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초점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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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할 때면 저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시온 가족들도 신년 계획을 세우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혹 부족했던 점이 있다면 새해에는 보완하여 오히려 그 부분만큼은 으뜸이 되어보겠다는 영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를 삶의 목표로 정하고 살아갑니다. 별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지내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릴 때 화나고 속상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안 그럴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그 때문입니다.

모든 생활의 초점을 감사에 맞추어보십시오. 귀에 거슬릴 만한 말, 혹은 예기치 못한상황도 감사에 초점이 맞춰지면 은혜롭게 와닿을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에서나 직장 및 학교생활에서나 복음생활에서나, 어디서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격려와 응원으로 뒷받침해 준 가족, 친지, 이웃, 동료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봅시다. 무엇보다 우리를 천국 길로 이끌어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항상 감사드리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제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 중에 무엇이 가장 감사한지 묻는다면 저는 이 땅에 오신 자체가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아니 오셨다면 우리는 삶의 끝자락에 모두 지옥에 갈 운명이라 감사할 일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지구는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과 같은, 아주 미미한 천체입니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보잘것없는 하늘 죄인들을 귀히 여기셔서 이 땅까지 와주신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덕분에, 사망으로 달려가던 인생들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와주셨다는 자체만 해도 형언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온갖 조롱과 핍박을 당하시고 당신을 희생하셔서 자녀들의 죄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대로 털 깎는 자 앞의 어린양처럼 잠잠히 고난과 죽으심을 감당하신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자녀인 우리는 늘 감사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떠서 숨 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간밤에 안전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오늘도 복음 사역의 한 부분을 맡겨주셨음에 감사하다 보면 하루가 감사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무엇을 이뤄달라는 내용의 기도는 많이 하지만 정작 이뤄주신 일에 대한 감사 기도는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천사들이 사람들의 기도를 하늘에 올릴 때, 소원 기도를 담는 바구니는 금방금방 차는데 감사 기도를 담는 바구니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올리시되 소원과 더불어 감사의 기도도 많이 올릴 줄 아는 하늘 가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깨달음에서 나오는 감사

감사가 부족한 세태는 2천 년 전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그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 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 17장 11~19절

과거 문둥병이라 불리던 나병은 어떤 치료나 약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습니다. 그런 불치병을 앓고 있던 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은사로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감사하러 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 명에게 다 은혜를 베풀었는데 감사하러 온 사람은 한 사람뿐이구나.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신앙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수많은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응답해 주십니다. 작은 정성에도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그 은혜를 마음에 새겨야 하는데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아홉 명의 병자가 의사를 통해 10년, 20년간 복잡한 치료 과정을 거쳐 병이 나았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절로 나은 것처럼 여기니 감사의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돌아와 감사한 한 명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령하신 능력으로 나았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감사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당연히 잘 지나갔고, 한 달, 일 년을 당연히 무탈하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가 어렵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괜찮은 상태를 당연히 여기지 말고, 늘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끌어주시고 날마다 우리 곁에서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막아주시며 우리가 천국 길로 행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 눈을 활짝 열고, 우리를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수고하시는 아버지 어머니 모습을 보아야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에 초점을 맞춘 생활

교통사고 조사 분석 결과 곡선 도로보다 직선 도로에서 사고율이 더 높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구불구불한 길에서 사고가 많을 듯하지만 운전자들이 그런 곳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레 운전하는 반면, 평지와 곧은 도로에서는 위험을 간과하고 쉽게 과속하는 탓에 사고가 더 많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휘어지고 높낮이가 있는 길이 오히려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되듯,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탄탄대로를 걷고 맑은 날만 지속된다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중충한 날씨가 싫다고 사시사철 맑기만 바란다면 사막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수목이 자라고 생명체가 자라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있어서도 때로는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비 오는 날도 허락하셨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장 15~18절

범사(凡事)란 모든 일을 일컫습니다. 내가 소원하던 일이 발생해도 감사하고, 고난이 와도 감사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이 땅은 범죄한 하늘 죄인들이 모여 사는 영적 도피성이기에 모든 날이 평탄할 수는 없습니다. 약간의 고난이 따르는 도피성 생활이지만 모든 일에 감사하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 어머니와 하늘 본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천사들로 대신하게 아니하시고 친히 오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아끼시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고난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키울 훈련이자 기회로, 이 훈련을 잘 마친 사람은 더욱 견고하고 단단한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늘 생활의 초점을 감사에 놓아보십시오. 그 속에 하나님의 가르침이 함께할 것입니다. 감사에 초점을 맞춘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원망이나 의심, 망설임의 눈은 장애물을 보지만 감사를 기반에 둔 믿음의 눈은 길을 봅니다. 믿음의 시각을 가지면 하나님의 올바른 섭리가 무엇인지 보이고 장애물은 곧 길이 됩니다.

일평생 하나님께 감사드린 다윗

믿음의 선진 중에서 감사를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 시편에는 그가 남긴 감사와 찬송의 시들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감사하는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하셨습니다(행 13장 22절).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다윗의 삶이 늘 감사할 만한 여건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왕에게 쫓기고 적들과 싸우며 생명의 위협 속에 많은 날들을 지냈고, 말년에도 왕으로서 평안을 누리기보다 아들이 일으킨 반역으로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 다윗이 남긴 시들을 살펴보면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공경하고 매사에 존귀와 영광을 돌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편 1~6절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며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삼하 22장 47~51절

다윗의 기도와 간구 속에는 항상 감사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일생이 감사로 가득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수고를 하시는지 늘 생각하고 감사할 점을 찾았습니다. ‘이 일도 나를 위해서 하셨구나.’ ‘저 일도 나를 위해서 하셨구나.’ 이토록 많은 일을 베풀어주시는데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살고 하나님의 궤는 그저 휘장 가운데 있으니 마음이 쓰여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피를 흘렸으니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 하시며 그를 더욱 축복해 주셨습니다(대상 17, 22장).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 29장 10~14절

다윗은 장차 솔로몬이 성전 건축할 때 사용할 예물을 백성들과 함께 봉헌하면서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올렸습니다.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어찌 대단한 일이겠냐며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감사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진리를 영접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감사를 올려보십시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한 축복과 믿음, 행복을 허락하십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

감사는 어떤 환경이나 처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감사를 드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겪는 괴로움보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욱 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이 땅의 영화와 즐거움은 잠시 있다 사라지지만 우리가 하늘에서 누릴 영광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새 언약 진리 안에 있다는 것, 아버지 어머니를 알고 시온에 거한다는 것, 구원받고 하늘의 왕 같은 제사장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은 진정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주시니(계 22장 12절), 장차 받을 하늘 상급을 바라보며 하나님 안에서 항상 감사하는 자녀들이 됩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편 23절

공동번역 성경은 이 대목을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자, 나를 높이 받드는 자이니,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감사의 반대는 원망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위험한 이유는 불순종의 바탕에 원망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원망이 자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불만이 생겨서 결국 불순종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 즉 하늘 가나안인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 3장 18절

광야 40년 생활에서도 원망하던 자들은 모두 멸망의 길로 들어갔습니다(고전 10장 10절). 원망, 불평불만은 우리의 삶을 천국이 아닌 곁길로 가게 합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해서 원망보다 감사와 기쁨, 창화하는 소리가 넘쳐나는 시온이 되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크나큰 축복을 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복음 안에서 크고 작은 역할에 충실히 임해주신 시온 가족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감사한 분이 참 많습니다.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맙시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틀림없이 복을 받습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인 감사를 잘 실천해서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영원히 감사를 올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