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돌아오면 사람들은 살을 에는 칼바람에 외출을 꺼린다.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방한용품을 준비하기도 한다. 겨울에 패딩이나 두꺼운 털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바람을 막아줄 집도, 두꺼운 옷도 없는 동물들은 혹독한 추위를 어떻게 견딜까?
지구 상에서 가장 추운 곳은 남극이다. 남극은 전체 면적의 2퍼센트만 흙이 드러나 있고 나머지는 두께 2킬로미터에 이르는 얼음으로 뒤덮인 대륙이다. 남극의 겨울 기온은 평균 영하 56.7도이며, 최대 영하 91.2도까지 내려간다. 때때로 연안에서는 초속 50미터가 넘는 바람이 불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서야 탐험이 성공하여 겨우 베일을 벗고 있는 남극은 극한의 공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한 하얀 대륙 남극에도 생각보다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남극의 미생물들은 화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추위를 견딘다. 물 분자와 결합해 얼음 결정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빙방지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남극 바다에 사는 아이스피시는 이름처럼 온몸이 투명하다. 헤모글로빈이 없는 투명한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고기는 몸속에서도 부동액(액체의 어는점을 낮추기 위하여 첨가하는 액체)의 한 종류인 글리세린을 합성한다. 미생물과 마찬가지로 남극에 사는 많은 어류도 결빙방지물질을 이용해 추위를 이겨낸다.
남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펭귄, 고래, 바다표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들의 터전이다. 그중에서도 남극의 신사, 황제펭귄을 빼놓을 수 없다.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와 연미복을 차려입은 듯한 모습이 귀엽기만 한 황제펭귄은 사실 남극에서 극한의 추위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고 있다. 남극에 사는 펭귄 중에서도 한겨울에 알을 낳고 새끼를 돌보는 종은 황제펭귄이 유일하다. 황제펭귄이 사는 곳은 천적도 살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춥기 때문에 새끼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다.
황제펭귄은 혹독한 남극의 기후를 이겨낼 다양한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바다에서 얼음 위로 뛰어오른 펭귄을 보면 홀딱 젖은 것처럼 보이지만 깃털 안쪽은 전혀 물이 묻지 않은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방수 기능을 가진 깃털 덕분이다. 깃털 가장 안쪽에 난 얇은 솜털은 공기층을 형성하는데 열전도율이 낮은 공기는 열의 방출을 차단하여 방한 효과가 있고, 지방층으로 된 가장 두꺼운 외피는 두툼한 겉옷을 입은 것과 같아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한몫한다.
깃털로 덮여 있지 않은 부위는 어떨까? 얼음과 맞닿는 발바닥은 ‘원더네트(wonder net)’라는 모세혈관 다발로 되어 있어서 동상을 방지한다. 원더네트 덕분에 얼음과 닿는 발 부근의 차가운 피는 심장에서 나온 따뜻한 피에 데워져 심장으로 들어가고 심장에서 나온 따뜻한 피는 적당히 식은 후에 발로 흘러가게 된다. 북극여우나 개의 발바닥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펭귄 하면 떠오르는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에도 추위를 이기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 담겨 있다. 펭귄은 걸을 때 좌우 한쪽으로 몸이 쏠리면서 순간적으로 정지한다. 이와 같은 걸음걸이는 80퍼센트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효과가 있어,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보내는 데 도움을 준다.
아무리 황제펭귄이 겨울을 대비하는 남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홀로 남극의 혹한을 견디기는 무리다. 그래서 황제펭귄은 칼바람이 불어오면 빽빽이 모여서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펭귄 무리는 밀가루 반죽이 늘어나 섞이듯이 30~60초마다 물결처럼 요동치며 바깥쪽 펭귄이 조금씩 안쪽으로 들어간다. 무리의 안과 밖이 서서히 바뀌면서 무리 전체가 따뜻한 체온을 골고루 나누는 것이다. 이를 ‘허들링(Huddling)’이라고 하는데, 황제펭귄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를 이뤄 허들링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남극과 달리 북극은 대륙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바다와 그 바다에 떠 있는 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극의 정반대 편인 북극에도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북극여우를 들 수 있다. 추위를 이기며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은 열을 덜 내보내기 위해 표면적을 줄인다. 그래서 남극과 북극에 사는 많은 동물이 둥글고 지방이 많은 몸과 작은 말단 부위를 가진다. 북극여우도 몸집이 크고 귀가 작으며 다리와 꼬리가 뭉툭한 편이라 체온을 보존하는 데 유리하다.
차가운 북극해를 헤엄치는 하프물범은 펭귄과 마찬가지로 매끈한 표피 아래 두꺼운 지방층을 가지고 있어 추위에 강하다. 그렇지만 털이나 지방층이 없는 눈은 찬 바닷물에 들어갈 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때문에 각막을 덮는 투명한 막인 ‘순막’으로 눈을 보호한다.
북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북극곰은 하얀 외관과는 다르게 검은 피부를 가졌다. 검은색 피부는 빛을 흡수하므로 추운 환경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눈만큼 하얗게 보이는 북극곰의 털 색은 엄밀히 말하면 하얀색이 아니다. 북극곰의 털은 속이 빈 반투명 플라스틱 튜브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어 대부분의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동물원에 있는 북극곰의 털이 녹색으로 보이는 경우도 털의 빈 공간에 녹조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털의 빈 공간에 공기가 채워지면 단열효과를 높인다. 또한, 보온이 잘되는 촘촘한 짧은 털과 방수가 잘되는 긴 털, 이렇게 두 층으로 되어 있어 북극곰은 얼음장같이 추운 바다 수영에도 끄떡없다.
펭귄과 북극곰처럼 많은 동물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한 털을 가지고 있다. 남극이나 북극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도 추위를 이기는 털을 가진 동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로 일교차가 큰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양이나 알파카와 같은 동물들인데, 그들이 지닌 털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 탄력적이고 자세히 보면 곱슬곱슬한 편이다. 여러 개의 사슬형 분자가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케라틴의 특수한 구조 때문인데 이 구조가 털에 견고함을 더한다. 최대 3만 번을 구부려도 손상되거나 끊어지지 않고, 모양 변화 없이 길이의 3분의 1을 늘릴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사람들은 흔히 두꺼운 털이 따뜻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가늘수록 더 따뜻하다. 털이 가늘수록 털 사이에 공기층이 두껍기 때문이다. 우리가 겨울에 즐겨 입는 패딩의 충전재인 오리털이나 거위털도 마찬가지다. 조류의 털은 가지에 가지가 달린 섬세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사이사이에 공기를 많이 함유한다. 그래서 조류들이 추운 겨울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인조섬유가 개발되었지만 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천연 소재를 찾는다. 천연 소재가 인공적인 것보다 훨씬 따뜻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맨 가장자리. 춥고 매서운 바람만 불어오는 그곳에도 생명은 존재한다. 극지방의 동물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식으로 모진 추위를 견디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척박한 겨울을 견디는 동물들의 신체구조와 생존 방법은 어떻게 주어진 것일까?
- 참고
- 『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 (K. 메데페셀헤르만 외 共著)
- 이성규, ‘동물들이 ‘칼추위’ 견디는 비결’, 사이언스타임즈 (2012. 1. 11.)
- 이영완, ‘펭귄은 어떻게 추위를 견딜까’, 조선일보 (2012. 12. 10.)
- 최종욱, ‘펭귄이 남극에서 얼지 않는 이유는?’, KISTI의 과학향기 (2007. 8. 17.)
- 김웅서, ‘곰이 북극에서 살아남는 비법’, KISTI의 과학향기 (201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