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한 지가 어제 같은데 어느덧 2023년도 하반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세월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빛과 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순간에 지나가는 인생을 흔히 나그넷길에 비유합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잠시 다른 곳에 머물지만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조상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지냈으며 이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 곧 천국을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세상에는 천국이라는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영적으로 방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차 돌아갈 목적지가 없다면 이들은 나그네가 아닌 방랑자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이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류가 영의 고향 천국을 깨닫고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외국에 갔다가 도심 한복판에 수많은 비석이 세워져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동행한 분에게 어떤 곳인지 물어보니 공동묘지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미나 중남미, 유럽 등 다른 문화권에서는 도시 한가운데에 묘지가 위치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일상 가까이에 자리한 숱한 죽음의 흔적을 보면서, 지위 고하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끝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이치에 대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6장 19~25절
일생 동안 흥청망청 생활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린 부자도, 초라한 생활을 했던 거지 나사로도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드니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했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모든 것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었습니다. 육체의 삶의 끝에 또 다른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간 곳이 달랐습니다. 나사로에게는 천국이라는 영원한 행복의 세계가, 부자에게는 지옥이라는 영원한 형벌과 고통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부자와 나사로의 운명을 갈랐을까요? 나사로는 비록 초라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소망은 언제나 천국에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머무는 나그네 생활에 불과한 삶보다 장차 갈 영의 고향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중히 여기는 믿음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반면에 부자는 그저 그날그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타인 위에 군림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주소서” 하고 애원할 만큼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던 부자는 자기 형제들만큼은 지옥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 그들에게 영의 세계를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대목을 보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눅 16장25~31절).
성경은 비유 속 부자와 나사로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면 천국 혹은 지옥이라는 영원한 세계로 가게 된다고 알려주며, 천국을 목적 삼고 살아야 한다고 교훈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 믿음으로 에녹은 ⋯ 믿음으로 노아는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히 11장 4~16절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갔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나그네로서 잠시 머무는 곳일 뿐, 장차 돌아갈 고향은 천국입니다. 돌아갈 천국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나그네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류 중 성경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며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장 13~14절
성경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생명의 길이 아닌,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는 자가 훨씬 많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치고 지옥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은없겠으나 그들이 천국이라는 영적 목적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돌아갈 기회를 놓치고 방황하다 멸망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명의 진리 안에 먼저 들어온 우리는 영적 방랑자인 이들이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 온 것은 방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우쳐 줍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장 1~3절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신 아버지 집은 모든 인류가 바라고 꿈꾸던 낙원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된 세계를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려 아들의 입장으로 이 땅에 오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인류에게 천국을 알려주셨고,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생명의 언약을 세워놓고 가신 것입니다.
영화로운 이 세계로 모두 함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영적으로 방황하는 뭇사람들에게 천국 소망을 전하고 천국 가는 방법을 알려줍시다.
나그네는 하룻밤 묵을 방이 허름하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사소한 불편이 있다 해도 시비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열악한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곧 돌아갈 목적지가 있기에, 잠시 겪는 어려움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요 앞으로 다가올 천국에서의 시간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영적 나그네들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장 22~25절
성경은 육체를 잠깐 피었다가 시드는 풀과 꽃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하고 순간과 찰나에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는 말도 있듯 풀잎에 잠깐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과 같고, 오늘 밤이 지나면 떠나야 하는 나그네 여정과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이 땅이 전부인 양 아등바등하며 살아간다면 돌아갈 곳을 지향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목적도 모른 채 헤매는 방랑자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순간에 불과한 인생 이후에 주어질 영원의 시간이 행복으로 채워질지 불행으로 채워질지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과정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에 착념해 살아가라고 성경을 통해 누누이 당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고 당신을 닮은 품성으로 변화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영원한 천국 고향 돌아가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비록 나사로가 삶의 형편은 곤궁했을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영화롭고 찬란한 세계에 들어가 세세토록 위로를 받게 되었듯, 우리에게도 마침내 그러한 영광의 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영적 나그네로서의 본분을 기억하며 열심히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하는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는 시온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에 언급된 구약 시대 믿음의 선진들처럼,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영적 나그네로서 어떠한 핍박과 환난이 있더라도 항상 영원의 시간을 내다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장 16~18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장 16~18절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소망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이라고 일깨웠습니다. 또한 지금 받는 고난과 어려움은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듯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니 어떤 장애물도 천국 고향으로 향하는 그들의 걸음을 중단시킬 수 없었습니다.
방랑자는 돌아갈 고향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어 하루하루를 어디에서 어떻게 보낼지 현실에 급급한 삶을 살지만 나그네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한 상황이 조금 답답하고 마음에 차지 않아도 고향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소망이 있기에 현실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영적 방랑자가 아닌 나그네로서 장차 돌아갈 곳을 알고 있다면 이 땅의 것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을 굳게 다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후사로 정해놓으시고 “천국에 돌아오기만 하라.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너희에게 베풀 것이다” 하시며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우리 소망을 오직 하늘에 둔 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나갑시다(살전 5장 16~18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과연 어떤 유언을 남길지 주목했으나 그의 유언은 아주 단순했다고 합니다. 제국의 미래나 후계자 문제 등은 고사하고 ‘내가 죽으면 관 밖으로 손 하나를 나오게 해달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신처럼 세계를 정복한 영웅호걸도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권력자라도 그 권세와 부를 영원히 누릴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땅은 우리 영혼의 고향이 아니요, 잠시 나그네의 생활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신기루를 좇듯, 영원한 천국을 뒤로한 채 유한한 육신의 삶이 전부인 양 살며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성경에 천국 가는 길을 담아두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장 17~19절
성경 속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면 재앙을 받고,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준행할 때 천국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다시는 사망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곳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면 하늘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계 21장 1~4절, 22장 5절). 이 축복을 모르고 인생의 목적도 없이 방황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합시다. 우리의 고향은 천국이요, 아버지 안상홍님과 새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천국 길을 여시고 “오라,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며 우리를 부르신다는 기쁨의 소식을 부지런히 전해줍시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홀연히 변화 입어 영원한 천국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사모하며, 믿음의 기름을 늘 점검하고 충만히 채우는 가운데, 뭇 영혼을 회개시켜 함께 천국에 가도록 인도하는 일에도 더욱 힘써봅시다. 나온 바 하늘 본향을 사모하는 영적 나그네들로서 합당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 천국에 넉넉히 입성하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참으로 잘했다, 훌륭하다 칭찬받는 하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