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를 위한 협상법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땐 내 생각을 강조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협상은 이기고 지는 대결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2866 읽음

“인생의 8할은 협상이다.”

미국의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Herb Cohen)의 말이다. ‘협상’ 하면 국제 협상, 연봉 협상 등 중대 사안을 두고 벌이는 팽팽한 접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협상은 외교 인사나 사업가들만의 특별한 임무가 아니다.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의 값을 깎는 일, 직장에서 동료와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일, 심지어 가정에서 가족들과 집안일을 분담하는 일, 자녀의 용돈을 정하는 일처럼 개인 간의 이견을 좁히는 일도 협상에 속한다. 격식을 갖춰 딱딱한 탁자에 마주 앉지 않더라도, 허브 코헨의 말처럼 일상이 협상의 연속인 셈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자기 스스로 충족할 수 있거나 쌍방 간의 욕구가 언제나 일치한다면 세상에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터. 그러나 현실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루기 힘든 일이 더 많고, 서로의 의견이 상충해 어느 쪽도 쉽게 물러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문제에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일,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이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작은 행위로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협상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갈등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 대화와 타협으로 잘 해결되면 상호 간의 신뢰도가 올라감은 물론, 만족감도 뒤따른다. 성공하는 협상에는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 알아보고, 협상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활용해보자.

부정적인 감정 표현은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

사람은 같은 상황이라도 각기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가 다르며, 그렇게 하는 데는 제 나름대로 필연적인 이유가 다 있다. 이 점을 간과한 채 자신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인식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일기 쉽다. 대개 자기 상식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분을 내어도 타당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또, 상대와의 대립에서 불이익이나 심리적인 패배감을 얻는 경우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게 되는데, 이때도 상대를 감정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크다.

불쾌감, 짜증,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 표현은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감정에 치우치면 평정심을 잃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뿐더러 언성이 높아지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이 튀어나와 자칫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본래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서로 마음만 상한 채 협상이 끝나버리고 만다.

상대방이 분노하거나 억지를 부릴 때 똑같이 맞받아치는 태도는 효과도 없고 현명한 방법도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준다거나 안건을 회피, 대충 넘어가게 되면 나중에 더 큰 혼란과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상대가 화를 내면 일단 감정을 존중해주며 화가 가라앉도록 돕고, 실망스러운 점에 대해서는 차분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다. 중요한 건 사람과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의 제안이나 안건에 관한 생각을 말하되, 상대의 됨됨이나 사고능력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배우자가 약속을 어겼을 때

“당신은 약속을 우습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X)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가 나.” (O)

자녀가 값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때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X)
“네가 원하는 걸 다 해줄 수 없어 미안하고 속상하구나.” (O)

원하는 식사 메뉴가 서로 다를 때

“나는 내가 원하는 거 아니면 안 먹어!” “그게 뭐가 맛있다고 그래?” (X)
“식사 메뉴는 네가 선택하고, 후식은 내가 정하는 거 어때?” (O)

‘요구’ 안에 숨은 ‘욕구’ 파악하기

원만한 타협을 위해서는 내가 바라는 점도 제대로 전달해야 하지만 상대방의 욕구를 잘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빙산이 전부가 아니라 수면 아래 거대한 부분이 감춰져 있듯, ‘왜 그런 요구를 할까?’를 생각하며 그 이면에 자리한 근원적인 욕구를 파악하면 문제 해결의 폭이 넓어진다. 상대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그 대신 다른 방법을 모색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려면 적절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잘 들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상대가 요구하는 이유를 넘겨짚기도 하고, 내가 아는 내용을 상대도 안다는 전제하에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대의 말을 잘 듣기만 해도 의외로 쉽게 해결책이 나온다. 단, “왜?”, “뭐 때문에?” 식으로 반응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기 싫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표현 방식에 주의하자.

국내 한 경영 교육기관에서 협상 수업 수강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는 상대의 의견을 반박하면서 제안을 거절하게 하고 다른 쪽에는 상대의 의견에 공감을 표현한 뒤 거절하게 했다. 이후, 제안을 거절당한 사람들에게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두 쪽 다 제안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같지만 자신의 의견에 공감받은 그룹은 협상에 만족도를 보였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을 표현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감대를 형성하면 서로는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협력의 대상자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상대방이 확실히 이해했다고 느끼면 안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록 상대방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욕구에 대한 공감을 표하면 상대는 계속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다.

매번 양치질을 거부하는 아이와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

아이는 양치질이 싫은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양치질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치약이 맵다거나 부모가 강압적으로 양치를 시키는 상황이 싫을 수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질문하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면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며 공감을 표현해줘야 한다. 아이에게 과일 향이 나는 치약이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칫솔을 선물하는 등의 방법으로 양치질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스스로 양치했을 때 크게 칭찬해준다.

아내가 햇볕을 쬐려고 커튼을 열어두었는데 남편은 닫기를 원하는 상황

아내는 커튼을 열어둔 이유를 설명하고 남편에게 커튼을 닫으려는 이유를 물어본다. TV 화면이 잘 안 보여서, 낮잠을 자려는데 눈이 부셔서, 바깥에서 안이 보일까 봐 등 커튼을 닫으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편의 대답을 들었다면 그에 공감해준 뒤, 서로의 욕구가 충족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TV 화면만 가려지도록 커튼을 친다거나 안대를 갖다준다거나 일정 시간 뒤에 커튼을 닫기로 하는 등 대안을 제시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성공적인 협상

협상의 결과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결과에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한쪽만 만족하거나, 서로 만족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경우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서로 만족하는 협상’이다.

쌍방이 만족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이익 중심보다는 관계 중심의 협상을 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의 승패 대결로 협상에 임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또,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더라도 관계에 흠집이 생겨버린다면 장기적으로는 실패나 다름없다.

타협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 치밀한 논리와 언변이 필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대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말투와 태도다. 논리로 밀어붙이거나 상대가 제안에 굴복해야만 하는 이유를 들이대며 궁지로 몰아붙이는 행위는 상대방의 마음을 닫히게 할 뿐이다. 상냥하고 친근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투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이길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원만한 합의에 이르러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되,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도 상대의 기분이 유쾌해야만 성공적인 협상이다. 경우에 따라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신뢰를 쌓고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적절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 유대감을 키우면 다음 협상에서 더욱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한 ‘Yes-but 화법’

사람은 자신의 제안에 “No”로 시작하는 대답을 들으면 일단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돼, 뒤이어 아무리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주어도 수긍하기보다는 맞서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No-because 화법’ 대신 ‘Yes-but 화법’을 이용하여 “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식의 긍정적이고 열린 대화를 하자.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의견이나 원하는 바가 다를 때 서로에게 느끼는 실망감도 커진다. 그런데 다툼은 서로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보다 상대를 무시하고 반박하는 데서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돈독한 가정은 타협이 필요 없는 가정이 아니라 다른 의견, 다른 욕구를 갖더라도 인정하고 타협과 대화를 통해 조율해나가는 가정이다.

사실, 간절히 원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뭐든 내가 원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기에 내 뜻대로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협력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문제를 장애물로 보기보다는 슬기롭게 대처해 발전을 이룰 기회로 바라보자. 아무리 극한 갈등 상황에 놓이더라도 대화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가족에게 ‘여전히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믿음을 준다면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