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세계 곳곳에서 땀 흘려 복음 밭을 경작한 시온 가족들의 수고가 풍요로운 결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언에 따라 모든 축복을 내려주시고 풍성한 알곡열매를 허락하신 엘로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모두들 종의 정신이 아닌, 아들의 정신을 가지고 새 언약을 전하는 일에 땀 흘린 고로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고 창세전에 예비된 알곡을 시온 곡간에 가득히 채워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이 예비된 우리들은 종이 아니라 하늘의 장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늘 장자의 명분의 가치와 그 특권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은 장자의 명분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자의 권리를 타고 났던 에서는 자신의 특권이 특권인 줄도 모르고 잠시 배가 고프다 해서 그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고, 아우였던 야곱은 언제나 그 축복을 사모하며 침노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창 25장 27~34절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보잘것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즐기는 오락에만 탐닉했습니다. 사냥을 좋아했던 그는 종종 사냥한 고기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를 대접했지만 이는 오락 끝에 얻어진 부산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항상 장막에 머물며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장자처럼 가정의 일을 살피고 어머니의 일을 정성껏 도우니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 어머니가 결국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직접 지혜를 동원해준 내용을 창세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려도 눈도 깜박하지 않다가 나중에 그 가치가 드러나게 될 때 비로소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창 27장 30~38절
에서는 뒤늦게 축복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조금이라도 남은 축복이 있다면 얻으려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기회가 있었을 때에는 소홀히 여기다가 축복이 다른 사람에게 다 넘어가고 난 후에야 땅을 치고 통곡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잃고 방성대곡하면서 조금이라도 남은 축복을 구했지만 부친으로서도 더 이상 빌어줄 축복이 없는 안타까운 입장이었습니다.
축복이 축복인 줄도 모르고 경홀히 여긴 결과, 그에게는 아무런 축복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축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가치를 깨닫고 그 축복을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축복의 가치를 깨달은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는 고통 속에서도 결코 축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창 32장 24~30절 참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롬 15장 4절).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그림자적인 역사를 통해 신약의 처음 익은 열매인 십사만 사천이 어떤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교훈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장 1~4절
십사만 사천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서, 하늘의 장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장자의 명분을 허락해주셨는데 이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어리석은 자녀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 장자의 명분에는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수많은 특권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특권도 있고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특권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멜기세덱의 반차에 동참하는 것, 영혼 구원하는 데 힘쓰는 것, 말씀 공부에 진력하는 것 모두가 다 장자의 특권을 행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국경일에 대통령이 연설하는 기념식장에는 미리 초대받은 특별한 사람들 외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 60억 인류 가운데서도 안식일, 유월절 등 하나님의 절기에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시온에 있는 우리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를 수 있는 것도 우리만의 특권이요, 새노래로 새 이름을 찬송하고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것도 우리 하늘 장자들만의 특권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율례와 규례와 법도는 하늘 장자들이 행할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일러주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신 것도 이러한 축복이 하늘 장자들로서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특권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인데도 이것을 행할 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장자 됨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냥터에 놀러 다니는 에서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장자의 특권을 행사할 줄 모르고 경홀히 여기다 보면 다른 사람이 더 노력해서 그 자리를 침노할 수도 있습니다. 경홀히 여기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한 다음에야 뒤늦게 그때 자신에게 주어졌던 이 모든 것이 특권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들에게 주신 특권 중 가장 큰 것이 영혼 구원의 특권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초림 당시에도 마지막으로 승천하실 때 하늘 장자들에게 전도의 특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장 18~20절
세계 모든 민족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어주는 예언의 시대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따라 성도들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늘 장자들이 받은 바 특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특권인데 내가 경홀히 여기고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새 이름을 전하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은 60억 인구 가운데 우리 장자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가장 큰 특권인데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행사하지 않는다면 이는 장자의 명분과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도는 하늘 자녀들만의 특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면서, 받은 바 장자의 명분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고 특권을 은혜롭게 행사하는, 야곱 같은 자녀들이 다 되도록 합시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살전 2장 1~4절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옳게 여기시는 장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예루살렘 영광을 온 세계에 전파하라, 하늘 자녀들에게만 허락된 장자의 특권에 대해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자녀들을 당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희생하셔서 건져내셨으니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고 사랑하시겠습니까? 그 소중한 자녀들을 더운 뙤약볕 아래로, 물이 없는 간조한 땅으로 이끌어가기만 하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국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을 유념하고(신 8장 15~16절 참고),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을 귀히 여겨 행하는 시온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신 자들에게 맡기신 천국 축복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다니엘서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장 1~3절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의 영광은 이토록 큽니다.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천사들도 할 수 없는, 오직 우리에게 허락된 특권입니다(벧전 1장 12절 참고). 이 귀하고 소중한 특권을 절대 잃어버리지 맙시다.
현대인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운동에 열심인데 영적으로 운동에 해당하는, 영혼의 활동력이 전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강건케 하시고 큰 축복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복음 전할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전도의 생애를 살았으며 성도들에게 전도인의 사명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장 1~8절
바울은 허무하고 헛된 것에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후회하지 않을 결과를 가져올 것이요,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허락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면류관은 왕들이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씌워 하늘의 왕 같은 제사장을 삼아주겠다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전도는 장자의 특권 가운데서도 으뜸되는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하나의 무거운 멍에처럼, 부과되는 의무처럼 여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세세토록 영광을 누릴 축복은 장자로서의 특권을 즐거이 행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서 우리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성령과 신부로서 나타나셔서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오라”고 전도하시는 장면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전도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으면 아버지 어머니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고 본보이셨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오라” 하신 성령과 신부의 음성을 세계 모든 민족에게 가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리를 받고 말씀을 상고한 영혼들이 복받쳐 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로 감사를 표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속속 답지하고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이제야 받은 사람은 고대하던 축복을 받아 감동을 주체할 수 없는데 오랫동안 장자의 명분을 갖고 있던 사람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는 결단코 안 되겠습니다. 옆 사람의 신앙을 곁눈질할 필요도 없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늘 한집에서 지내던 형제였지만 야곱은 에서의 행위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허락되어 있었으나 이방인에게도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본래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었던 축복이었으나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니 하나님께서 침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야곱과 같이 해서 얻은 장자의 명분인데 이것을 우리가 또다시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장 17~20절
장자의 특권을 행사하러 해외에 간 시온의 가족들이 선교를 통해 얻은 열매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해 찬송을 드릴 때 옛적 베드로가 생각나고 사도들이 생각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오늘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를 불러 허락하신 장자의 특권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행사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내선교든 해외선교든 열심히 동참하고, 여건이 어려운 분은 기도로 동참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뜻이 하루속히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다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를 불러주셔서 그 인도를 따라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이르지 않았습니까? 영원한 천국까지 끝까지 따라갑시다. 처음 익은 열매들로서 먼저 불러주신 우리이니 세계 만민들에게 좋은 본을 끼쳐서 만민을 구원하고 전 세계를 구원함으로써, 장자의 특권을 소중히 여기고 은혜롭게 행사하는 시온 가족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