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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본가에 가려고 기차표 예매사이트에 접속했다. 명절 기차표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정해진 시간보다 미리 접속해 대기해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예매에 성공했다. 이후, 부모님께 도착 시각을 알려드리려 승차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기차 출발 시간이 생각했던 시간과 달랐다. 기차표를 잘못 예매한 전적이 있어서 나름 신중하게 했는데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다니⋯.
내게는 기차표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고등학생 때 서울에 볼일이 있어 아빠와 둘이서 기차를 타게 됐다. 김해에 살던 나에게 서울 나들이는 흔치 않은 일인 데다, 기차 여행이 주는 설렘에 며칠 전부터 들떴다. 내 인생에 기차표 예매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인터넷으로 시간과 좌석을 꼼꼼히 살펴가며 왕복권 두 매를 끊었다. 아빠에게 표는 준비됐으니 염려 말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스스로도 뿌듯해했다.
예정된 날, 무사히 서울에 도착해 볼일을 끝낸 아빠와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역으로 갔다. 저녁 6시 기차였다. 조금 일찍 도착해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합실에 앉아 출발 시각이 뜨는 전광판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예매한 기차표와 같은 시각은 나오지 않았다. 불안해진 나는 기차표에 적힌 시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러다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예매한 기차는 새벽 6시 출발이었던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나는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출발 시각을 훌쩍 넘긴 터라 환불도 불가능했다. 일반 열차가 아닌 고속 열차여서 요금도 만만치 않았다. 내 실수로 거금을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으니, 아빠를 볼 낯이 없었다.
“괜찮다. 실수할 수도 있지. 표는 다시 사면 되고.”
아빠는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토닥이며 안심시키셨다. 아빠의 그 한마디가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날 아빠와 나에게는 비밀이 생겼다. 거금을 날려버린 사실을 알뜰한 엄마가 알면 속을 끓이실 게 뻔하기에 함구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엄마는 그날 일을 모르신다. 그렇게 덮어두었던 추억이 기차표를 또 잘못 예매하는 바람에 소환됐다. 아니, 기차표를 잘못 예매한 덕분이라고 해야겠다. 나의 실수를 따뜻한 말로 감싸준 아빠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었으니.
이번 명절에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간식이라도 사 들고 가야겠다. 기차에 몸을 싣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고향에 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