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육아일기

한국 의정부,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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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엄마와의 신경전은 일상이었다. 그날도 엄마의 꾸중을 듣고 방에 들어와 문을 꽝 닫아버렸다. 이제부터 엄마와 한마디도 안 할 거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공부나 하자’ 하고 책을 펼쳤는데 공부만 하려고 하면 왜 그리 깔끔을 떨고 싶은지, 청소한 다음에 공부하려고 책꽂이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오래된 공책을 한 권 발견했다. 처음 보는 공책 표지에는 육아일기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의 육아일기였다.

아기 때 내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엄마의 일기를 훔쳐본다는 생각에 괜스레 긴장이 됐다.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기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썼는지, 내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아빠의 성격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난 아빠의 성격뿐 아니라 외모까지 닮았다.

내가 태어난 뒤로 엄마는 내가 언제 잠들고, 뭘 먹고, 언제 뒤집기를 했는지 등 자라나는 모든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나는 주로 아침에 자고 밤중에 깨서, 덩달아 엄마도 밤낮이 뒤바뀌었다는 글을 읽고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육아일기 속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감기에 걸린 날은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병이 났다고 미안해했고, 내가 하루 종일 칭얼대며 운 날은 아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내가 잘 안 먹어도, 아파도 전부 엄마 탓으로 돌렸다.

엄마가 다시 보였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나를 낳아 키우느라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었을 텐데 엄마는 힘들다는 말은 않고 내 상태에 따라 기쁘고, 슬프고, 미안한 감정만 한가득이었다. 이제껏 사춘기라는 이유로 엄마에게 함부로 대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엄마니까 딸이 하는 일은 다 옳게 봐주고 힘든 일은 엄마가 나서서 해야 된다고 여겼다. 그런 생각으로 엄마에게 쏟아냈던 말과 행동들이 다 후회됐다.

그날 이후로 내 사춘기가 슬슬 끝나간 것 같다.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반항기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아서 가끔 가다 또 투정을 부리고 엄마에게 대들기도 했지만 엄마의 육아일기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즉시 반성하고 엄마에게 그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년이면 나도 스무 살이다. 성인이 되는 만큼 더 이상 철없는 아이처럼 행동하지 않고 어른스럽게 굴겠다는 다짐을 엄마에게 넌지시 내비쳤더니 엄마는 내가 제아무리 어른처럼 행동한다 해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어린애라고 했다. 자식이 아무리 커도 엄마 눈에는 다 애처럼 보인다는 말이 맞나 보다.

언젠가 한문 수업시간에 나의 보물1호가 무엇인지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나는 ‘엄마의 육아일기’라고 썼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절대로 팔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나의 보물1호! 오늘 다시 들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