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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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나부끼는 머리카락, 팽그르르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바람의 움직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형체 없는 바람의 위력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기도 했다. 16세기, 열세에 있던 영국은 무적함대라 불리는 스페인을 상대로 유례없는 대승을 거뒀다. 때마침 불어온 강한 바람과 해류가 영국군이 스페인 군함을 격추하는 데 유리하게 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만큼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바람은 대체 무엇일까?

공기의 움직임, 바람

바람은 간단히 말해서 대기의 온도와 기압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공기의 흐름이다. 따뜻해진 공기는 밀도가 작아지며 가벼워져서,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 들어있는 풍선이 두둥실 떠오르듯 상승한다. 이때 생긴 빈자리를 채우려고 주위의 찬 공기가 따뜻한 공기가 있던 곳으로 움직이는데, 이것을 바람이라고 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공기도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한다. 고기압은 기압이 주위보다 높은 곳을, 저기압은 기압이 주위보다 낮은 곳을 말한다. 고기압인 곳에서는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바람이 불어 나가고, 저기압인 곳에서는 주위에서 중심 쪽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지금도 대기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과 어디론가 흘러가는 구름, 하루에도 다양하게 바뀌는 날씨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구 규모에서 관찰해보면 대기의 움직임에 일정한 흐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을 ‘대기 대순환’이라 한다.

대기 대순환은 태양 에너지로부터 시작된다. 태양 빛은 둥근 지구의 표면 때문에 위도에 따라 지표에 도달하는 양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적도에 가까울수록 지표에 더 많은 태양 에너지가 도달한다. 따라서 적도 부근에서는 따뜻해진 공기가 올라가며 빈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으로 주위의 찬 공기가 이동한다. 상승한 공기 덩어리는 위로 올라가면서 냉각되기 때문에 점점 무거워져 다시 아래로 내려오게 되고, 내려온 공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다시 공기가 부족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공기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순환한다. 위도에 따른 에너지의 불균형이 결국 대규모의 대류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기 대순환

만일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면 바람은 고기압인 극지방에서 저기압인 적도 방향으로만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자전하는 지구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휘어진다. 북반구에서는 북쪽을 향해 부는 바람이 진행 방향에 대해 오른쪽으로 힘을 받은 것처럼 사선으로 분다. 지구에는 지구의 자전, 지표면의 바다와 육지 분포 등에 영향을 받아 적도와 극 사이에 3개의 순환계가 나타난다. 이로 인해 지표면에서 움직이는 바람이 무역풍, 편서풍, 극동풍이다.

무역풍은 적도와 위도 30도 사이의 저위도에서 부는 바람으로, 북반구에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분다. 대항해 시대, 스페인의 범선 등이 이 바람을 이용해 교역했던 것에서 이름 붙여진 무역풍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배를 타고 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 중위도 부근에서 일어나는 편서풍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으로, 편서풍의 영향권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바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경향이 있다.

에너지 분배로 생명을 지키는 대기 대순환

물론 지구가 에너지를 흡수하기만 한다면 지구 전체의 기온은 계속 상승하겠지만, 실제로는 지구도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가 방출하는 복사에너지의 양은 위도와 관계없이 거의 일정하다. 따라서 저위도 지역에서는 흡수하는 에너지의 양보다 방출하는 에너지의 양이 적어 에너지 과잉 상태가 되고, 고위도 지역에서는 그 반대로 흡수한 에너지의 양보다 방출하는 에너지의 양이 많아 에너지가 부족하게 된다.

이때 지역에 따라 태양 빛을 받는 정도의 차이가 생각보다 커서 만약 열이 지구 전체를 돌지 않는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열이 많은 곳은 점점 더 뜨거워져 녹아버릴 것이고, 열이 적은 곳은 계속 추워져 모두 얼어붙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지구 위를 어떻게 순환하는 것일까? 대기의 대류 운동의 결과로 지표에 나타나는 공기의 이동, 바람을 통해 열은 지구 곳곳으로 고르게 퍼지게 된다. 만약 공기가 이동하면서 열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면 지역에 따라 매우 심각한 에너지의 불균형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무역풍, 편서풍, 극동풍은 지속해서 부는 바람으로, 해양과 마찰을 일으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표층 해류를 만든다. 이처럼 대기와 해수가 순환하면서 저위도의 남는 열에너지를 에너지가 부족한 고위도로 운반하므로 지구가 에너지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기와 바닷물은 열심히 움직이며 지구 전체에 열을 고르게 전해주고 있다. 지구 대기의 순환은 해양의 순환과 더불어 지구의 에너지 분배에 이바지한다.

태풍이 필요한 지구

지구 대기층에서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열 순환 과정 외에도 한꺼번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이동시킬 수 있는 독특한 보조 장치가 있다. 바로 태풍이다. 태풍은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공급받으면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며 고위도로 이동하는 열대 저기압이다. 태풍은 발생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우리나라가 속한 서태평양 일대에서는 태풍,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에서는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한다.

태풍은 수증기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많은 열을 포함하게 된다. 이 상태로 고위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저위도의 남는 열을 단숨에 매우 효과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층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동하는 공기를 따라 열의 순환도 함께 이루어진다.

태풍은 거의 해마다 강한 폭풍우로 큰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열대의 더운 공기를 빨아들여 고위도 지역에 흩뿌려 놓으면서 지구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시키고 열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상 현상이다. 또한 물 부족 문제를 없애는 수자원 공급원의 임무를 톡톡히 하는 데다,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킴으로써 바다의 적조 현상을 해소시키는 중요한 구실도 담당하고 있다.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에너지가 지구 내에서 순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 표면은 낮과 밤이나 위도에 따라서 엄청난 온도 차가 발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구는 대기와 대양의 대류를 통해 열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대기의 대순환은 장기간에 걸쳐 지구의 에너지가 평형 상태를 이루게 한다. 포근한 엄마 품 같은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참고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1』 (홍준의 외 3명 共著)
『재미있는 날씨와 기후 변화 이야기』 (김병춘, 박일환 共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