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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쓰나, 열매는 사랑이다

사랑, 행복, 평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은 참고 기다린 뒤에 얻을 수 있는 보배로운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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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발효시켜 만든 빵은 풍미가 뛰어나고 소화도 잘된다. 김치, 된장, 치즈 등도 마찬가지다. 발효균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원재료가 가지고 있던 맛이 깊어지고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다량 함유하게 된다.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바로, ‘인내’다. 기다림이 없이는 된장의 구수한 맛도, 치즈의 풍부한 고소함도 기대할 수 없다. 비단 발효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참고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얻어진다.

가정에도 인내의 미덕이 반드시 발휘되어야 한다. 삶의 안식처요, 사랑의 보금자리라고는 하지만 가정이 늘 편안하고 평화롭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부부의 서로 다른 점이 충돌하고, 부모는 자녀로 인해 속이 썩는다.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로 인해 답답할 때가 많다. 이와 같은 상황은 가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시험하는데, 그렇다고 감정을 그대로 분출해 버리면 오래도록 후회를 남길 수 있다.

인내란 사전적으로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을 위한 인내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가족관계에서 선행되어야 할 인내는 ‘편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짜증이나 화가 나더라도 상처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거두어들이는 것, 즉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다스리는 일이다.

자녀 양육의 8할은 기다림

“우리 아이가 너무 느린 걸까요?” 육아 커뮤니티에 단골로 올라오는 질문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랐던 부모는, 자녀가 자랄수록 신체 발달이나 학업 면에서 또래 아이들에 뒤처지지 않는지 걱정한다.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염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나, 아이의 능력보다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조급증이 생긴다.

양육자가 조바심을 내어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대신해 버리거나, 압박감을 느끼게 해 포기하게 만들면 아이는 자율성과 성취감을 맛볼 기회를 잃게 된다. 작은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자녀에게 무엇보다 값진 경험으로 쌓여 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려면 부모는 믿음을 갖고 지켜보며, 실수하더라도 용납하고 격려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각자 성장 속도는 다르지만, 모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글 읽는 걸 어려워하다가도 어느새 책을 줄줄 읽고, 덧셈 뺄셈 앞에서 진땀을 빼다가도 얼마 안 돼 계산을 척척 한다. 어떤 때는 마냥 철부지같이 보이다가도 어느 때는 의젓해 보인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부모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중요한 건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불쾌한 감정들을 부모가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자녀의 정서와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유대 격언에 ‘자녀를 야단칠 때 위협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벌을 주거나 용서하라’는 말이 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아이에게 큰소리치는 건 아이를 위협하는 일이다. 부모가 기분이 좋을 때는 한없이 관대하다가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사소한 일에도 큰소리치며 윽박지른다면 아이는 주눅 들고 부모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자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더 해줄까’ 하는 고민도 좋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자녀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아무리 잘 챙겨 먹어도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소용없듯이, 무시, 재촉, 비교, 막말, 큰소리 등을 참지 못하면 좋은 부모가 되려는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자녀를 일일이 통제하고 채근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진득하게 응원해 주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기라도 불안해하기보다 자녀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며 기다려주자.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님이 있다면 자녀는 잠시 방황하더라도 다시 갈 길을 찾아 주체적이고 올곧은 사람으로 자란다.

연로한 부모를 향한 배려, 인내

단단한 알들을 낳은 고통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품은 알에 온기가 부족할까 자신의 솜털을 뽑아 둥지의 빈틈을 메우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꼼짝없이 알을 지키는 아비 어미 새. 알이 부화한 뒤에도 새끼들이 시시각각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통에 먹이를 물어 나르느라 쉴 틈이 없다. 그렇게 부모의 희생으로 날개에 힘이 돋아 스스로 먹이를 사냥할 수 있게 된 아기 새들은 제각각 짝을 찾아 둥지를 떠난다.

자연의 생태가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식을 길러 독립시키고 나이 든 부모만 남은 집을, 심리학에서는 ‘빈 둥지’에 비유한다. 자녀 키우는 데 젊음을 다 쓰고 빈 둥지에 덩그러니 남은 부모는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귀는 어두워지고, 머리에선 맴도는 말도 입으로는 얼른 나오지 않으며, 새로 습득한 지식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팔다리, 어깨, 무릎 성한 데가 없으니 활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든든한 양육자였던 부모는 그렇게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 되어간다.

이쯤 되면 장성한 자녀는 부모와의 소통에 적잖이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세월 속에 변해버린 자신을 이끌고 인고의 길을 걸어야 하는 부모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부모를 대할 때,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참을성 있는 배려다. 비록 부모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도, 자주 깜빡깜빡해 한 말을 다시 하게 만들더라도 자녀는 절대 화를 내거나 답답해해서는 안 된다. 행동이 느리더라도 채근하지 말고 기다려드리며, 새로운 사회 제도나 전자기기 이용에 서툴러 헤매면 몇 번이고 상냥하고 친절하게 알려드려야 한다.

노인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특히 과거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설령 들었던 이야기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맞장구치며 관심 있게 들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효도도 없을 것이다. 값비싼 선물도 좋지만, 부모는 자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때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 이러한 배려는 노인의 우울증, 퇴행성 질환이나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자식이 인내로써 부모를 대한다고는 하나, 지난날 부모가 자녀를 위해 애쓴 바에는 미치지 못할 터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에게 누가 될까, 원하는 바나 불편한 점이 있어도 참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자녀가 아장아장 걸을 때 부모가 보폭을 맞추고 넘어지면 기다려주었듯이, 자녀가 장성하면 부모의 걸음에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인내로 다름을 인정해 가는 부부

미국 유머 중에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곰 다섯 마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bear’는 ‘참다·견디다’라는 뜻 외에 ‘곰’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참고 또 참는다’는 뜻의 ‘bear and forbear’가 ‘bear and four bear’와 발음이 같아 곰 다섯 마리(five bears)가 된 것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배우자인 필립 공은 1997년 결혼 50주년 금혼식에서 “행복한 결혼의 필수 요소는 인내”라고 말했다.

부부의 연을 잇게 한 것은 사랑이나,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은 인내다. 부모 자식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부부는 엄연한 타인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낸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부딪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다른 점을 틀렸다고 판단해 자신에게 맞추기를 주장하면 다툼만 인다. 사고방식, 성격, 습관, 입맛 등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극복할 때 부부가 탄 배는 순항한다. 결혼을 가리켜 ‘상대를 이해하는 노력과 인내의 여행’이라 하지 않던가.

갈수록 인내의 미덕은 사라지고 이기심이 팽배해지는 가운데, 사소한 일로도 물러서지 못해 큰 갈등을 빚는 부부가 많다. 화가 난 상태에서 당장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해버리면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후회가 남는다. 하지만 인내하면 언젠가 보상이 따른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멀리 바라보자. 불만을 쉽게 토로하고 분을 잘 내는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해지기는 어려울 터, 당장은 괴로워도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을 자제했을 때 얻게 될 좋은 결과를 생각하자. 배우자를 향한 인내심은 그를 평생의 동반자로 택한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다.

흔히 화목한 부부를 ‘연리지(連理枝)’에 빗대곤 한다. ‘사랑 나무’라고도 하는 연리지는,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오랜 세월 함께하는 동안 가지가 맞붙어 한 몸을 이룬 현상을 말한다. 맞닿은 두 가지가 연결되려면 서로 껍질이 깨지고 속살을 파고드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마치 고통을 감내하며 인내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렇게 연리지는 인고의 세월 끝에 하나 되어 함께 양분을 나누고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간다. 부부도 많은 순간 인내함으로 비로소 한 몸이 됨을 기억하자.

많은 사람이 가정에서 사랑과 행복, 평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정성을 들여 인내하고 노력한 끝에 얻어지는 보배로운 결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음식과 발효하는 음식의 차이가 그 속에 있다. 배추를 그냥 내버려두면 썩어버리지만, 소금에 절인 뒤 양념에 버무려 적당한 온도에 맞춰 보관하면 김치가 되지 않는가. 인내는 체념하거나 방관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능동적인 준비이자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 부모는 왜 그런지, 나는 왜 이런 사람과 결혼했는지, 어쩌다 이런 아이를 낳았는지⋯. 가족의 약점만 보면 참아야 할 일은 끝이 없다. 내가 가족에게 인내한다면 가족 역시 나로 인해 인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족한 나를 참아주는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자족하며 서로를 기다려주자.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다디단 사랑이다.