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 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이 질문에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답한다. 영화 속 지구 깊숙한 곳에 펼쳐진 세상은 거대한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계곡과 굶주린 피라냐가 우글거리는 바다, 강한 자기장으로 암석들이 허공에 부유하는 신비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지구 중심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발아래 세상, 지구 내부 구조
인류가 도달한 최고 높이는 지구에서 달까지 약 38만 킬로미터다. 인류가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약 20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여행하고 있다. 인류가 광대한 우주를 향해 손을 뻗치고 있는 이때, 지표면을 뚫고 지구 중심을 향해 파고들어 간 깊이가 기껏해야 13킬로미터에 불과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지구의 반지름이 약6,400킬로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지구의 껍질도 채 벗겨보지 못한 셈이다.
지구 내부는 압력과 온도가 매우 높아서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깊이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X-선이나 초음파로 사람의 몸속을 살피는 것처럼 땅을 이동하는 지진파를 분석하여 지구 내부의 구조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암석을 통해 퍼져 나가는 진동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구 내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지진파에는 P파와 S파가 있는데, P파는 거의 모든 상태의 물질을 통과할 수 있는 것에 반해, S파는 고체 상태의 물질만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지진파가 전달될 때 물질의 성질이 다른 층이 나타나면 전파 속도가 경계면에서 급격하게 달라진다. 이런 지진파의 특성을 이용해 지구 내부가 몇 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09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지질학자 모호로비치치가 지표 아래 수십 킬로미터 깊이에서 지진파의 속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지점을 발견했는데, 이는 지구 내부가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했다. 오늘날 지각과 맨틀의 이 경계면을 그의 이름을 따서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이라 부른다. 1914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맨틀과 핵의 경계를 알아냈으며, 1936년에는 덴마크의 레만이 핵의 내부에 또 하나의 경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구 속에는 진귀한 동물이 사는 신비의 공간은 없었지만 노른자, 흰자 그리고 껍질로 이뤄진 달걀처럼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심인 노른자 자리에는 반지름 약 3,500 킬로미터의 무거운 핵이 고체인 내핵과 액체인 외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핵의 온도는 섭씨 5,000도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 주위를 둘러싼 흰자 자리에는 약 2,900킬로미터 두께의 맨틀이 채우고 있다. 껍데기에 해당하는 지표면 근처에는 비교적 가벼운 지각이 떠 있다. 지각은 두께가 평균 약 35킬로미터인 대륙지각과 약 5킬로미터인 해양지각으로 나뉜다.
살아 움직이는 지구, 판 구조론
전혀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땅덩어리는 사실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지구의 움직임은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을 만한 지진과 화산활동까지 발생시킨다. 그러나 지구가 움직일 수 없는 고체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지각변동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지구의 표면이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10여 개의 땅덩이들이 퍼즐 조각처럼 붙어 있으며, 이 퍼즐 조각들이 상대적으로 운동한다는 ‘판 구조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비로소 지구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지구의 표면을 이루는 조각들을 ‘판’이라고 하는데, 지각과 맨틀의 윗부분을 포함하는 약 100킬로미터 두께의 단단한 암석권을 말한다. 이 거대한 판을 출렁이게 하는 힘의 원동력은 지표면 깊숙한 곳에서 움직이는 맨틀이다. 판 아래에는 지구 내부의 열로 맨틀이 녹아, 찐득한 젤리와 같은 상태인 연약권이 있다. 이 연약권이 대류를 하면서 위에 떠 있는 판을 움직이는 것이다.
판이 움직이는 속도는 1년에 겨우 수 센티미터로, 사람의 손톱이 자라는 속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백만 년의 시간 규모에서는 거대한 판이 마치 벨트 컨베이어가 움직이듯 이동한다. 나무가 한 해를 넘길 때마다 나이테를 더해 가듯이 지구의 속살인 맨틀이 바깥으로 나와 새로운 지각을 생성하고, 밀려 내려간 오래된 지각은 녹아 맨틀로 재활용되며 암석을 순환시킨다. 판과 판이 서로 충돌하는 곳에서는 산맥이 형성되고, 판과 판이 멀어지는 곳에서는 계곡이나 바다가 만들어지며, 판의 경계 부분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른 지구형 행성이나 달 또한 생성 이후 변화를 겪었지만, 지구는 지금까지도 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살아있는 행성이라 할 만하다.
지구를 유지시키는 내부의 힘
지구 기후 시스템은 대기권, 수권, 생물권, 지권 사이의 물질 순환에 의해 조절된다. 판 구조 운동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순환시켜 지구 온도 조절 장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화산 분출로 탄소의 주된 저장고인 암석에서 탄소를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기권에 방출하기도 하고, 반대로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물에 용해되거나 해저의 퇴적암이 되어 맨틀로 침강하면서 다시 지구 내부로 돌아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호막과 방패가 되는 지구 자기장도 지구 내부에서 만들어진다고 추정하고 있다. 철과 니켈 등으로 이루어진 액체 상태의 외핵에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면 발전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전류를 발생시킨다.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 자기장이 만들어지듯 외핵에서 발생한 전류가 지구의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광물과 에너지 자원도 지구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산업 활동 전반에 지하자원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비행기, 도자기, 화장품, 의약품 등 생활용품 대부분에 광물이 들어 있을 정도로 광물자원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지각 내에 인류 생활에 유용한 광물이 집중된 곳을 ‘광상(鑛床)’이라 하는데, 이는 판이 충돌하거나 분리되는 경계에서 일어나는 판 구조 운동의 결과물이다. 판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화산활동, 변성작용, 마그마 활동으로 지각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새로운 화합물을 형성하거나 변질되기도 하고, 특정 성분이 농축되며 각종 광물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판의 경계는 광물자원의 곡창지대라 불릴 정도로 유용한 광물이 모여 있는 광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도 지각에 파묻힌 동식물의 유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높은 압력과 열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인류에게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준 광물과 에너지 자원의 풍요로움은 지구 내부에서 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 잘 느끼지 못하는 지구 내부의 힘이 인류 문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곳이며, 태양계에서 판 구조 운동이 일어나는 유일한 행성이다. 지구는 단순한 돌덩어리의 집합체가 아닌, 생명체와 같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지구의 표면은 단단하고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를 여닫고 산을 세우며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대류 현상은 마치 심장 박동과도 같아서, 내부의 에너지를 밖으로 전달한다. 이 에너지가 지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출발점이다. 지구가 생명의 별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밀은 지구 내부에 있었다. 지금까지 한순간도 쉼 없는 지구의 움직임이 완벽한 생태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던 지구 내부의 세계는 이처럼 신비한 생명의 힘으로 가득 차 있다.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취하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사람이 흑암을 파하고 끝까지 궁구하여 음예와 유암 중의 광석을 구하되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구멍을 깊이 뚫고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달려 내리니 멀리 사람과 격절되고 흔들흔들하느니라 지면은 식물을 내나 지하는 불로 뒤집는 것 같고”욥 28장 1~5절
- 참고자료
- 『호모사이언스1』 (EBS 과학혁명의 이정표 제작팀 著)
- 『지구를 부탁해』 (박동곤 著)
- 『우주의 본질 제7판』 (제프리 베넷 외 3명 共著)
- 『지구의 이해』 (존 그로트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