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만드는 사람들은 최고급 향수를 제조하기 위해 새벽이슬이 마르기 전, 자정부터 새벽 두 시 사이에 장미를 딴다. 춥고 어두운 새벽에 장미가 가장 향기롭기 때문이다. 장미는 왜 새벽에 더 향기로운 것일까? 또 어떻게 특정한 시각을 알고 향기를 내뿜는 것일까? 장미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정오쯤 되면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울린다. 든든히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업무를 보는 3시, 약속이라도 한 듯 식곤증이 몰려온다. 해가 뜨면 잠에서 깨고 밤이 오면 잠이 온다. 몸속에 시계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동식물들이 하루, 한 달, 일 년을 주기로 많은 것들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가면 며칠 동안 시차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꾸벅꾸벅 졸기 일쑤이고, 분명 한낮인데 몸은 한밤중인 양 자려고 한다. 반대로 깜깜한 밤이 되면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이는 여행지의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우리나라에서의 24시간의 흐름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습관 때문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정확한 이 생체리듬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생물체의 리듬을 처음 발견한 것은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대를 이끌었던 선장 안드로스테네스는 ‘타마린드 나뭇잎이 낮에는 수평이다가 밤에는 수직으로 바뀌었다’는 관찰 기록을 남겼다.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식물의 주기성이 발견되었다. 1729년, 지구의 자전을 연구하던 프랑스의 천문학자 드 마랭은 ‘미모사’를 관찰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미모사는 원래잎을 건드리면 오므라들어 시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미모사 이파리가 낮에는 벌어져 있다가 밤이 되자 오므라드는 것을 본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빛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암실에 두어도 미모사 잎이 낮에는 벌어지고 밤에는 오므라드는 것이었다.
식물뿐만 아니라 인체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1960년,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창문이 없는 지하 공간에서도 사람들의 생체리듬이 일정한지 실험했다. 그 결과, 시간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 25시간을 주기로 자고 깨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인체에도 생체시계가 있고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체리듬을 보이는 근본적인 원인이 빛과 같은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물체의 내부 요인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이다.
동식물체에 주기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옛날부터 관찰되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은 초파리의 유전자를 연구하면서 얻기 시작했다. 생체시계를 작동시키는 것은 바로 유전자였다. 과학자들은 초파리가 하루 중 이른 아침에만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탈피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생체시계를 작동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초파리에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클락clock, 피리어드period, 타임리스timeless 등과 같은 유전자를 발견한 것이다. 생체시계는 이 유전자들로 인해 만들어진 단백질들의 상호작용으로 조절된다. 매우 복잡한 내부를 가진 아날로그 시계는 여러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움직이며 시곗바늘을 작동시킨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속 생체시계도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단백질들이 맞물리면서 체계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즉, 세포 하나하나마다 째깍째깍 움직이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의 하루 주기는 평균 24.3시간으로 완벽히 24시간 주기는 아니다. 또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23시간에 가까운 ‘아침형 인간’도 있고 25시간에 가까운 ‘올빼미형 인간’도 있다. 우리 몸속 세포들도 각각 조금씩 다른 주기성을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생명체는 24시간의 주기를 어기지 않는 것일까? 바로 빛을 감지하여 몸속 모든 생체시계들을 맞추는 중앙 생체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 생체시계 노릇을 하는 부분은 뇌의 시상하부에 위치한, 쌀알만 한 크기의 시교차상핵(SCN)이다. 2만여 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져 두 눈의 시신경과 연결된 시교차상핵에서는 햇빛의 변화를 감지하여 생체리듬을 24시간으로 재설정하도록 몸 곳곳에 신호를 보낸다. 햇빛 자체가 생체리듬을 만드는 원인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체시계를 매일 일정한 시각으로 맞추는 기준을 제공한다. 그래서 뇌종양 등으로 시교차상핵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깨는 등 일상생활의 모든 리듬이 깨지게 된다. 중앙 생체시계가 시교차상핵에 있다는 것은 알아냈으나 생체시계의 정확한 메커니즘과 세포 동기화의 비밀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난제다.
많은 비밀을 간직한 시교차상핵은 호르몬을 분비시켜 수면을 조절하기도 한다. 빛의 변화를 감지한 시교차상핵으로부터 어두워졌다는 신호가 송과선에 전달되면 송과선은 깊은 수면을 취하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멜라토닌은 시교차상핵에서 나오는 신호에 의해 어두울 때에는 분비되고 밝은 낮에는 분비되지 않는다. 멜라토닌의 분비로 우리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밤에 휴대폰이나 TV 등의 밝은 빛에 노출되면 시교차상핵이 낮으로 착각하여 멜라토닌 분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더 극단적인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생체시계가 아예 고장 난 사람들이다. ‘지연성 수면위상 불면증’을 앓는 환자들은 오전 4시에서 정오까지 잠을 잔다. 일반인들과 다르게 오전 시간에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희귀 질환인 ‘선행 수면위상 가족 증후군’ 환자들은 오후 7시 30분에 잠들어서 오전 4시 30분에 깨는 극단적 ‘아침형 인간’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선행 수면위상 가족 증후군 환자들은 생체시계를 작동시키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이러한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시계를 보고 정확한 시각을 확인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자야 할 때를 알고 먹어야 할 때를 안다. 식물도 색소의 농도 변화, 꽃의 향기 배출, 잎의 운동 등 모두 때에 따라 움직이고, 곤충도 번데기에서 벗어나는 시기부터 성충의 활동 시간까지 일정한 리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만물은 시간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 흐름에 맞춰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자고 깨는 것만 아니라 체온이나 호르몬 분비량 등이 하루를 주기로 변하는 리듬을 보인다. 신비하게도 인체에 맞는 가장 정확한 시계는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아니라 몸 안에서 째깍이는 수십조 개의 생체시계인 것이다. 몸속의 시계 덕분에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고 때에 맞게 살아가고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 속에 미리 입력된 시간의 흐름대로 살고 있다.
- 참고자료
- 『시간의 놀라운 발견』(슈테판 클라인 著)
- 『잠의 즐거움』(사토 도미오 著)
-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정재승 외 4명 共著)
- YTN SCIENCE 다큐S ‘몸 안의 자명종, 생체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