한 달 반가량 단식하며 힘겹게 알을 낳은 암컷이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면 수컷들은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두 달가량 알을 품으며 견뎌야 하기에 거의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한다. 절벽에서 떨어져도, 눈 쌓인 비탈길에서 굴러도, 웬만해선 알을 놓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새끼가 부화하면, 수컷은 아사 직전임에도 ‘펭귄 밀크’라 불리는 물질을 토해내어 새끼에게 먹인다. 수컷 상당수는 짝을 만나고 알을 품어 부화시킬 때까지 넉 달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체중이 절반으로 줄고 털은 윤기를 잃어 꾀죄죄하다. 이때쯤 바다로 나갔던 암컷이 돌아와 수컷과 교대한다. 새끼들은 부화한 후 45일 정도를 부모 펭귄의 발 위에서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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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기러기류는 알을 품는 동안 어미와 새끼가 소통하기도 한다. 새끼가 알 속에 거꾸로 있게 되는 경우 부화할 때 알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고 자칫하면 알껍데기에 달라붙어 나오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새끼들은 알 속에서 소리로 어미 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면 어미 새는 부리로 알을 굴리고, 새끼가 ‘좋아요’ 하는 소리를 내면 알 굴리는 것을 멈춘다. 마치 갓난아이가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
알 속에서 우는 새끼에게 어미 새는 위로의 소리를 들려준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항상 너희 곁에 있단다’와 같은 의미의 소리다. 이소성 조류의 새끼들은 알 속에서 들었던 어미 새의 소리를 기억하여 부화 이후 보금자리를 이동할 때 어미 새의 소리를 듣고 따라간다.
알들 사이의 대화도 신비롭다. 이소성 조류는 알에서 나와 바로 둥지를 떠나기 때문에 모든 새끼들이 같은 시기에 나와야 한다. 새끼는 알 속에서 나갈 준비가 되면 북을 치는 듯한 아주 큰 소리를 낸다. ‘준비됐니? 나는 준비가 됐어’라는 의미다. 이 소리가 들리면 아직 준비를 마치지 못한 다른 알 속 새끼들의 심장박동, 호흡,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성장 속도도 빨라진다. 그렇게 한 둥지의 새끼들이 함께 알에서 깨어난다.
부화,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다
부모 새의 지극한 보살핌 아래 성장한 새끼들은 세상으로 나올 채비를 하지만 첫 관문부터 만만치 않다. 부화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알 속의 새끼는 몸을 돌리며 부리에 난 딱딱한 돌기인 난치1로 뭉툭한 알 끝 주변을 쪼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알껍데기에 별 모양의 금이 생기면 부화가 시작된다. 알은 꽤 긴 시간 금이 간 상태로 있는데 보통 수 시간 남짓 흘러야 껍데기에 구멍이 생긴다. 새끼의 다리와 목의 움직임으로 알에 균열이 생기고 깨져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48시간 이상 사투를 벌일 만큼 어린 새끼에게는 험난한 시간이다.
1. 난치: 부리 위에 형성되는 단단한 조직으로 껍데기나 난황을 부수는 기능을 한다. 부화가 끝나면 서서히 퇴화되거나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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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은 혼자 힘으로 부화할 수 없다. 부모 새는 생명이 잉태될 둥지를 정성껏 만들며 알 속에서 생명이 움트고 자라기까지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롯이 둥지를 지킨다. 알을 따뜻하게 품기 위해 아름다운 깃털이 사라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부모 새의 지극한 사랑으로 새끼는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학자들은 새들의 이러한 행동을 본능이라고 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처음부터 지니고 있는 습성을 뜻하는 것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새들에게 내재된 자식 사랑이 어쩌면 이리도 눈물겨운 것일까?
- 참고
- 『조류학』(올린 페팅길 著)
-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김성호 著)
- 『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김성호 著)
- 『휴머니즘의 동물학』(비투스 드뢰셔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