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자식 사랑(Ⅱ) 각인(刻印)과 육추(育雛)

조회 12,037

“삐악삐악.”

한 번쯤 하굣길 학교 앞에서 팔던 노란 병아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결국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부푼 가슴으로 샛노란 병아리를 잘 키워보려 애쓰지만 병아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후 죽고 만다. 왜 그럴까?

병아리의 부화 온도는 암탉이 알을 품는 온도인 37~38도 정도이고 암탉의 품에서 부화한 병아리의 체온은 40도 이상이다. 알이 부화하고 난 이후에도 암탉은 계속해서 병아리를 품는다. 병아리들이 스스로 체온 조절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엄마가 없는 병아리들이 쉽게 죽어버린 이유다. 이처럼 새끼에게 어미의 역할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인, 어미를 통해 동족을 인지하다

닭이나 오리는 부화한 뒤 곧바로 어미의 뒤를 쫓는다. 조류의 특이한 본능 중 하나인 ‘각인(刻印) 현상’으로 이소성1 조류의 새끼가 알에서 나온 후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여 뒤를 따르는 선천적인 행동이다. 땅 위에 둥지를 트는 이소성 조류 특성상 천적으로부터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어미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피하기 위한 것이다. 각인을 통해 새끼와 어미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고 새끼는 잠재의식 속에 동족을 인지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1. 이소성: 새의 새끼가 빨리 자라, 적의 습격을 받기 쉬운 둥지에 오래 머물지 않는 성질.

회색 기러기 아빠로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는 회색 기러기를 통해 최초로 각인 현상을 발견했다. 로렌츠는 야생 회색 기러기알들이 부화하면 거위에게 주어 기르게 할 생각으로 갓 부화한 새끼들을 몇 시간 관찰한 뒤 거위에게 주었다. 그런데 부화한 새끼 중 하나가 연신 불안해하며 로렌츠를 따라오려고 버둥거렸다. 새끼 기러기는 부화 후 보낸 몇 시간 동안 로렌츠를 어미로 각인해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새끼 기러기에게 마르티나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계속 보살피게 되었다. 마르티나는 항상 로렌츠를 따라다녔고 다른 회색 기러기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르티나는 동족보다 로렌츠나 다른 사람을 더 좋아했다.

갓 부화한 조류에게 동족을 알아보는 본능적인 감각은 없다. 처음 대하는 물체를 어미로 받아들이기에 마르티나는 로렌츠를 어미로 인식했고, 동화 속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기러기인지 분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미 품에서 자연 부화한 새끼들은 진짜 어미를 인식하고 동족의 생활방식을 배우지만 인공 부화한 새끼들은 그렇지 못하다. 즉, 새끼들은 어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소, 어미를 따라 새 보금자리로

이소성 조류는 부화하자마자 털도 나 있고 걸어 다니면서 먹이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부화한 뒤 곧바로 둥지를 떠나 먹이가 풍부한 서식지로 이동하는데, 이를 ‘이소(離巢)’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끼들에게 수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한국에서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아파트 9층 보일러실에 알을 낳아 이소까지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 어미 원앙은 자신의 털을 뽑아 둥지를 만들었고 한 달을 꼬박 알을 품는 데 투자했다. 원앙은 원래 나무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새끼 원앙들은 이소를 위해 높은 둥지에서 자유 낙하 한다. 보일러실에서 부화한 새끼 원앙들은 풀숲이 아닌 아파트에 둥지를 튼 까닭에 9층 높이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사람들은 원앙들을 도우려 딱딱한 바닥에 천을 깔았고, 새끼들은 두려움을 뒤로하고 어미를 따라 뛰어내렸다.

이소하는 도중에 한 마리는 하수구에 빠져 사라지고, 뒤늦게 부화한 막내는 어미의 뒤를 따르지 못했다. 9개의 알 중 2개는 부화에 실패하고 부화한 일곱 마리 중 다섯 마리만 어미를 따라 이소에 성공한 것이다. 갓 태어나 이소하는 새끼들은 천적과 주변 상황의 위험 속에 놓여 있기에 한순간이라도 어미 원앙을 놓치면 영영 낙오되고 만다.

사람이 보고 듣기에 새들의 모습은 매우 비슷하고 음성은 더더욱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새끼 원앙은 소리만 듣고도 어미 원앙을 알아보는 것일까? 이를 알 수 있는 부모 새와 새끼 새 간의 상호인식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부모가 함께 육아를 분담하는 ‘아델리펭귄’은 보조 음성에 차이가 있어 상호인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화 2~3주 뒤, 사냥을 위해 어른 펭귄들이 떠나고 새끼 펭귄들만 집단 번식지에 남겨지면 새끼들은 어깨를 맞대고 무리를 짓는다. 그때 미리 녹음한 여러 펭귄 개체의 소리를 들려주자 새끼들의 약 90퍼센트가 부모 펭귄의 음성을 알아듣고 무리 밖으로 나왔다. 그 소리는 사람의 귀로는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음성분석기로 분석하면 개체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구별되었다. 부모와 새끼는 각인된 미세한 음성의 차이로도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부모 새의 극진한 보살핌, 육추

‘육추(育雛)’란 부모 새가 부화한 새끼를 돌보며 기르는 것을 말한다. 육추 기간에 일부의 조류는 사람처럼 새끼를 업기도 한다. 논병아리, 오리와 같은 물새류는 수영하는 동안 새끼를 등에 태우고 다닌다. 아프리카 물꿩과 연꽃 새는 날개 밑에 새끼를 품어 운반한다. 어미 새가 몸을 낮게 구부리고 위험 신호를 보내면 새끼들이 어미 새의 날개 밑으로 숨는데 이때, 어미 새는 날개를 몸에 단단히 붙여 새끼들이 매달리게 한다.

닭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낯선 장소나 천적의 등장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면 어미 닭은 경계 신호를 보내 새끼들을 불러 모은 뒤 날개를 들고 몸집을 부풀려 품속에 새끼들을 숨긴다.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유소성2 조류는 이소성 조류와 다르게 벌거숭이에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새끼들이 부화한다. 이 경우 부모 새는 둥지에 좀 더 오랜 시간 머물며 새끼를 기른다. 둥지에 머무는 동안 부모 새는 새끼를 먹이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흔히 뱁새로 불리는 오목눈이는 3~5분 간격으로 먹이를 나르고 새끼가 둥지에 있는 동안 배설물을 부리로 물어 밖에 버린다. 암수 합하여 하루 250번 가까이 먹이를 물어오는데 한 번에 두세 마리의 애벌레를 가져온다. 오목눈이가 새끼를 키우기 위해 날마다 잡아 오는 애벌레만도 어림잡아 500마리가 넘는 것이다.

2. 유소성: 새끼의 발육이 더뎌 오랫동안 둥지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모 새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성질.

일반적인 새의 둥지는 위쪽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부모 새는 온몸으로 새끼들을 덮어 비를 막아준다. 그뿐만 아니라 맹금류나 뱀 같은 천적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새끼들을 지켜내고, 높은 둥지에서 새끼들이 추락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새끼를 보살피는 동안 깃털을 다듬을 여력도, 자신의 먹이를 구할 시간도 없는 부모 새들은 점점 야위고 볼품없어진다.

애지중지 키우던 새끼들이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부모 새는 날갯짓을 보여주며 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먹이를 이용해 둥지 밖으로 새끼를 유인하여 날게 하기도 한다. 새끼들이 드넓은 창공을 날기 위해서는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다. 새끼들을 떠나보낸 뒤 부모 새는 무엇을 알기라도 하듯 텅 빈 둥지를 오랜 시간 맴돌기도 한다.

새끼들이 알에서 나와 하늘을 날기까지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부모 새의 극진한 보살핌이 있어서다. 암탉의 따뜻한 품속에 있어야 병아리가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숲에서, 강에서, 우리 주변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있다. 흠뻑 비를 맞으면서도 새끼를 보살피고, 첫 날갯짓하는 새끼를 독려하는 부모 새의 지저귐이 귓가에 맴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 마 23장 37절

참고
『조류학』(Olin Sewall Pettingill 著)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김성호 著)
『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김성호 著)
SBS TV 동물농장 469회 ‘원앙 새끼들의 위험한 첫 비행’ (2010. 7. 11.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