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둘은 나란히 관직에 올랐습니다. 관중은 제나라 군주인 양공의 아들 ‘규(糾)’의 보좌관이 되었고, 포숙은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小白)’을 섬겼지요.
그런데 양공이 시해를 당하면서 왕위를 놓고 두 형제와 조정 대신 간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왕위를 차지한 소백이 규를 죽이고 관중도 죽이려 하자, 포숙은 간곡히 빌며 관중을 등용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정사를 맡게 된 관중은 왕을 성심껏 보좌하여 재상(宰相)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포숙은 관중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훗날 관중은 포숙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포숙과 장사를 할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내 가난을 알고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아직 운이 없는 거라고 위로했다. 또한, 내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세 번이나 달아났지만 비겁하다 하지 않았다. 내가 노모를 모시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감싸주었다.”
형편이나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란 뜻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라 일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