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흠이라도

한국 부산,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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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확 철이면 저희 시온 식구들은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돕습니다. 이번에는 밀양 얼음골에 있는 과수원을 찾아 사과 선별 작업을 도왔습니다.

천황산 중턱에 위치한 얼음골은 겨울에는 얼음이 녹고 6월 중순부터 8월 삼복더위에는 얼음이 어는 신비한 계곡으로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얼음골 사과는 이 고장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지요. 하지만 여느 농어촌 지역이 그렇듯 이곳 농가도 일손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이번에 찾은 과수원의 주인은 팔을 다쳐서 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저희가 과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수확한 사과를 등급별로 분류하려고 여러 곳에 무더기로 쌓아둔 상태였습니다. 일을 할 수 없어서 발만 굴렀다는 과수원 주인은 저희를 보고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발육 상태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작업은 직접 사과를 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거라 생각했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사과 꼭지를 자른 후 흠 없는 것과 흠 있는 것을 분리해서 담았습니다. 주인은 꼭지가 밖으로 나와 있으면 다른 사과에 흠을 낼 수도 있으니 최대한 짧게 자르라고 당부했습니다.

상품(上品)과 하품(下品)을 나누는 기준도 까다로웠습니다. 크기가 조금 작아도 아무 흠 없고 빛깔이 고르며 모양이 균형 잡힌 사과는 상품 가치가 높은 반면, 크기가 아무리 커도 흠이 있거나 모양이 틀어진 것은 상품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크고 빛깔도 고운 사과가 아주 작은 흠집 때문에 B급으로 분류될 때는 아까워서 절로 탄식이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리 공들여 농사를 지어도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사과는 저장고에 들일 수 없다는 주인의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농가의 곳간에 들어가는 과실도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물며 천국 입성의 기준은 더욱 엄격하겠지요.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식구에게 상처를 주는 뾰족한 언행은 말끔히 제거하고 하나님 닮은 온화한 성품으로 거듭나서 천국 곳간에 넉넉히 들여지는 알곡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