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 계명을 분부하셨습니다. 유월절, 안식일, 새 언약의 절기 등의 계명뿐 아니라 사랑에 관한 말씀도 성경에 많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형제자매 간에 용납하고 용서하고 배려하며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 역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온의 가족들은 천국에서 많은 상급 얻기를 소망하며 하나님 뜻을 실천하고 열심히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마다 처한 여건이 다르고, 자라난 환경 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로 간혹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겠습니다만, 상대의 내면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서로 용 납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도 온전히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기차 안에서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고함을 지르며 여기저기 한참을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아들을 말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한 승객이 아이 아빠에게, 집에서 공중도덕도 가르치지 않느냐며 아들을 좀 제지하라고 따졌습니다. 아빠는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둘 뿐이었습니다. 승객은 더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고, 급기야 다른 승객들까지 가세해 한소리씩 했습니다. 뒤늦게 아이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애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이제 아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몰라 저는 이렇게 앉아 있고, 엄마를 잃은 아이는 마음에 안정을 찾지 못해서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항의하던 승객들은 조용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는 계속 소란을 피웠지만 더 이상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상대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하면 상대의 행동이 불편하고 그로 인해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다툼이 일고 불화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유와 배경을 알고 나면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도 ‘남편은 왜 저럴까’, ‘아내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답답히 여기고 불평할 때가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때 상대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휴일인 경우, 그간 과중한 업무에 온갖 스트레스를 받은 남편 입장에서는 푹 쉬고 싶을 겁니다. 반면 평소에 종일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던 아내라면 모처럼 남편과 함께 자녀들을 데리고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도 잘했다, 못했다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아내는 남편의 입장을 헤아리고, 남편은 아내의 입장을 헤아리면 이해가 되고 조금씩 양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가정에는 불화가 생길 수 없습니다.
서로 이해를 하면 친구가 되지만, 오해를 하면 원수가 되어버립니다.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자녀는 부모를, 부모는 자녀를 조금씩 더 헤아리고 이해하려 노력해 보십시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형제끼리 서로서로 입장을 살피고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교회는 나와 다른 환경과 여건에 놓인 형제자매가 모인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모두가 다 나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나와 달라서, 내 바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언짢아하기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면 ‘아, 저럴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나와 다를지라도 영원한 천국에 가기 위해 한마음으로 애쓰며 노력하는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같이 가는 곳이 천국 아니겠습니까.
현대사회는 여권(女權)이 향상되어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평등해졌습니다. 가부장적이던 가족의 모습도 바뀌어 요즘은 부부가 다투더라도 대다수 남편이 아내에게 지는 쪽을 택한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읽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내가 잘못한 걸 알면서 왜 자꾸 나한테 져줍니까?” 남편이 답했습니다. “당신은 내 사람이오. 내가 당신과 싸워 이겨서 뭐 하겠소. 내가 당신과 싸워 이기면 당신을 잃는 것이고, 당신을 잃게 된다면 내 삶은 진 것과 마찬가지요.”
남편이 아내보다 힘이 없어서 아내에게 질까요? 아닙니다. 아내와 싸워서 이긴다면 사랑하는 아내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러면 아내의 마음을 잃게 되고, 아내를 잃으면 자신이 진 것이나 다름없기에 처음부터 지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뒤에는 다시 글 한 토막이 덧붙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사장님과 싸워서 이기면 직장을 잃게 되고, 고객과 싸워서 이기면 돈 벌 기회를 잃게 되고, 아내와 싸워서 이기면 사람을 잃고 자식을 외롭게 한다.”
싸워서 이기면 직장을 잃고 기회를 잃고 가정을 잃습니다. 이 싸움은 이겨도 진 싸움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내다보는 남편들은 양보하고 지는 쪽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렇게 지는 삶은 비겁하거나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이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나와 형제자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내가 상대를 이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도를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희생으로 어렵게 구원하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한순간에 잃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서로 지는 삶이 좋습니다. 믿음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는 삶이 현명한 삶입니다. 악(惡)에는 당연히 싸워 이겨야겠지만, 함께 천국 길을 걸어가는 하늘 가족 간에는 항상 지는 쪽을 택한다면, 전 세계 80억 구원운동은 속히 완성될 것입니다.
또한 양보를 받았을 경우에도, 내게 양보하고 져주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고마움을 표현해 보십시오. 남편이나 아내가 나에게 져줄 때, 격려와 위로를 건네면 더욱 은혜롭고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를 배려하고 양보해 주는 형제자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면, 전 세계 하늘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되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사랑할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장 34~35절
성경에는 다른 어떤 내용보다 사랑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은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만 우리가 온전히 실천한다면 천국 복음은 순식간에 완성되리라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장 16~21절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계명을 받았습니다. 계명이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서로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관용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영적으로는 살인한 것과 같다고까지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장 13~18절
주변을 돌아보면 자기 속사정을 다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각자가 힘들어도 참고 또 참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겉으로 드러난 상대의 모습이 부족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화를 내고 잘못을 지적하면 상대는 위축이 되고, 결과적으로 잃는 것이 훨씬 많아집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져주고, 내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더라도 이해하면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사람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지만, 그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신 28장 1~19절). 지난날의 내 모습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데 미숙했다면 앞으로는 교회 일이든, 가정일이든, 직장 일이든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행해보십시오. 그리해서 교회가 복을 받고, 각 가정이 복을 받고, 성도 개개인이 다 복을 받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악한 것을 버리고, 사랑으로 거듭난 새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과거에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서 행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잘못된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장 21~32절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모든 악의는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마귀가 틈을 타서 우리 마음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요일 4장 7~8절). 그래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하고, 언제나 축복받고, 언제나 행복과 평화를 얻고, 언제나 천국 길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장 1절
새 언약 복음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의 고통, 온갖 수치와 모욕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서로가 그 사랑을 품고 복음에 임한다면,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은 복음의 길 가기를 원하시는 어머니의 바람이 이뤄질 것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은 아버지 어머니의 계명이요 부탁입니다. 꼭 그리 행해야겠습니다.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도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올바르게 전하고 가르쳐서 축복과 행복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복음의 역사를 속히 완성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