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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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십자가 희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결정체라는 사실은 알면서도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크기가 어떠한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혹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영의 아버지, 영의 어머니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셨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의 크기나 정도가 작은 범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 땅까지 오셔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그토록 처절한 고난을 감내하면서까지 희생의 삶을 사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을 세상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는 시온의 형제자매님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성경에 알려주신 가르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복 주시는 하나님

사람이 눈앞의 현실만 보고 세상의 권력이나 물질 같은 육신의 것들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과는 다른 응답을 내려주실 때가 있습니다. 간혹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아플까’, ‘왜 내 형편은 가난할까’, ‘왜 나는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주실까’ 하고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응답을 안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언제나 당신 삶의 전부요 관심의 전부로 여기십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어가시며,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요 5장 17절). 때로는 우리를 낮추시고 어려운 상황에 두기도 하시지만 모두가 우리 영혼의 유익을 위함이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리하셨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 영화를 뒤로하고 이 땅에 오셔서, 깨닫지 못한 자녀들이 곁길로 갈 때마다 안타까워하시며 기도해 주시고 천국 길로 이끌어주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될 줄 믿습니다. 성경은 사랑이 제일이며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요소가 사랑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장 1~13절

사랑이 배제된 믿음, 사랑이 없는 소망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천국까지 가져갈 것이 있다면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예언과 방언,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이 있다 해도 이 모든 것은 다 소멸되는 순간이 오지만 사랑만큼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라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장 7~21절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는 이 구절을 영어 NIV 성경은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love comes from God)”고 표현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께로서 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늘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하신다는 산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내버려 두었더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께서 어떤 희생을 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랑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하지 말고, 그 위대하신 행보를 그대로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온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형제자매를 대하고 가족과 직장 동료, 친구, 지인 들을 대해서, 하나님 안상홍님과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은 하늘 자녀들은 언제나 사랑을 실천하고 베푸는 입장에 서길 바랍니다.

내 생각과 조금 다른 불편한 행동을 하는 식구들이 주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뿐인데 그 때문에 불편해하고 서로 미워하는 감정까지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것은 인정하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살리시기 위해서 피 흘려주신 자녀, 한 몸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시온의 가족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연합하고 화합하며 마지막 복음 완성을 위해서 힘쓰고 애써주실 것을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죽을 영혼을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랑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전부 하나님께로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께 배운 사랑의 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베풀어야 함을 일깨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장 25~37절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라면 규례나 율례나 법도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죽어가는 이를 살리려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이나 불편함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이던 사마리아인은 여행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사람을 살리는 데 노력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셋 중에 바로 자비를 베푼 사람, 즉 사랑을 실행하고 실천한 이 사람이 진실한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을 쏟았던 사마리아인과 같은 하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율례, 규례, 법도 다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사랑을 빼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성경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죄짓고 이 땅에 내려와서 사망을 피할 길 없었던 자녀들이었건만 하나님께서 대속하신 희생의 보혈로 오늘의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는 영광의 자리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가 좋아서 성경을 잘 깨달아 새 언약 진리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자비의 잔치에 초대받아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십자가의 희생이나 6천 년 기나긴 세월 속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도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

옷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옷 한 벌을 나눠주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콩 한 쪽도 나눈다’는 말처럼 내가 가진 적은 음식이나마 나눠주는 것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사랑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죽을 영혼을 생명의 진리로 영원히 살려주는 것, 지옥으로 가는 인생을 돌이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크고 근원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전도로써 우리에게 친히 본보여 주셨습니다. ‘전도’라고 하면 뭔가 많은 지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전도는 하늘에서 죄짓고 내려온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함을 보이는 하나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위대하신 속성인 사랑을 세상 만민에게 나타내고 알리는 과정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사랑이라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한 절 한 절 안에는 전부 하나님의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담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구원의 첫걸음인 침례만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 갈 영혼을 천국으로 바르게 인도해서 살려내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천국 소식을 전할 때 진정한 전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은 오순절 이른 비 성령을 받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바라보면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어느 한 장 전도와 관련 없는 내용이 없습니다. 하루에 3천 명이 침례를 받았더라, 5천 명이 받았더라, 날마다 모여서 성전에 있든지 길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하기를 쉬지 아니했더라⋯.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도들의 행적은 한결같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과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과 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에 감동받은 이들이 왜 이렇게 전도를 했을까요? 사랑이신 하나님과 일치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 19장 10절).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삶의 목표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인생들에게 ‘나온 바 본향’, 다시 돌아갈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한 영혼도 지옥이라는 고통받는 곳에 가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일을, 장자의 특권을 가진 하늘 자녀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 마 24장 14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장 18~20절

천국 복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하늘 죄인들을 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잘 새겨서 순종해야 하겠고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분부를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영혼들이 천국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아 죄 사함을 얻고 천국에 돌아갈 영광의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길을 전부 열어주라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탁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때로 핍박하고 방해도 하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올 사람들도 있으니 우리는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전할 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복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하늘 자녀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은혜가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사랑은 힘들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안식을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도 사랑이 오가는데, 사랑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모시고 그 가르침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은 더 큰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전 4장 12~13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자녀인 우리도 사랑을 생활 속에서 가족과 이웃에게 실천해 봅시다. 마음은 있지만 잘 드러내지 못해서, 어찌 보면 가장 사랑을 표현하기 어려운 관계가 가족인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언제나 사랑 안에 거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서로 사랑을 베푸는 시온 가족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설령 화낼 만한 일이 있어도 ‘노하기를 더디 하라’ 하신 가르침대로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해 봅시다(잠 16장 32절, 엡 4장 26~32절). 교회에서도 믿음의 형제자매 간에 잘못된 부분은 고쳐주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면서, 서로 연합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사랑으로 빛나는 하늘 자녀들이 되어 온 세계를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세계에서 사랑으로 연합하는 멋진 세계로 변화시켜 봅시다.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행할 때 전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대신 전하는 실천의 시간이 될 수 있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셨는지 깨닫는 회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영혼 구원하는 것을 ‘해산하는수고’(갈 4장 19절)에 비한 말씀을 생각해 보면, 전도가 쉬운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내가 전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곧바로 문을 열어주셔서 복음의 열매가 쉽게 얻어진 것같지만 사실은 그 전에 이미 전 세계 시온 가족들의 수많은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는 온 인류를 살리고자 하시는 아버지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그중에 작은 한 부분이나마 세계 각지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주어 영화로운 천국까지 만민을 바르게 인도하도록 합시다. 친히 십자가에서 못 박혀 운명하심으로 우리를 살려주신 사랑을 그들도 느끼고 경험하게 해줍시다. 지치지 말고 힘냅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분명 옳은 일입니다.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고, 세상에 행복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복음의 시간을 기도 가운데 은혜롭게 이루어, 풍성한 복음 열매를 맺으시고 하나님의 큰 은총과 축복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